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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Feb 16. 2023

엄마의 마음, 엄마의 기도


서른 다섯 해 전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기쁨으로 인해 마치 천하를 얻은듯한 기분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연하였던 남편은 내가 결혼 후 임신 5개월이었던 당시 군에 입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임신 중임에도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는 나날을 보냈으니 지금 생각하면 뱃속의 아이에게 정말 못할 일을 한 것 같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첫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아이를 기르는 기쁨에 비로소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약 2년간 주말이면 아이와 더불어 남편 군부대로 면회를 다녔다. 아이는 전철과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며 군부대가 있는 동두천까지 이동하는 서너 시간 동안 한 번도 울거나 보채지 않는 순둥이었다.


내게 있어 큰 아이의 의미가 그랬었다. 어느 부모가 아기의 탄생에 감격하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있겠냐마는 나의 첫 아이는 정말 각별했었다.


지난주 혼자 독립해 살고 있는 큰 아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식사라도 할까 하는 생각에 모처럼 아이와 통화를 했다. 통화 중 큰 아이가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며칠 전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녹내장이 의심된다네요…”


그 말은 내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녹내장에 대한 올바른 사전지식이 없는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그 말은 곧 “나 실명될 수도 있대요…”라는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다. 큰 애는 고도근시로 어려서부터 눈이 좋지 않았다. 시력 교정을 하려 해도 일반 라식이 라섹으로는 교정이 안될 정도의 상태였기 때문에 공포가 더욱 컸을 것이다.


곧바로 인터넷을 통해 녹내장에 대한 온갖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여러 가지 사례가 나왔지만 유독 예후가 좋지 않은 사례만 가지고 마치 내 아이가 낼모레 실명이라도 하는 것 마냥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신파극을 썼다.


그때의 내 심정을 말하자면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두 눈을 주고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아이의 눈만 정상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내주고 싶었다. 최악의 경우 안구 기증에 대한 검색까지 해가며 치료방법을 혼자 모색해 봤지만 안구기증은 사후에나 가능하다 하여 절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이튿날 새벽부터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다. 30대 중반의 아들임에도 기어코 나도 함께 병원에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병원을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수시로 눈물이 샘솟았다.


병원은 만원이었다. 아니 도대체 녹내장 환자가 얼마나 많기에 병원이 이렇게 붐비는 것일까? 예약이 안 된 상태로 진료를 신청하였기에 접수부터 검사 완료까지 서너 시간이 소모되었지만 당일 진료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결과는 며칠 후에나 나온다고 했다. 아이는 그 길로 출근을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도 천근만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다시 차근차근 녹내장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보았다. 요즈음 휴대폰, SNS 이용이 늘어나면서 젊은 20-30대 연령층의 녹내장 환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 큰 아이처럼 고도근시에게도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초기에만 발견되면 약으로 시신경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고 했으며 최근에는 건강검진은 물론 라식, 라섹 등 수술과정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우리 큰 아이도 건강검진 과정에서 발견했으니 초기이겠지, 아니 초기여야 한다. 나는 아이의 상태가 초기 단계이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다음 검진일을 기다렸다.


다음 검진일, 조금 극성맞게 보인다 할지라도 다시 삼십 중반의 아들 병원길을 동반했다. 내 귀로 의사 선생님의 검사결과를 직접 듣고 싶었다. 얼마 되지 않겠지만 병원비도 내가 직접 계산해 주고 싶었다.


이것이 삼십 년 넘는 공직생활 동안 어린 두 동생들에게 치여 엄마관심을 제일 덜 받을 수밖에 없었던 큰 아이에 대한 나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렇게 큰 아이에게는 늘 미안함이 내 마음 가운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료결과 다행히도 초기 상태로 판명되어 한 가지 약물로 관리하면 되는 것으로 나왔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며칠 간의 나의 신파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너무 경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멋쩍음이 있었지만 그러나 입에서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모처럼 큰 아이와 점심을 하며 나의 여러 가지 심경을 토로했다. 엄마에게 있어 너의 존재가 어떠했는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독백처럼 아들에게 쏟아냈다.


언제부터 인가 엄마의 지나친 관심 자체가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이같이 낯 간지러운 대화를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이번 일을 겪으며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들에게 고백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해프닝의 작은 소득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큰 아이는 평생을 꾸준히 눈 관리를 해야 할 테고 나는 엄마로서 아들의 눈의 상태가 악화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의술이 더욱 발전하여 녹내장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날이 와 주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건강검진 등을 통해 눈 건강관리은 물론 각종 질병 예방에 더욱 힘쓰시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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