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사지 삼층석탑, 선암서원, 운남고택, 운문사, 석남사, 반구대 암각화
대구 시내 태평양 24시 찜질방은 실내 환경도 쾌적하고 시설도 좋았으나, 중간에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새벽 5시에 잠이 깨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소를 옮겨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9시였다. 부랴부랴 몸을 씻고 장연사지로 향했다. 장연사 터는 호젓한 마을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데, 비교적 관리가 잘 된 듯, 동탑과 서탑 두 개가 번듯하게 서 있었다.
장연사지의 석탑 2기는 모두 기단이 2단이고,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 기단은 낮지만 2층 기단은 높게 만들었다. 탑신(몸돌)도 두껍게 만들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백제계 석탑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은 지붕과 탑신의 모양이다. 백제계 석탑은 지붕돌을 크고 얇게 만들어 올리는데, 끝부분이 치켜세워져 있다. 그리고 지붕을 받치는 탑신도 얇다. 반면에 신라계 석탑은 지붕돌이 아담하면서 두텁고 뭉툭하다. 불국사 석가탑은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석탑의 정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선암서원으로 향했다.
선암서원은 다른 서원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일반 양반 가정에 서당을 둔 형식이다. 서원은 보통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두고, 뒤쪽으로 묘당을 배치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취하는데, 선암서원에서는 이러한 배치를 찾아볼 수 없다.
한참을 둘러보고 있는데, 일반 가정집에 웬 낯선 사람이 인사도 없이 찾아와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느냐는 듯, 주인아주머니께서 불편한 시선을 보내오셨다. 멋쩍게 인사를 드린 후 얼른 자리를 피했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소나무밭에는 도끼에 찍혀 상처를 입은 소나무들이 무수히 많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 때 송진을 공출한 흔적이다. 소나무들 또한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을 제 몸으로 함께 감내한 것이다.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놓고 많이 고민했다.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의 새벽예불을 보면서, 빙켈만의 말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했다.
“단순이야말로 고귀한 감정을 일으키며, 위대함은 조용히 드러난다.”
이런 말을 듣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운문사 답사를 계획했을 때도, 새벽예불은 필수코스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운문사를 다 둘러보아도 많아야 네 시가 될 텐데, 그 많은 시간을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무엇보다 막상 예불에 참여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커다란 이질감이 느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고요하고 장중한 예전을 갖춘 가톨릭 예배에 스님이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나는 기독교인이다). 동선과 일정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석남사로 떠났다.
운문사와 마찬가지로 석남사에 오르는 소나무 숲길에서도 일제로 인해 상처 입은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석남사에는 유난히 청기와로 된 건물들이 많다. 과거 광해군이 인경궁을 지을 때 비싸고 화려한 청기와를 사용하여지었다는데, 무슨 연유로 석남사의 건물들이 청기와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석남사의 종무사 직원분한테 물어보니, 석남사와 인연이 있는 분이 청기와를 제작하는 일을 하셨는데, 그때 많은 건물에 청기와를 올렸다고 하신다. 자세한 사정이야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함부로 속단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출발했다. 이름만 들었던 유명한 곳이었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도착해 보니 박물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늦게 도착해서 출입문은 닫혀있었고, 내일은 월요일이라 휴관이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화랑체육공원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규모가 작아서인지 부안과는 다르게 외진 곳에 있고,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샤워 시설도 없었다. 물론 와이파이도 잡히지 않는다. 설상가상, 가까운 곳으로 KTX인지 SRT인지 고속열차가 지나가 소음이 엄청나다. 텐트를 치고 스마트폰 불빛에 의지해서 일과를 정리하고, 하루 동안 보고 배운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밖에서는 간간이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래도 마음이 번잡하지 않고 몸이 피곤하면 단잠은 따라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