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갚은 고양이 (23편)

50년 만에 화가의 꿈을 이룬 나의 미술, 음악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

by 김경미

‘반려 악기’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인생의 역경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며 음악의 치유효과를 공유하고 싶다고는 했지만 악보를 보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수준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나는 퇴직 6개월 전부터 기타 학원의 전문가 과정에 도전했다. 단순히 코드를 보며 기타를 치는 것을 넘어 보다 체계적으로 기타 실력을 키우고자 했다.


그러나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한 번 듣고 이해했지만 고개를 돌리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배운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경험. 중년 이상의 분들은 아마 다 한 번쯤은 경험해 보신 바 있을 것이다. 배우면 잊히고 배우면 또 잊힌다.


나는 그럴 경우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무한 반복! 잊히면 반복한다. 또 잊히면 다시 반복한다. 딱딱한 바위에 글씨를 새기 듯이 중년의 건망증, 굳어진 뇌에 새로운 지식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무한 반복 외에는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터득했다. 나는 그렇게 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국내 음악 관련 민간단체에서 발급하는 기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나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2017년 6 월, 32년 만에 공직에서 퇴직하게 되었지만 전문위원으로 2년을 더 근무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의 꿈이 2년 후로 미루어졌지만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2년간의 준비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그 2년의 시간 동안 기타는 부족한 음악이론과 주법 등을 인터넷을 통해 독학하며 보완했고 미술은 퇴근 후 꾸준히 학원을 다니며 연습을 계속했다. 미술은 드로잉 단계를 넘어 수채화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물을 느낌이 주는 수채화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 시작부터 수채화가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문위원은 9 to 6가 가능한 직책이었다. 이미 막내를 제외한 두 아이가 다 성장하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정시 퇴근이 가능했기에 기타와 미술을 병행하기에 별반 어려움이 없었다. 2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나는 드디어 34년 만에 완전한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백수, 아니 백조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2019년 7월부터 본격적인 나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평생을 빡빡한 일정에 묶여 살다 나에게 주어진 무한대의 시간을 과연 어떻게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약 3개월가량은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우선 몸무게가 빠졌다. 평소에 그 많던 회식과 공식. 비공식 모임 등으로 늘 필요 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하곤 했었던 나는 퇴직하자마자 집안 살림을 직접 관장하며 매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로서는 그것이 퇴직 후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왠지 세상과 멀어져 외톨이가 된 것 같은 우울함과 더불어 입맛도 잃었다. 먹는 것이 부실해져서인지 급속히 살이 빠지니 바로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퇴직 후 꿈꾸던 많은 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는데 이렇게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가사를 위한 시간을 늘리고 건강을 챙겼다. 그리고 서서히 자동차에 시동을 걸 듯 내가 꿈꾸었던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퇴직 시 마련된 자금으로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꿈꾸었던 그대로 “미사랑”(美舍廊)이라는 명패를 만들어 입구에 달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탁자와 기타를 가르치기 위한 여러 가지 소품들을 마련하고 그동안 그렸던 미술 작품들을 벽에 붙이는 등 작고 소박하지만 포근한 나만의 공간을 꾸몄다. 그동안 수고했던 나 스스로에게 선물한다는 의미로 최고 브랜드 기타를 새로 마련하기도 하였다. 예쁜 명함도 만들고 기타 교재도 제작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타를 배울 수강생들을 모집하는 일이었다. 사실 공직생활 30여 년을 거치며 승진을 거듭할수록 잡다한 실무에서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결재하는 일이 주요 업무로 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일 것이다. 나 또한 다름없었다.


그러나 퇴직 후에 수강생 모집을 위한 홍보활동을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우선 광고전단을 만들기 위한 카피를 구상했다. 사실 카피 구상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기타 레슨을 처음 계획했을 단계부터 순간순간 머리에 떠올리던 문구를 정리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백세 인생을 함께 할 평생 친구, ‘반려 악기’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반려 동물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반려 악기. 언젠가 낙원동 악기상가를 들렀을 때 광고 벽면에 쓰인 ‘반려 악기’라는 문구에 가슴이 쿵 하고 울렸던 적이 있었다.


따라서 그 문구를 인용한 대표 카피를 만들고 내가 기타를 가르치려고 하는 가장 큰 목표인 ‘음악을 통한 치유효과’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여 광고전단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디자인을 전공한 딸의 도움을 받았다. (그럴듯한 광고 카피라 생각하며 혼자 흐뭇해했었는데 훗날 광고회사에 다니는 큰 아들과 회사 동료 카피라이터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진작에 카피라이터로 진출해 볼걸...)


이번엔 전단 배포가 문제였다. 동네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를 통해 아파트 게시판에 전단을 부착했다. 전체 아파트 입구 하나하나를 돌며 전단을 부착하는 데만 꼬박 한 나절이 소모되었다. 다음은 직접 전달을 위해 백화점 출입구에 서서 전단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광고 전단 배포 아르바이트를 몇 차례 한적은 있었지만 공직으로 살아온 34년의 세월 중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이 전혀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광고전단을 돌리던 아주머니 한 분은 머플러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전단을 돌리고 계셨지만 나는 활짝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악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으며 전단을 배포했다.


반응은 정말 가지가지였다. 열 중 서너 명만이 전단을 받아 갔고 개 중 한 두 명은 기타에 관심을 표명했다. 나머지 분들은 본 척 만 척도 하지 않거나 아래위로 훑어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11월 바람은 쌀쌀했지만 흥에 겨워 이틀 동안 무작위로 광고 전단을 배포했다.


결과적으로 광고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전화는 수 없이 걸려왔지만 실제 기타를 배우겠다고 찾아오신 분들은 7-8명 정도였다. 나 역시 기타 레슨을 직업적으로 할 생각은 없었기에 적절한 인원이었다. 수강료는 최소화했다. 경험도 없었을뿐더러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부 할인해 달라고 하는 주부들에게는 원하는 만큼 저렴하게 받았다.


그저 막연한 꿈에 불과했던 기타 레슨, 용기 없이는 도저히 실행 불가능한 나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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