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지도 한 장에 들어있는 정성

봉암사, 연풍풍향교, 영풍 관아터, 순교성지, 원평리 마애이불병좌상

by 소중담

< 여행 아홉째 날 >


충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일정표만 있지 지도가 없다.

답사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깜빡하고,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출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지인 댁에 들러 동선을 다시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다음 목적지인 문경과도 가깝다.


문경 봉암사로 향했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4월 초파일 하루만 개방하고, 일반인에게는 출입 금지란다. 하는 수없이 연풍 관아로 넘어왔다. 일정에는 없었지만 가까운 곳에 향교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운이 좋게도 제사를 준비하는 중이라 사당 내부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하나가 향교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데, 들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게임과 스마트폰밖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향교에 대해 이만큼 알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생각을 심어주었다는 이야길 텐데, 부모든 선생님이든, 그만큼 가르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생각지 못했던 병인박해 순교의 현장도 보았다. 정조 사후, 노론의 정치 술수로 천주교인들까지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했던 비극의 현장에 와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치란 것이 무엇인가? 사람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한나 아렌트의 생각이니 그리 무지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정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향교로 들어가는 홍살문


향교의 강당 건물인 명륜당


초등학생들이 향교의 제사 준비를 돕고 있다.


향교는 비탈진 곳에 만들어져, 외삼문에서 명륜당, 사당으로 들어갈수록 계단을 따라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사당 뒤쪽 언덕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나지막하고 아름답다.


사당 뒤편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김홍도가 시무했던 연풍 관아 터도 둘러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정조가 김홍도를 연풍 현감으로 임명하였는데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설로는 정조가 김홍도를 연풍 현감으로 임명한 이유가, 영춘, 단양, 청풍, 제천, 4군 명승의 산수를 그려오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내문에 따르면, 김홍도가 연풍 현감으로 재직한 시간은 3년인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가 남긴 길지 않은 족적이 큰 자부심인가 되었다.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을 보는데, 앞에 제물이 놓여 있었다. 맥주와 탱글탱글한 포도, 상큼하게 보이는 사과 두 개와 천 원짜리 한 장이다. 무척이나 목이 마르고 시장하던 터라 매우 먹음직스러웠다. 사실 포도는 정말이지 먹고 싶었다.



정조 당시 연풍 현의 청사로 쓰이던 풍락헌. 정조는 어진(왕의 초상화)을 그린 공로를 인정하여 김홍도를 연풍 현감에 제수하였다고 한다.



교수형 형구 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는 신자들을 구멍 앞에 세운 다음, 목에 밧줄을 걸고 반대편 구멍에서 잡아당겨 죽였다고 한다.


대형 십자가 부근은 사형장, 옥터 또는 도살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갖은 고문을 해도 배교하지 않는 사람들을 옥에서 끌어내, 이곳에서 처형하였다고 한다.




원평리 마애이불병좌상. 높이가 12m나 되는 큰 암석을 파고, 두 불상을 나란히 배치한 마애불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예라고 한다.


음성에 와서 동선을 짜다 보니, 답사 지도 한 장 만드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사소한 지도 한 장에 들어있는 정성과 노력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해 본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지인 분들과 함께 저녁으로 춘천 닭갈비를 먹었다. 두 명은 되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늘 혼자라 아쉬운 음식이었는데, 음식을 대하면서 사람은 혼자서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물론 딴죽 거는 것도 자유다. 혼자서 만들어 먹거나, 혼자서 2인분 먹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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