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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iya Oct 06. 2024

드디어, 수술

두통이 갔다, 새로운 두통이 왔다.

자발성 두개 내 저압증(뇌척수액 누출, CSF leak) : 뇌척수액이 흐르는 통로인 경막의 파열로 뇌척수액이 누출되어 뇌압이 낮아져 기립성 두통을 주로 하여 어지럼증, 구토, 복시, 눈부심, 이명 등 다양한 신경증상이 생기는 질환


 "많이 아프시죠? 수술은 잘 됐어요. 아니 근데, 왜 울어요?" 


 "(찔끔찔끔 울면서) 선생니임... 절개한 부위도 타코실로 잘 덮어주셨어요?"


 "(약간의 한숨) 이건 환자와 의사의 대화가 아니에요~ 잘 됐다면 그런 줄로 아시면 돼요."


우직한 인상에 경상도 억양 특유의 무뚝뚝함이 묻어나는 말투의 의사 선생님은 수술 후, 남편의 질문에 드디어(?) 정색을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남편의 질문이 살짝 선을 넘었기에 나는 약간 멍청해 보이는 웃음으로 미안함을 대신하며, 뚜벅뚜벅 돌아서서 나가시는 뒤에다 대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


사실 그간 많이 참아주셨을 것이다. 수차례의 진료를 통한 남편의 집요한 질문세례에도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내세워 무시한다거나 비웃지 않고 환자가 얻은 정보와 지식을 존중하며 성심성의껏 답해주시던 선생님은 남편에게 이제 수술할 때까지 논문을 그만 찾아보라고 권고했었다.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걱정도 너무 많다고.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써준 요양보호의뢰서에서 눈여겨볼 문구는 '대학 추천''내시경 수술 불가'였다. 따라서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다른 종류의 정밀검사와 진료를 받았지만 이곳 역시 수술에 대해선 뜨뜻미지근했다. (역시 재미없는 수술인 게 분명하다.) 아직은 증상이 없으니 추적검사를 하면서 지내다가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 수술을 고려하자는 것이었다. 엥? 마비 증상이 나타나면 그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어서 우리는 선뜻 수긍이 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는 척추전문병원에서의 수술을 신뢰하지 않는 뉘앙스를 꽤나 풍겼다. 이 병에 대한 수술이 시도된다면 3차 병원에서 시작해서 2차 병원으로 퍼져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당연히 상급종합병원을 필두로 해서 수술이 안착된다면 우리로서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의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신경외과에서 수술을 해주지 않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구태여 표현된 '타 대학 추천'이란 의견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강남의 한 척추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우리의 경험상 척추전문병원 의사들의 실력은 결코 의심받을 수준이 아니다. 매우 훌륭했다. 요즘은 ○○대학병원에서도 다른 척추전문병원으로 수술을 연계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수술 전 진료 때, MRI 영상을 본 선생님은 척수탈출 진단이 명확하다 판단하였고, 그날 바로 수술 날짜를 잡고 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 마비 등 ○○대학병원에서 잔뜩 겁을 준 것처럼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어 보인다고 하면서도 □□대학병원에서 일단 두고 보자고 한 거엔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아해하셨다.


 "증상이 지금 있는 거 아니에요? 머리 아프잖아요."


명쾌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시경 수술은 불가하다고 했다. 척수탈출로 인한 신경과 조직의 유착이 일어났을 가능성 때문이다. 수술 후에 들어보니 다행히 유착은 없었다고 하니 내시경 수술을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할 수도 있지만 등을 열어서 뼈를 일부 삭제하고 수술하는 건 그 자체로 감내해야 할 통증이 추가되는 것이니 내시경 수술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수술 당일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서 나는 초조함과 평온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대기했다. 일반화이긴 하겠지만 의사의 컨디션이 가장 좋다는 첫 타임 수술이고, 날은 더없이 화창했다. 기분 좋은 날씨처럼 수술도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실망에게 무방비로 당하지 않기 위해 애써 담담함을 유지했던 다.   


추석연휴가 껴있던 주까지만 해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가슴팍에 끈적임이 달라붙어 찬물을 끼얹어 보아도 차게 느껴지지 않은 날씨였는데, 남편의 수술 예정일 직전 드라마틱하게 가을이 찾아왔다. 등을 10센티가량 열고 수술하면 당분간 씻지 못할 텐데, 적어도 땀은 나지 않도록 선선해진 날씨에 고마웠다.


기다리다 보니 살짝 허기가 졌다. 체구가 작고 마른 나는 비축된 에너지원이 적어서인지 끼니를 거르면 곧장 기운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 와중에 병원 옆 별다방에서 샌드위치를 사 와서 꾸역꾸역 입에 욱여넣으며, 한 끼쯤 걸러도 아무렇지 않은 건강한 몸이 아닌 것이 새삼 못마땅했다. 그런 건강한 몸이라면 이럴 때 고상하게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을 텐데. (실제 나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수술하고 나온 남편의 보호자 역할을 똘똘하게 수행하려면 먹어야지. 기운이 없으면 손이 떨리고 현기증이 나니 수가 없다.






   예상 수술시간은 2~3시간이라고 들었는데, 남편은 4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병실로 돌아왔다. 3시간이 넘어가면서 약간 초조해졌지만 불길한 예감은 딱히 들지 않았다.


차디찬 몸으로 등에 피주머니(배액관)를 달고 나온 남편은 갑자기 10년은 늙은 얼굴이 돼있었다. 이가 부딪칠 정도로 턱을 덜덜 떨며 한기를 느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손과 발을 만져주면서 내 온기를 조금이라도 나눠주고자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실제로 수술시간이 그리 길었던 건 아니었다. 2시간 반 정도가 소요됐고, 마취하는 시간과 회복시간이 2시간 정도 걸린 모양이다. 입원기간도 보통 3~4일 정도라고 안내받았지만 남편은 10박 11일 만에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수술 직후 선생님께 드렸던 질문에 대한 답은 MRI검사 결과로 얻었다. 남편이 보기에도 누출부위와 절개 부분을 이중삼중으로 꼼꼼하게 막아놓으신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사진 볼 줄 알죠? 논문을 하도 보셔서 반 전문가가 돼가지고."


이 반 전문가는 이 병을 앓으면서 같은 병을 앓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처럼 방법을 찾느라 고생하지 않도록, 이미 고생 중이라면 하루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자기가 찾아본 논문들의 내용을 pdf파일로 정리해서 환우들과 공유했다. 나는 함부로 이런 걸 만들어서 올려도 되냐고 걱정했지만 자기의 의견은 단 한 줄도 없고, 전부 공개된 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쇠고랑 찰 일은 없을 것 같다. 남편의 바람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을 것이다.






   고작 2~3mm였다고 한다. 경막의 찢어진 크기 말이다. 작은 구멍 때문에 180cm에 가까운 전체가 무력해질 있다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사람의 몸은 정말 섬세하고 신비로운 같기도 했다.


좌우지간 그래서 우리의 터널은 끝났느냐 하면 아직은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술이라는 큰 산은 넘었지만 즉시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말끔해진 것이 아니라 이제 막힘으로 인한 반동성 고압 두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저압을 겪은 기간이 길수록 즉, 발병기간이 길수록 몸이 뇌척수액의 밸런스를 찾는 기간도 길게 걸린다고 한다. 남편의 경우 아픈 기간이 1년 3개월이 넘었으니 회복 기간을 3개월 정도로 예상한다. (이것도 논문에서 찾은 것이다. 남편은 논문에 중독된 건 아닐까? 국영수 다시 공부해 볼 자신 있으면 의대 진학 추천한다. 파고드는 근성이 있으니 잘할 것 같다.)


그래도 이제 깔딱고개는 넘었으니 앞으로의 몇 개월은 아주 완만한 언덕을 오르는 기분으로 회복하면 되지 않을까? 염려쟁이 남편이 그 기간만큼이라도 조금은 마음을 놓고 우리를 지키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신뢰하며, 여유롭게 견딜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청명한 가을처럼 남편의 머릿속이 갑자기 맑아진 어느 날, 우리는 어떤 마음일까?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을까? 1년 넘도록 남편의 걱정받이로 지낸 효비(효지야+도비)가 양말을 선물 받는 날이 얼른 왔으면... (아픈 동안 우리 너무 심하게 친해졌잖아?)




효비도 자유를 꿈꾼다. Set me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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