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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15. 2021

가독성없는질식의글

2020년7월21일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모두가 각자의 삶의 극장에서는 주인공이 되어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출연하고 싶은 작품의 관람객은 나의 삶에 있지 않은 이들이기를 바랐다. 새벽에 누워서 잠을 뒤적거리다보면 결국 졸음은 찾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노트북을 다시 열고 의미도 없는 유투브와 넷플릭스를 들여다본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왜 순수한 글을 쓰지 못하는 장애를 해결하는 것이 최근 글쓰기의 가장 큰 이슈이기 때문에 오탈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렇게나 써버리려 노력하는 글이 새벽에 남는다. 인스타그램에 글 계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냥 나는 너무 괴로웠고 그 괴로움이 나라는 그릇에서 넘쳐서 어떠한 흐름과 얼룩을 만들어 내면 그것을 인화해 간직하는 용도 이상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기 짝이 없는 이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기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라는 나무의 근간이 위험해지면 가장 먼저 가지치기 당하는 것은 내가 쉽게 얻고 잃을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것은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다른 모양으로 된 돌멩이를 집어 들 수 있는 시냇가와 같았다. 선택이 가능한 감정에는 소용돌이가 없다. 빠져나오지 못할 여지 또한 없고 그저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깊이와 물살에만 몸을 맡긴다. 그것이 안전하다고 배웠고 스스로 안전에 대해 유의, 또 유의를 기했다. 그 결과는 반쪽짜리 무언가를 계속해서 양산해냈고 과거에 특별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안내하던 팻말을 버리고 떠났다. 열심히 한다는 것은 온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 나는 그 성취에서 오는 만족에 도취되어 살았다. 여전히 나는 잘하고 싶다. 실제로 잘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신경써야 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사회성이란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니까. 남들이 돈을 내고 취미로 삼는 것들이 돈을 받고 하는 경제활동이 되고 즐거움보다는 인생의 연료로 쓰여지게 되었다.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일보다 조연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질식의 주된 원인이다. 누군가는 자신은 회 밑의 무채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삶의 방식에 대해 역설하였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의 몸부림이 혹자의 거대한 몸짓에 비하면 우아하지도 않고 고풍스럽지도 않을지 모르나 그저 움직일뿐. 어떤 감정을 적어야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가사도 모르는 팝송을 틀어두고 키보드 소리를 내는 일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소위 창작, 혹은 감정의 배설이 오늘도 이루어진다. 좀 더 좋은 방법으로 안정을 찾고 나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면 오늘 내가 오른 한 계단보다 더 위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공상. 항구 없는 바다 위의 배. 일요일 현대백화점 지하 1층 주차장. 좋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나쁜 이들. 도무지 매치되지 않는 것의 연속. 안정적인 사랑의 행복과 의아한 순간에 찾아오는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의 무게를 정확히 매겨줄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도, 사랑도. 간섭하는 모든 것은 나를 어딘가에 매여있게 한다. '너 없이는 난 안 돼.' '나한텐 오직 너뿐이야.'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싶은 말이다. 지금의 내가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애석하게도 공기밖에 없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죽인다. 치사율은 약 10% 정도. 숫자놀음이 우습지만 너희는 만나는 족족 나를 죽고싶게 하는데 나의 삶에는 그 접촉을 막을 마스크 한 장 찾아볼 수 없구나. 멍청하게 일상을 구성해서 기쁘다. 3일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저 메신저로, 혹은 영상으로. 눈을 뜨고 의무적인, 일상적인 연락을 전하고 씻지도 않은 채로 할 일을 하다가 늦은 밤 돌아와 씻고 잠든다. 그렇게 생활한지 일주일 정도. 자발적 고립이 나에게는 안정을 가져다주다니. 심지어 즐겁기까지. 관계는 이제 염증이고 보온도 보냉도 모두 스트레스일뿐이다. 타계책을 찾을 것이나, 지금은 아니다. 새벽 5시에 무슨 헛소리를 쓰고 있는 것인지. 헛소리가 내밀 구원이 숱한 사랑의 위로보다 낫다는게 웃프다. 오늘의 쓰레기 같은 가독성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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