몽테뉴를 통해 본 글쓰기
"나는 여기에서 ‘문자의 공은 각기 타고난 바가 있음’을 더욱 믿게 되었다. 왕안석의 집요함은 결국 소식의 호방함이 될 수 없는 법이다(주 1)."
그들의 문장은 낱말을 교묘하게 꾸며 가며 일정한 자리에 운을 규칙적으로 맞추고 정리해서 겨우 지탱하는 속 비고 메마른 글이 아니고, 그것으로 우리가 웅변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현명해지고, 그것이 우리에게 말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착한 행동을 하게 가르치는 예지의 아름다운 사상으로 채워져 있다. 사물을 말함이 아니고 웅변조만 추구하는 웅변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키케로의 경우와 같이, 극도의 완벽에 달해서 웅변 자체가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주 2).
나는 저 심정이 줄줄 흐르며 남의 일을 돌보아 준다는 식의 기다란 말투에는 소질도 취미도 없다. 나는 그런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이것은 요즘 행위와는 너무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같이 예절이 더럽고 비굴하게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명, 영혼, 헌신, 찬미, 노예 따위의 말들이 너무나 속되게 유행되기 때문에, 그들이 더 명백하게 품는 존경심을 상대편에게 느끼게 하려고 할 때에는,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