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 두개 내 저압증(뇌척수액 누출, CSF leak) : 뇌척수액이 흐르는 통로인 경막의 파열로 뇌척수액이 누출되어 뇌압이 낮아져 기립성 두통을 주로 하여 어지럼증, 구토, 복시, 눈부심, 이명 등 다양한 신경증상이 생기는 질환
나는 남편의 완치 판정을 놓고 싶지않았다. 남편도 믿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다려 보기를 바랐다. 사람의 몸은 마음을 따라갈 때가 자주 있으니까. 그러나 남편에게는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낙관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을까? 앞으로 살면서 우리 앞에 시련이 닥칠 때마다 함께 버텨낼 수 있을까?’
남편은 자기대로 서운한 마음에 나를 원망했다.
“나는 몸도 아픈데, 내가 다 찾고 알아봐야 하고. 네가 아팠으면 난 내가 다 챙겨줬을 거야.”
맞는 말이다. 남편은 분명 내가 아팠어도 그렇게 해줬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남편이 누워 있거나 관련 논문을 찾거나 환우들과 정보를 나누는 동안 나는 회사 다니면서 온갖 집안일을 혼자 소화해야 했고, 원래라면 남편이 했을 힘쓰는 일들까지 감당하면서 커진 내 몫을 하느라 애썼다.
‘물 때 없는 화장실, 뽀송한 빨래, 깨끗한 바닥은 누가 안 해도 저절로 되는 건 줄 아나? 나도 버거운데…. 아프기 전에는 바빠서 안 하고, 이제는 아파서 못 하고. 어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겠다.’
서운한 마음에 못된 생각도 했다. 그나마 손은 여물지 못해도 힘은 세진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무덤덤한 태도를 보인 건 무관심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느긋한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빨리 나으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었다. 난들 왜 빨리 낫기를 바라지 않으랴. 개복치 왕자병(남편)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관심이나 걱정을 끊는 시간이 분명히 있기는했다. 회사에 있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페르소나의 힘을 빌려 근심 같은 건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나의 우울한 감정을 타인에게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천성인 것 같다.그런 나를 사람들 대부분이 꽃길만 걷고 산 줄로 오해하곤 한다.
물론 혼자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던 날들도 있었지만 되도록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래야 우울감이 두둥실 떠다니는 집을 환하게 밝힐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다. 그조차 어려운 날이면 혼자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책을 읽기도 하고, 그저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그런대로 마음정돈이 되는 시간이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역시 ‘혼자’보다는 ‘함께’가 힘이 난다. 이런저런 얘기로 웃고 떠들면 잠시나마 시름에서 벗어났고, 나의 최근 상황을 업데이트하면서 위로도 받았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싫은 내색 없이 내 얘기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았다.
직장생활이 나에게 숨구멍이 된 것이다. 회사 가는 게 좋아지는 날도 오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동안 나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사자를 걱정했지, 보호자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고생한다고 생각은 해도 깊이 걱정해 본 적은 없었다. 겪어보니 아픈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환자 앞에서는 자신의 힘듦은 최대한 감추고 밝음을 유지해야하는 감정노동은 덤이다. 어쨌든 육체의 고통을 짊어진 사람이 제일 힘든 법이니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배우자가 자가면역질환으로 10년 동안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병을 앓아서 한때 간호사가 감탄할 정도의 드레싱 실력을 보유하셨던 분이나 간경화로 죽을 날 기다리다 극적으로 간이식을 받으신 분의 배우자처럼, 어려운 시간을 통과하신 분들은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나를 보면 고생한다면서 격려하고 보듬어주셨다.
그리고 나의 엄마. 일본에서 한국에 아주 들어온다고 했을 때 엄마는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살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그러라고 할 수 없었다. 고맙게도 먼저 말을 꺼내준 건 남편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엄마는 환경이 바뀐 탓에 불안감과 우울감이 심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최대한 나의 몸이 힘들지 않도록 부지런을 떨어 살림을 도맡아 해 주었다. 또 내가 속상해할 때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엄마는 너 대단하다고 생각해. 일하면서 아이 키우면서 아픈 남편 얘기 다 들어주고. 잘하고 있어. 너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마음이 안정된 엄마는 올해 1월,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일 년 만에 어엿하게 독립을 했다. 그 후로 내체중이 야금야금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함께 지내는 동안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애써주었는지를 새삼 느낀다. 나의 몸은 그렇게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지만 엄마의 위로는 내 곁에 남아 두고두고 내 마음을 챙겨주고 있다.
요즘 핫한 키워드 중 하나인 ‘마음 챙김’은 오랜 시간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소중한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이 가난해지면 ‘아픈 게 내 탓인가? 나도 힘든데.’라는 식으로 말도 태도도 뾰족해진다.
그래서 나는 지지부진 오랜 기간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좋다. 향이 좋은 차를 마시거나 잠시 생각을 비우고 하늘의 솜털구름을 보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이런 소소한 것들이라도 나를 위해 온전히 누리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계속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니까.
나는 항상 도움을 주는 입장이 편안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그러나 타인의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몰랐던 내가 과연 남에게 진정한 도움을주고 살았을까?밑바닥에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깔아둔 교만함은 아니었을까?
요즘 나는 동정은 사양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나 도움이 너무 고맙다. 지금의 이 고마움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에나의 위로는 분명 커다란 힘이 있을 것이다. 이 시간들을 통해서 나는 타인의 아픔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는 내공도 기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당신도 보살핌이 필요한 소중한 사람이에요. 잠깐씩은 오롯이나만을 위해줘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