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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Sep 20. 2024

독일 갈 결심

그리고 프라이부르크에서 온 편지(?)


자발성 두개 내 저압증(뇌척수액 누출, CSF leak) : 뇌척수액이 흐르는 통로인 경막의 파열로 뇌척수액이 누출되어 뇌압이 낮아져 기립성 두통을 주로 하여 어지럼증, 구토, 복시, 눈부심, 이명 등 다양한 신경증상이 생기는 질환

 


   멈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일상을 누리기도 하면서 남편의 투병기간이 일 년을 넘기고 있었다. 년 11월에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두통 때문에 남편은 재판독도 요청해 보았으나 다시 봐도 새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한 번에 수십만 원씩 하는 편두통 치료주사를 수차례 맞아도 보았고, 에너지 치료를 해준다는 한의원에 꾸준히 다녀도 봤지만 이렇다 할 만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남편의 희망은 이제 독일밖에 없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은 '자발성 두개내 저압증' 질환에 대해 진료부터 수술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했다. 나는 우리가 조만간 가게 될지도 모르는 프라이부르크라는 도시가 독일의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궁금했다. 


독일의 서남쪽,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지역이었다. 이런저런 정보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친환경 도시'라는 수식어가 달려 있으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관광도시잖아... 여행을 안 하고 올 수 없겠네.'


철없는 아줌마는 생각했고, 남편은 "간 김에 스위스까지 들렀다 올까?" 하며 한 술 더 떴다.






   해외에서 수술받는 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일차적인 문제는 소통이었다. 남편과 나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구텐 탁”“아우삐더지엔” 외에는 알지 못하거니와 공시 준비 이후로 영어와도 담쌓고 살아와서 아들이 공부하는 영어 지문만 봐도 머리가 지끈하니 병원을 배경으로 한 회화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슬프다. (뭐 하고 살았니, 우리?)


자괴감을 느낀 남편은 어플로 영어회화를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저러다 곧 영어로 꿈을 꾼 다음 네이티브처럼 말할까 봐 걱정됐다.


소통 외에도 내가 머물 숙소며, 공항에서 병원까지의 이동이며, 모든 게 숙제였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혼자 다닐 자신이 없으니 아들을 데려가야겠고, 그러려면 고2 학기 중 장기간 결석은 타격이 크니 겨울방학 때로 맞춰야겠다... 까지 생각이 미쳤다.


모두 괜한 걱정이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병원에는 전문통역사가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보호자용 숙박시설을 호텔식으로 갖추고 있으니 내가 머물 숙소를 따로 구할 필요가 없고, 픽업 서비스를 신청하면 벤츠 S클래스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다고 한다. 추가되는 서비스 하나하나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책정되지만 많은 걱정이 일순에 해결되었다.


 "와우, 글로벌하네!"


이제 경비 포함 7천만 원 정도를 들여 해외에서 수술받는 리스크를 감수할 '확고한 결심'만이 필요했다. (아직 결심 전이었고, 단 알아만 본 거다. 이유는 뒤에 이어서...)






   제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고는 해도 만리타향에서 수술받는 것은 그 자체로 부담이었다. 96% 정도의 성공률은 꽤나 높은 비율이지만 나머지 4%에 남편이 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고, 혹시나 잘못될 경우 국내에서 팔로우업이 원활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겐 결심을 유예하게 만드는 결정타, 바로 '완치 판정'이 있었다. 남편의 증상은 처음 발병 때에 비하면 조금씩 호전되고 있기는 했으므로 후유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시간과 돈과 체력이 넘친다면 고민 없이 일단 독일에 가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독일을 옆 동네처럼 드나들 여력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남편은 지금 기립성 두통 때문에 긴 시간 이코노미를 탈 수 없는 고급진 몸이라서 두 명의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 항공권 비용만 해도 경차 최고사양 가격을 호가하니 쥐꼬리 월급인 공무원부부에게는 호들호들 하다. 그럼에도 나는 수가 없으니 일단 가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그렇게 의료투어 시뮬레이션을 열두 번은 가동했을 즈음 갈등의 나날들을 보내던 남편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최후의 보루였던 독일에 갈 결심.


 "아... 이대로는 못 살겠어. 독일 갈래."       


완치 판정을 받은 지는 8개월 만이었다.


       




   독일행을 마음먹은 남편은 수천의 비용이 드는 것을 미안해하며 내 심기를 살폈다. 국내에서 수술하면 보험금으로 수술비용에 대한 보전이 되지만 해외에서의 수술은 고스란히 없어지는 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만 사는 사람 아닌가. 나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7천만 원이 뭐가 중요한가 싶었다. 물론 큰돈인 건 알지만 잠재적 지출은 당장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진 못했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효지야'라는 사람의 재정시스템은 복식부기가 안 되는 것이다.

 

느긋한 나와는 달리 '중장기 플래러' 남편은 초조해졌다. 이미 머릿속 가계부에 마이너스 7천만 원을 계산해 놓은 듯 '나홀로' 긴축재정에 들어갔다.


남편과 아들은 식사 메뉴를 두고 투닥투닥했다. 두 사람 다 집밥보다는 외식을 좋아하는데, 특히 아들은 용돈을 먹는 데 다 쓸 만큼 끼니에 진심을 다 한다. 그날도 아들은 자기 취향에 맞게 가격대가 좀 있는 메뉴를 골랐고, 남편은 통장이 곧 '텅장'이 될 생각을 하니 그런 아들의 선택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을까? 평소에도 아들에게 경제관념 없다고 잔소리가 잦은 남편이었다. 결국 집 앞에서 가성비 좋은 도시락을 포장해 와서 한 끼를 때우는 걸로 아들과 합의하고, 남편은 하나뿐인 아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이게 된 처지가 처량해서 또 울었다. 나는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남편의 투병기간 내내 나는 자주 웃프다.


               


  


   수술 전에 사전진료를 봐야 했다. 꼼꼼한 성격답게 남편은 환자등록은 일찌감치 해두었고, 이제 영상진료만 보고 나면 수술 일정을 잡고 독일로 날아가면 되는 거다. 영상진료 비용은 40분에 약 600유로(한화 약 90만 원)였다.


통역을 위해서 남편 친구가 하얗게 앞이 안 보일 정도의 폭우를 뚫고 서울에서 우리 집까지 와주었다. 그 친구는 상하이에서 성형외과 의사를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한 덕분에 영어도 유창했다. 마침 한국에 들어시기가 영상진료 일정과 맞아서 귀한 시간을 할애하고 멀리까지 와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만난 김에 견적 좀 받아볼걸 뒤늦은 후회가...)

  

영상진료를 통해 남편이 얻고 싶었던 것은 '100%의 확실함'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애초에 그런 병원은 세상에 없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세상 빠꼼이 같으면서도 이럴 때 보면 또 순진하다.


당연한 세상의 이치 아닌가? 의사도 신의 영역에 조금 근접해 있을 뿐 신은 아니다. 100%의 성공을 보장하는 의사는 본 적이 없다. (나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100% 믿으라고 하는 것이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독일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확신이나 확고함은 일정 부분 환자 스스로의 몫이다.





 

   이미 대부분의 관련 논문을 섭렵한 남편에게 40분의 영상진료는 알고 있는 내용을 얼굴 보면서 다시 한번 들은 수준에 그쳤고, 수술을 위한 사전절차라는 것에 의의를 둬야 했다. 


사전진료도 마쳤으니 수술 날짜만 잡으면 되는 마당에 남편은 불현듯 결심의 방향을 선회했다.


 "효지야, 독일 가기 전에 울패(정밀검사) 결과를 독일에 재판독을 요청해 보면 어떨까?"


 "OO대학병원에서 재판독도 받았고, 새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근데, 판독하는 실력이 달라. 우리나라는 아직 사례가 많이 없어서 여기서 못 본 걸 거기서는 찾아낼 수도 있거든."


 "병원들이 원래 다른 병원에서 찍은 영상 신뢰 안 하지 않아? 병원 옮기면 무조건 새로 검사시키잖아... 근데 여기서 찍은 영상 가지고 판독을 해줄까?"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한 번 물어는 볼까?"


 "응, 알아봐 봐. 해주기만 한다면 완전 해볼 만한 것 같은데?"


문의 결과 가능했다. 재판독 비용 약 600유로를 송금하며칠 후, 결과가 회신됐다.   


        

 <번역 내용>

**임상 정보:** T1에서 T3까지의 흉추에 작은 석회화가 있습니다. 뇌척수액 누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정보를 방사선과 의사에게 전달하고 누수 위치를 확인하도록 하십시오.

**원격 방사선 진단**
2024년 6월 26일 HWS, BWS 및 LWS의 MRT (OOO병원): 측정 기술: 시상면 다중 딕슨, 시상면 T2 TSE, 시상면 T1 TSE, 시상면 T2 STIR 및 보조 축 방향 T2 가중 TSE 영상. BWK1 및 2 뒤쪽의 복부 경막 공간에 액체가 있습니다.

2023년 11월 3일 복위에서의 동적 CT-척수 조영술 (OOO병원): HWK5-LWK1 조사. 복부의 전측 지주막 공간의 좋은 조영. BWK1과 BWK2/3의 중앙에 골극. 처음에는 복부 경막 공간에 조영제가 없지만 (14:54, 14:56), 보조 시리즈에서 복위 (15:01)에서 지주막 공간의 흐릿한 조영이 관찰되었습니다.

**평가:** BWK1과 2 뒤쪽의 복부 경막 액체를 고려할 때 저유량 누수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확한 누수 위치는 복위에서의 동적 감쇠 척수 조영술, 필요시 재동적 CT-척수 조영술로 확인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인사와 함께,  
Prof. Dr. HOOO UOOO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병원**


의료용어가 어렵고 내용이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척수액이 구멍으로 나오는 건 안 찍혔지만 5분 딜레이 영상에서 흉추 세 마디 정도 척수액 누출(고임) 보임. 정확한 지점을 찾으려면 다른 종류의 정밀검사가 필요함."


이것도 복잡하다면 한 마디로?


 "완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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