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고양이 (9편)

50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나의 미술, 음악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

by 김경미

반항기 가득 찬 여고 시절


75년 12월쯤 포크 음악계에 폭풍처럼 대마초 파동이 몰아닥쳤다. 연예계에 들이닥친 대마초 파동이 한 낱 중학교 졸업을 앞둔 여학생에게 무슨 상관이더냐! 그러나 포크음악에 빠져 매일 심야 음악프로 청취는 물론 주 1회 이상 통기타 가수 공연을 보러 다니던 내게 있어서는 고등학교 진학과 더불어 삶의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포크 가수들이 거의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음악공연은 관심 사안이 아니었고 여상에 진학한 만큼 각종 자격증 따는 일에 매달리느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다니던 것도 모두 멈추어야 했다.


내가 유일하게 자신감을 갖고 있던 미술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미술시간에 상업미술을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매시간마다 과제를 산더미처럼 내 주어 방과 후에도 집에서 밤늦게까지 미술 숙제에 매달려야만 했다. 미술은 완전한 자유로운 표현의 세계라고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사립 초등학교 시절, 등록금을 제 때 납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들께 늘 외면당하기 일쑤였던 나는 그 상처로 인해 모든 선생님들께 약간의 불신과 반항 의식을 품고 있었다. 때문에 나 스스로 선생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회피하곤 했다. 그러한 내게 상업미술을 강요하며 밤늦도록 숙제에 매달려야 할 만큼 많은 과제를 부여했던 미술 선생님에게 좋은 감정이 들 수가 없었다. 그토록 미술을 사랑했고, 유일하게 자신감을 가진 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의 반항기가 작동했다. 어느 날 미술시간, 고의적으로 준비물을 아예 챙겨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평소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학생들을 수업시간 내내 책상 옆에 무릎 꿇게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기꺼이 무릎 꿇는 것을 선택했다. 선생님 입장에서 나 같은 학생은 정말 밉고 짜증 나는 존재였으리라. 그러나 나는 철없는 마음에 미술은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특히나 즐거움이 아닌 미술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기에 기꺼이 그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선생님에 대한 반항기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무척 좋아했던 영어 선생님께서 어느 날 수업시간에 특정 점수 이하 시험성적을 받은 학생들에게 틀린 개수만큼 매를 드시는 것이 아닌가! 특히 학생들 손 등의 손가락 뼈 부분을 30센티 자로 때리는 것이었다. 자를 세워 손 등의 손가락 뼈를 때리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나는 영어를 무척 좋아했기에 맞지 않아도 될 만한 성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성적을 이유로 아이들을 때리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긴 나는 영어 선생님께 왜 아이들을 때리시느냐고 항의했다. 덕분에 나는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불려 가 영어 선생님은 물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혼쭐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담임 선생님은 나를 혼내며 “언니는 안 그러는데 너는 왜 대체 그 모양이냐~!!” 라며 매우 뼈아픈 한 마디를 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같은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작은언니의 담임을 맡은 바 있었기에 모범생 언니를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어떻게 그렇게 되바라질 수가 있었을까? 특히 선생님 입장에서 본인의 교육 신념에 반기를 든 내가 얼마나 밉고 어처구니없으셨을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으시겠지만 스스로 반성하며 영어 선생님께 사죄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


반항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하자면, 나의 이 반항기가 어느 정도 DNA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믿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부기 시간이었다. 부기란 한 기업의 재무회계 관리기법을 배우는 회계학의 기초가 되는 과목이다. 요즘 에야 기업 회계를 전산화하여 자동으로 처리하는 시대지만 당시만 해도 일일이 수기로 작성해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졸업 후 기업의 경리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필수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할 만큼 상업학교 학생들에게 중요한 과목이었다.


여자 부기 선생님은 크지 않은 체구임에도 학생들 사이에 폭군으로 군림하던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워낙 없이 살던 시절이라 그랬는지 1-2 교시가 끝나면 배가 고픈 나머지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기 일쑤였다. 그러나 부기 시간에 행여 반찬 냄새라도 풍길 때면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은 친구는 수업시간 내내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아, 도시락을 잡은 채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어야 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냄새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수업을 진행하였을 만큼 선생님은 학생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적었던 분이셨다.


감히 학생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적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급식 세대가 아니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쉬는 시간 도시락 까먹기’에 그토록 가혹한 벌을 주는 선생님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험한 바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고 존경했던 영어 선생님은 똑같은 상황에서 눈가에 가득 웃음기를 머금으며 아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 주셨기 때문이다.


상업학교에 처음 진학한 학생에게 부기라는 과목은 너무도 낯설고 생소했다. 상업부기, 공업부기, 차변, 대변 등등 우선 용어부터 이해하기 어렵기에 첫 입문자가 쉽게 따라가기 힘든 과목이다. 첫 시험을 치렀는데 나는 60점대를 맞았다. 부기 선생님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60점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학생들의 부모님을 학교로 소환하셨다. 물론 우리 엄마도 학교에 오셨어야 했는데 놀랍게도 아버지가 선생님께 나를 통해 편지 한 통을 전달하셨다. 대략 “아이가 성적을 제대로 못 거둔 것은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선생님의 책임일 수도 있는데 첫 시험 한 번 잘못 치른 것을 가지고 부모를 부르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 든 선생님은 격분했고 수업시간에 전체 학생에게 공개하며 내게 망신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내게 눈 길 한번 준 적이 없을 만큼 냉랭하게 대하셨다. 선생님의 의도는 부기라는 과목이 상업학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해 취하신 조치였겠지만 아버지는 그것이 지나친 처사라고 여기셨던 것 같다.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선생님의 처사가 분명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필수 과목인 부기 공부를 등한시하는 것을 방지하여 한 명이라도 조기 취업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특단의 조치려니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으리라. 선생님께서 “부모님 오시라 해!”라고 하셨으면 두 분 중 한 분이 그냥 와 주셨으면 되었을 것을… 이렇듯 나는 아버지의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막내였다.


이후 나는 부기 학원에 다니며 그렇게도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던 부기라는 과목에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상업학교 졸업생에게 요구되는 2급 자격증을 넘어 회계학과 대학생이 도전하는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부기 1급 자격증은 학교에서 부기 경시대회에 대비키 위해 소수정예 학생들을 훈련시켜 도전하는 것이었다. 학원을 다니며 혼자 공부한 내가 1급 자격증을 딴 것은 전교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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