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안동으로

영지, 괘릉, 신라역사과학관, 빙산사지 5층석탑, 탑리 5층석탑 등

by 소중담

< 여행 다섯째 날 >


수면실이 추워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뒤척이다 5시 30분쯤 되어 샤워를 하고, 뜨거운 물에서 피로를 풀고 길을 나섰다.


‘영지’에 와서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남자와 여자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남자는 큰 뜻을 세우고, 야망에 모든 것을 건다. 하지만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의 행복한 삶이 전부다. 칭기즈칸을 비롯한 제국의 군주들, 그리고 ‘현대의 제국’ 군주들까지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끝 모를 야망으로 그의 삶을 불태운다면, 여자는 소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랑을 추구한다.


지금은 페미니즘이 큰 기류를 형성하고 있어, 과거의 남성상, 여성상이 오늘의 남성과 여성에게는 부합되지 않겠지만, 야망의 그늘에 가려 누군가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큰 뜻과 야망 뒤에 가려진 소소한 일상의 행복은, 고상하고 숭고한 무엇을 이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양에 불과할까? 오히려 거대한 야망에 희생당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숭고한 무엇이 아닐까?


20190828_071505.jpg

영지. 영지에는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불국사를 지을 때, 옛 백제지역 출신의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애달픈 전설이 서려있다. 다보탑을 유영탑(有影塔)이라 하고,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다보탑은 못에 그림자가 비쳤기 때문에 유영탑이라 부르고, 석가탑은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영탑이라고 부른다.





괘릉은 원성왕의 묘역인데, 묘의 형태는 김유신묘와 비슷하지만, 규모와 넓이로 봤을 때 훨씬 크고 웅장하다. 더 좋은 것은 입장료도 없다. 들어서자마자 서역인 무인의 당당한 모습에 매료된다. 입구 오른쪽 무인은 녹이 슨 듯 붉은색으로 빛이 바랬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투기가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입구 서쪽의 무인은 머리에 둥근 모자를 눌러쓰고, 몽둥이처럼 보이는 무기를 받쳐 세우고, 주먹을 쥔 모습이 위압감을 준다. 두 무인 모두 무기를 받쳐 세우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데, 마치 무덤 주위를 얼씬 거리거나 섣부른 행동을 했다가는, 소위 ‘죽빵’을 날리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는 듯하다.


4gbSQmhGXUFi9S488KiahTndElaqQtmVvwoAAucCiCRz0WTmpYLqO1J-dTeEjBaih4VV9jPMUCMrL9GpV8cdrd4J5eMtaD2RBDYy_doBIZXMtBZewgOEMYltwJVE2wrCGTGBZTAo-ulsECF_YRix73M

원성왕의 묘. 김유신 묘와 거의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둘레석에 12 지신상을 새긴 것과 새기지 않은 것을 교차로 배열한 것이라든지, 바닥돌을 깔고 그 위에 동일한 모양의 돌난간을 두른 것 등, 비슷한 면이 많다. 원성왕의 묘는 지름이 26m 정도 되는데, 김유신묘(지름 30m)보다 좀 작지만, 묘역을 넓게 조성하여 왕으로서의 위엄과 품격이 느껴지도록 하였다. 아래는 김유신묘.


xqa6sLttunu8Fmta0GwSXgedmNS0Sx0oSKPdQBEoYMeWJ_aJfVFEewieI2kePwpiC2TmE5CMn_q76HG2nXjv_aeTFAFA4dKT_Q2VdxqXE--7_9ob1siFAsEJFZ0gADWBLZv7P4ZxACJUon2KCBLJS2U


BRTsSkUOBi8hkVpZqtGwJ2u0AU1LFCi05KH22Zh1W39hL8H85sfyyiLIA5AnYtTwIQagKrFffbYPyq2m7CQN7jD954-zV48y3oP8DArfT215UjUHfSMSoAGmIWR_qvrwsBYKd55a-u4_3yWNbkKHTkQ


JuTdGaPLp84rfxGW5zY-GBp-pJwEutMi4H9YnLz6sLeLvvfkt_IoSaEZ0_T-q1TP8kjLm4ybiFgPzKjcjt6NbVHDJ2GHCNoce_GBDdLlmDouKSc5ShYmu-n33-BRVIuyu3s1W_qxjCTcRtl8BKySJvs

왕릉 입구에 들어서면, 입구임을 표시해 주는 화표석 한 쌍, 무인석 한 쌍, 문인석 한 쌍, 돌사자 두 쌍이, 길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인석은 힘이 넘치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신라인이라기보다는 서역인의 모습에 가깝다. 페르시아인이라는 견해가 있다.



mCqBpY5KKJZY7-bWNJ7-MZ_EE2btQXaX2s4-nZ0M-1gLup54ze7FZn8clTdqiNnSN4LMMrCbYx7Dw1oAH76uzO6CDh2_pfk7KTFPOxFsaW6H2IR2Rp9xzzWqZzdzuLSgChq7P-2Z1fRk082nJX_1unQ


8yLDa0zafqxIp9rh_H1x31vsIZDOq3nb8VJNJ4dDIdygxOwejvpZDjP7-CiNnL3qS-pBbRUcpjt5g_3RKQ7XI1fUd32NeUW9WGLR4M1PFqy2fvYTUjVaX0RDIXdXYETLjoP9EpYE6_eYSaPOxlcxzz0


입구 양쪽의 문인상들도 옷주름과 매듭, 얼굴의 윤곽과 표정까지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조각되어 있다. 사자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입구 좌측 두 마리는 각각 입구 쪽과 무덤 안쪽 정면을 바라보며 위협적으로 감시한다. 무덤 오른쪽의 두 마리는 입구 안쪽 정면과 무덤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무덤을 바라보는 놈의 모습이 굉장히 실감 난다. 왼쪽 발이 바짝 세워져 있는데, 당장에라도 뛰어나갈 듯한 기세가 느껴진다. 신라인들의 실감 나는 조각 솜씨에 탄복하고 유머 감각에 웃었다.


lbcgS--NuQmirvs0ENw6BkCduozv-mogu6IPNfT5YlgvfUQNdhyW5evNIG_q9R6JcP7zmZo-SBOnME7IU57qY4Yk5A9rgPA2tc5AV3TcmC-X9_R22da6ZVNSjLhMRPHf6xUxwfHzq0TVU_sZ-97DCqY


tzijte48shAZk4JpmRKqNptDhcISQ_D36JjHTqNuFijuPibicpd_-pzEcfiYxF3FmihrJMtAKLxP81yK7XUS79DLL0ttvc_-RUi5a1iX0HTmWrsO9rTKp_bNbRbeitzBSRye6xIERwNR9OTrtUQTClE 두 쌍의 돌사자. 그중 안쪽 무덤을 바라보는 놈의 모습이 여간 실감 나는 게 아니다. 바짝 치켜세워진 앞발을 보라.


qxoFk9Cxp-t3aTSll0tPIRHgBTFHF3irLRf8L6lzcDSlJFTz88w64GlKz7ee2NsVvGbilWxeKDv786hmrDBzRzGLAcD5NyzH0a55mbmSPzhFdD8SgjoF3b0hG9udL2EUJsNzJqwTx_d2QulQO0587GI 문화재청의 설명을 보면, 왕릉 석조물들의 조각 수법이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신라 조각품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무덤 앞 제단들은 항상 입구와 어긋나게 놓여있다. 여기도 예외가 아니다.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언젠가 전문가를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덤의 호석도 둥그스름하게 다듬어져 아름답고, 갑석은 세월의 무게 탓인지 약간 틈새가 벌어져 있는 곳이 더러 있었다. 무덤과 돌난간 사이에 판석도 깔려 있는데, 김유신 무덤보다 크기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뛰어나 보였다. 이름이 ‘괘릉’인 것은 무덤을 판 곳에 자꾸 물이 고여 ‘널’을 걸다 보니 괘릉이 되었다고 한다. 서역인 무인과 사자의 모습이 너무 인상 깊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많은 시간을 머물면서 보았다.


figb1E4NadFnuWH0WpRsRqimgJoMpLdrdKxpfuCjAQjbjjx0AFXrlW-Qc5MPAhGHeLIivtzsH6RNrNsEt8BR0u-dgJz4WorHM-T_wbk_BqVAcyqEJsOiBCj3DYEt3vsxH9j99E8Iu9P2b5K7xyg3e1U 문화재청의 설명을 보면,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신을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이름이 붙었다 한다





신라역사과학관에서는 30분을 넘게 기다려 들어갔다. 보고 배울 것들이 정말 많아,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심하게 읽어보고 관찰하였다. 솔직히 석굴암에서 느꼈던 참담한 실망감을 보상받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장항리 5층 석탑은 계곡을 두고 도로와 떨어져 있다. 어떻게 갈까 궁금했는데, 옆으로 샛길이 나 있었고, 구름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구름다리를 건너며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보고, 시원스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 또한 맑아졌다. 계단의 끝을 올랐을 때, 과연 어떤 장면이 펼쳐질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올라보니 석탑 두 개와 연꽃좌대의 일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신라역사과학관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석우일 관장이 지은 ‘태권하는 석사자’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재미있는 사자의 모습과 위트 있는 글솜씨가 맘에 들어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그때 보았던 사자의 모습이 연꽃좌대에 새겨져 있었다. 발버둥을 치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하늘을 향해 힘껏 펀치를 날리는 사자의 모습에 또 한 번 웃었다.


NEqxG-1rgzuiNbX8vz9p3spDx5ZZBOiuIVRVWEFF82wHBtPUe7sW1jXA-w121JroRjXKFim23dKaABSjB4Ro5sCGNvg3RQbROrfAEwxNkMI5NYLCD-DDEWPaikhrdIMJ-pMFh7YPySeqANCs476avJc


qUFIqjSgbZ4SsY4hx3F_ZRqnKl8mIvbkaFHPCy4Xa7EZgQt84ntarF1YdAlO4dD-lK5mlapq0EnlctMgHe7RibI2gINK9apG3OvMviQHqKFQO-JFnsbhyiAg1JGcsurkvGyzavqIXnb45FQNuyxgc7o 신라 역사과학관 입구에 들어서면 ‘태권하는 석사자’의 조각과 그림, 그리고 재미있는 석우일 관장의 글을 볼 수 있다.


uLSV2r9EhDH6KZ0NXy6sEmWS27k_BOJU0hDxlusobV5DmF0fAPfwKPlwkiMv4ctv9jFv32LOL3hyB5p3AM0y0yIl9Zpw9zoHSMFmQFjdjTEGK7Xd3skREA24skrs9r2r2upmBQTLZXkuQeaj6a0Z62k 장항리 절터에 남아 있는 연꽃좌대에 조각된 석사자.


683CLgr-8tqzksMNBJkejI9tiB1A0qcwIUcZKoXUAn-lXsfb2VPnxZUZHjV0Osvevc9dyW_Z4Ar7x9JlU9zVzcQCP3ohmduxBdWvkKXK-7fpbhC2xAdW2S1NEYHGDsVIE9VC1aDpRHeu7EheorzCKS4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과 동 오층석탑. 서 오층석탑은 1923년 도굴범에 의해 붕괴된 것을 1932년에 복원한 것이다. 동탑은 지붕돌만이 남아있다. 1층 몸돌의 각 면에 한 쌍의 인왕상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8세기 전반기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이 탑의 독특한 특징이다. 전체 비례가 아름답고 조각 수법도 우수한 8세기의 걸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 내용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fMV1z0jt8Lp7dacTapGUNnCU6syOQosx_oN7p499GMoo-rhRQ92JPGnfwaY0zWFlsBHf0o2XRSpiwQQMjnxFVAvhb2AUH_kXZAiKHEH0x1WFlBd29w7_xvxckanEUE8gL47pHglX9SkcnwsxshK_R8Q 장항리사지 서 오층석탑






원효대사의 이야기가 서린 기림사와 골굴암을 거쳐 감은사지까지 갔다. 문무왕의 전설이 서린 금당 하부 모습도 보고, 동탑과 서탑을 고선사의 석탑과 비교해 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경주를 벗어나 의성에 있는 빙산사 5층 석탑과 탑리리 5층 석탑을 둘러보고 안동으로 향했다. 소호헌에 도착하니 6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다 둘러보고 나오니 문을 닫는다. 조금만 늦었어도 허탕 칠 뻔했다.


그러나 조탑동 5층 전탑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권정생 선생의 생가가 바로 옆에 있었다. 너무나 순수한 영혼을 지닌 아름다운 분으로, 평소에 글을 자주 접하고 존경했었는데, 정작 생가가 어딘지도 몰랐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선생의 집은 영혼만큼이나 검소하고 초라했다. 방명록에 어린아이의 글씨로 기록된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나도 방명록에 한 줄 남기고 길을 떠났다.


안동 찜질방에 도착하니 저녁 7시 40분이었다. 검색한 찜질방은 이미 없어졌고, 가까운 곳에 다른 찜질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경주에서 의성을 거쳐 안동까지, 13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녔다. 전날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참 힘든 하루였다.


20190826_162839.jpg 고선사 3층석탑


20190828_145602.jpg 감은사지 3층석탑

고선사는 원효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절로, 덕동댐 건설로 인해 절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3층석탑을 국립 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고선사 3층석탑과 감은사지 3층석탑 두기(동, 서 삼층석탑)는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 기단은 2단이며 3층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노반까지의 높이가 모두 10.2m이며, 82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석탑들 모두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20190828_174459.jpg 의성 탑리리 5층석탑


20190828_171029.jpg 빙산사지 5층석탑

두 석탑은 한 눈에 봐도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전탑(벽돌탑)의 형식을 모방한 ‘모전 석탑’이다. 탑리리 5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건축물인데, 전탑의 형식을 모방한 것이지만 목조건축의 수법도 함께 사용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분황사 모전석탑 다음으로 오래된 석탑이라고 한다. 빙산사지 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탑리리 5층석탑을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탑리리 석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빙산사지 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20190828_190701.jpg
20190828_190534.jpg
20190828_190312.jpg

조탑리 5층전탑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권정생 선생 생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같은 마을 바로 옆에 있었는데 전혀 몰랐던 것이다.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로 유명한 아동문학가다.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선뜻 베풀었던 사람이다. 사는 동안 마당의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피고 지는 꽃들과 함께 살았다고 하는데, 그런 아름다운 마음은 존경하지만 똑같은 삶을 살라고 하면, 글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