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고양이 (10편)

50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나의 미술, 음악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

by 김경미

제3화 : 고양이에게 반하다


아기 고양이 제리를 입양한 후로 우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평소 서로 간 크게 대화가 없었던 가족들이 공동 관심사가 생기게 되자 할 말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몇 달 전 남편이 직장 근처인 여주로 이사,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게 되어 허전하게 느껴졌던 집 안에 다시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귀가하면 각자 방문을 닫고 들어가 식사시간이 되어서야 얼굴을 내밀곤 했던 아이들이 달라졌다. 사실 요즘처럼 사생활 보호가 중요시되고 있는 시대에 암만 가족이라 할지라도 방문을 닫고 생활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리가 우리 가족이 된 뒤 딸과 아들, 그리고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게 되었다. 대낮에는 물론이고 한 밤중 잠자는 시간에도 방문을 개방했다.


갓난 시절 죽음 직전까지 갔다 인간에 의해 구조되어 살아났기 때문인지 제리는 사람을 무척 잘 따르는 개냥이 과 고양이다. 처음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혀 낯 선 기색 없이 온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호기심 많은 녀석은 지금도 온종일 여기저기 집안을 탐색하며 다니다 심심하면 나에게 놀아 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가족들은 제리가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기 위해 저마다 방문을 열어 놓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방에 좀 더 머물기를 바랐다.


사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서는 각자의 태블릿 PC가 있으니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함께 TV를 보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가끔씩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서로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가 대화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제리 입양 후에는 식사시간은 물론이고 수시로 거실에 함께 모여 앉아 제리의 재롱을 보곤 했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카톡을 나누며 제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공유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제리는 입양 직후에는 밤마다 딸의 머리맡 베개를 침대 삼아 잠들었다. 때론 워낙 체구가 작고 가벼웠으므로 딸의 목에서 마치 목도리가 된 포즈로 잠들기도 했다. 딸이 제리를 데려왔고 많은 것을 챙겨 주니 딸을 따르는 것이 당연했지만 나는 매일 새벽, 교회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서며 잠든 제리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딸이 무척 부럽게만 느껴졌었다.


남편이 여주로 이사한 뒤 나는 내 방의 구조를 바꾸었다. 커다란 킹 사이즈 더블 침대를 아담한 슈퍼 싱글 사이즈로 바꾸었고 원목으로 된 묵직한 나의 책상과 디지털 피아노를 새로 들여놓고 나만의 시간을 즐겨왔다. 그럼에도 남편의 부재에 따른 허전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혼자만의 자유로움이 더 크기도 했지만 약간의 적적함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잠에 취해 있던 나는 침대 아래쪽에서 아주 작은 진동을 감지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손바닥 만한 아기 고양이 제리가 침대 위로 올라와 내 발 밑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그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때의 기쁨과 감동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부터 제리는 밤마다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잠들어 우리 가족 모두를 ‘제리 바라기’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제리를 만나기 전에는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강아지는 워낙 영리하고 사람과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에 그렇다 쳐도 고양이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하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리를 만난 후 마치 예전에 갓난 우리 아이들을 대하듯 사랑으로 돌보며 놀아주다 보니 어느덧 제리가 나를 진짜 엄마로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제리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내 다리에 매달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야옹야옹~” 하며 무엇인가 간절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서 신나게 장난감 있는 곳으로 먼저 내달리는 것이었다. 누나와 형 하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자기와 놀아 달라는 의사표시였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양이 특유의 “야옹~” 하는 표현은 같은 고양이들끼리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에게만 하는 의사표현이라 한다. 제리는 매일 아침부터 내게 야옹 대면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어쩌다 나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무슨 놀이를 할 것인가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신이 나서 달려왔다. 나는 그런 제리 덕분에 예순을 넘긴 나이에 어린아이들을 키우던 30여 년 전의 젊은 엄마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 호기심 많은 아기 고양이 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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