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다니던 대학원에 명리학을 공부하시는 분이 계셨다. 남편에게 마흔이 넘으면서 대운이 들어올 거라고 했다. 갓생의 결실을 맺는 건가? 주식이 오르려나? 아님 로또? 남편에게 어떤 좋은 일이 생기고, 나는 그 덕을 보려나 내심 기대했다.
쥐뿔이나... 남편은주식이 '떡상'하거나로또에 당첨되는 대신 병에 걸렸다. 게다가 병명도 생소하고 치료도 까다로운 아주 신경질 나는 병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찾아온다. 그동안 살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도 겪었고, 마음이 외롭고 괴로운 시간들이 있었지만 질병으로 인해 이렇게 긴 시간 힘들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직접 아픈 것은 아니었고, 길다는 것도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건강이 소중하다는 건 당연하고 또 알고 있던 얘기지만 건강을 잃은 후에 느끼는 건강에 대한 마음은 소중함 그 이상이었다. 절실함에 가까운 것이다.
남편이 아픈 동안 여러 번 생각했다. 2023년 6월 11일, 남편이 당직하다 잠들지 않았더라면? 잠든 곳이 소파가 아니라 침대였더라면? 혹은 당직이 아니었더라면? 그럼 아프지 않았을까? 피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수가 있었던 것 같지만 정확한 답을 나는 내릴 수 없다.
남편은 너무 바쁘게 살았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몸이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어버렸다.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하고 살았는지 그 이유를 하나로 특정할 수는 없겠지만 종합해 보면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의 결과는 질병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고, 나아지고자 했던 삶은 오히려 멈추고 도태되어 버렸다. 아픈 동안 살면서 누리는 많은 것들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독일까지 갈 뻔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국내에서 수술도 마쳤고, 연재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지난 몇 주 동안 왠지 아무것도 쓰고 싶지가 않았다. 왜였을까?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져 만사가 귀찮기도 했고, 수술 후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줄 알았지만 남편에게는 여전히 통증이 지속되고 있어 실망스럽기도 했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던 나는 글쓰기의 방향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제 며칠 후에 추적검사로 수술 결과를 확인해 봐야 하고, 검사 결과 이상 없다 하더라도 몸이 밸런스를 찾을 때까지는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해피엔딩이 잠정적으로 보류됐다.
터널을 통과하고 맑고 푸른 하늘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어느새 새로운 터널에 또 들어와 있다. 이 터널은 또 얼마나 길지 남편은 아직도 불안해하며 자주 운다.
이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또 얻는 중일까? 그럴듯한 교훈이 많았으면 좋겠지만 딱히 모르겠다.
부부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든지, 제한받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다든지, 하는 것들은 일시적인 것일 뿐, 남은 건 남편 등에 한 줄로 선명히 남은 10센티가량의 수술 흔적과 언제 또 재발할지(혹은 아직도 새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그냥 견디고 있다. 그러나 함께 견디고 있다. 우리는 같은 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좋을 때 그랬듯이 이 시간에도.
여전히 티격태격하고, 문득 한 번씩 뒤통수를 세게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인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남편이 아픈 건 그저 어떤 삶에든 존재하는 '불운'일지언정 '불행'까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잘 견뎌준 남편에게 고맙고, 남은 시간 조금만 더 힘을 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