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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May 13. 2023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목적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릴까?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고대 유적지 동굴 등지에서 사냥하는 모습이나 다산을 기원하는 여러 가지 그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것이 사람의 타고난 본능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림은, 미술은 단지 본능적인 미의 추구 외에 그 의미가 매우 각별했다. 어린 시절, 내게 있어 그림은 상처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선생님이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받는 외톨이였다. 그러한 내가 유일하게 칭찬을 받은 것은 미술시간뿐이었다. 때문에 나는 특별한 근거도 없이 스스로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라고 믿고 자랐다.


그럼에도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었다. 그저 중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미술반에 두어 달 참여했고 연애 시절 찻집에서 연습장에 남편의 얼굴이나 함께 대학 캠스에 누워 바라보던 남산의 불꽃놀이 장면을 그렸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산후조리를 하며 엎드려서 옆에 누워있던 아이를 그렸던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미술과 전혀 무관한 긴 세월이 살아가다 내가 다시금 그림을 생각한 것은 오십 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공직에서 은퇴를 앞두고 마치 잊었던 첫사랑처럼 불현듯 그림이 떠올랐다. 곧바로 학원에 등록해 정식으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나는 당돌하게도 그림을 단순한 취미활동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화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지만 적어도 취미로 몇 년간 끄적이다 끝내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기적처럼 2021년 처음 도전한 공모전을 통해 미술작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어서 금년 1월 첫 번째 개인전.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나의 그림의 역사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개인전이 끝나자 혹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1월 초 개인전을 마치고 거의 두 달 정도 자질구레한 습작 외에 정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3월이 되어서야 협회 정기전을 위한 작품을 간신히 만들어 냈고 깊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 자신을 향해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그림을 통해 무슨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갈수록 미술작가로서 나의 재능이 의심되기도 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다 갑자기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아이들에게 온갖 잡동사니만 남겨놓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먼 훗날 처리하기 곤란한 쓰레기만을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 자신에게 묻게 된 것이다.


미술작가가 되어 전시회를 할 때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 “그림을 얼마나 파셨어요?” “많이 팔려야 할 텐데…” “첫 개인전은 대부분 완판 한다는데요?” 등 그림 판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물론 미술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많은 미술작가 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졌다. 나의 그림이 경제적 가치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왠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나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기쁘기 그지없다. 내 그림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누군가로부터 내 그림을 인정받기 원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그림을 누구에게나 그냥 선물로 준다?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화가로 등단하고 들은 이야기“그림은 절대 선물을 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럴 경우 선물 받은 사람이 이사나 인테리어를 할 때 언젠가는 쓰레기통 속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내 작품을 내가 낳은 아이 같이 여긴다. 작품이 팔려 나를 떠나갈 때 마치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화가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그렇기에 선심 쓰듯 아무에게나 선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오랜 슬럼프를 끝내고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내가 그림과 함께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변 멋진 사물이나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고 내가 그린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감동하는 것. 그 같은 감동의 과정을 내려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림을 통해 주어진 재정적인 축복이 있다면 주위 여러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리라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끼고 그로 인한 재정적인 유익을 필요한 사람에게 환원하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목적이 될 것이다.




과거 사진첩에서 아주 오래된 낡은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막내가 태어나 한 돌이 채 되지 않던 시기 우리 삼 남매가 어울려 찍은 사진이다. 너무 낡아 표면에 일부 벗겨진 흔적까지 있다.


순간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했지 정작 우리 아이들 그림은 한 점도 그린 적이 없음을 깨닫고 곧바로 붓을 들기 시작했다. 나의 어여쁜 세 아이들이 그림으로 어떻게 탄생될지 몹시도 궁금하다. 결과가 어쨌거나 그림을 그리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그림을 그릴 때보다도 더욱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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