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정사, 군자마을, 도산서원, 주실마을, 서석지, 신해리 모전석탑 등
기억은 머문 시간만큼 지속되고 보다 선명해진다.
눈으로 본 것을 마음에 오래 간직하려면, 오래 머물면서 눈에 새기고, 마음에 차곡차곡 담아야 한다. 영산암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고구려 양식으로 지어진 봉정사 극락전, 툇마루를 설치한 특이한 형태의 대웅전, 시원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만세루. 봉정사가 질서 정연한 가람배치로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산사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영산암에 들어서면 마당의 아름다움에 반할 수밖에 없다. 사실 가장 많은 기대를 하고 찾은 곳이 영산암이기도 한데,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ㅁ’ 자 형의 건물 배치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마당은, 정겹고 친근한 감정을 자아내고,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유홍준 교수는 봉정사를 둘러보며 그 유명한 '마당론'을 펼치기도 했다.
“대웅전 앞의 엄숙한 마당, 극락전 앞의 정겨운 마당, 영산암의 감정표현이 강하게 나타난 복잡한 마당, 마당을 눈여겨볼 줄 알 때 비로소 한옥을 제대로 보았다 할 수 있다”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 봉정사는 672년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 중수상량문> 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들이 이것이 근거 있는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전기의 건축물로, 1435년 세종 17년에 낡은 건물을 새로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이한 것은 건물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인데, 이러한 방식은 사찰 건축에서는 찾기 어려운 예라고 한다.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 수덕사의 대웅전이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고려 충렬왕 34년, 1308년)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면, 봉정사의 극락전은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를 할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했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 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은 고려시대의 것이지만, 삼국시대의 건축양식(고구려)도 발견할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오천 문화재단지는 군자마을이었다. 4년 전 찾았던 곳이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둘러본다. 광산 김 씨의 집성촌을 통째로 옮겨 세웠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풍산 류 씨의 집성촌인 하회마을과 마찬가지로 600년의 역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산서원은 전에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퇴계 선생의 일생을 보면서 위로받았던 것은, 그렇게 훌륭하신 분도 세 번 과거에 낙방하신 데다, 향시 2등, 진사시험 2등, 문과 초시 2등으로, ‘2등 인생’을 사셨다는 사실이다. 꼭 세상이 원하는 답이 정답인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전시관을 둘러보며 퇴계 선생의 삶이 얼마나 많은 절제와 수행의 삶이었는지를 배웠다.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사시고, 자신의 묘까지 단출하게 꾸미라 유언으로 당부하신 당신의 묘를 참배하고 길을 재촉했다.
도산서원에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시사단. 여기는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정조는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도산별과를 새로 만들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게 하였는데, 응시자가 7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거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정조 20년(1796년) 영의정 채제공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을 세웠다.
- 내용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퇴계 선생의 묘. 묘역에는 석인, 석상들이 서 있는데, 퇴계 선생은 생전에 본인의 묘에 석물 장식을 하지 말고, 단출하게 만들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최소한의 격식이라도 갖추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만들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유계(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긴 교훈이나 훈계)가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면서, 유족들이 탄식하였다고 한다.
주실 마을을 갈까 말까 고민을 했다. “들을 주실이지, 볼 주실이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차피 동선상 지나가게 되어있기도 해서 주실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서석지에 가 있기에 서둘러 출발하였다. 하지만 서석지에 도착했을 때는 공사 중이었고, 연꽃은 8월 초였지만 이미 지고 난 후여서, 기대했던 정원의 아름다움은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공사를 통해 더 아름답고 멋스러운 정원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란다.
봉감 5층 모전석탑의 아름다움은 서석지에서 느낀 실망감을 덜어주었다. ‘국보를 지니고 있는 마을’이라는 팻말에서, 석탑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내앞 종가를 가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다름없어 허탈했다.
오늘도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내일 임청각을 둘러보면 안동과는 이별이다. 안동시, 봉화군, 영양군, 세 개의 시군을 넘나들었더니 몹시 피곤하다. 이제 내일이면 영주다.
영양 신해리 5층모전석탑.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단은 자연석으로 넓게 만들었고, 그 위에 5층으로 탑신(몸돌)을 올렸다. 모전 석탑답게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고, 지붕돌도 계단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다른 모전 석탑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2층 몸돌부터는 띠를 두른 것처럼 가운데 부분에 돌을 튀어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