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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미 Feb 08. 2023

첫 발자국을 내딛다 (4)

개인전 마지막 이야기....

며칠 전 뜻밖의 메시지와 전화를 받았다. 전시회 기간 중 4호 크기의 작은 그림 한 점을 사 가신 어느 목사님이셨다.


메시지는 내 그림을 화분과 함께 벽에 장식한 사진이었다. 그리고선 바로 전화가 왔다. 그림을 벽에 장식하고 난 후 보면 볼수록 감동이 밀려온다며 이미 지불한 그림 값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다시 송금하시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몇 차례 고사하다 끝내 기꺼이 목사님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문득 이것은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너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개인전 기간 내내 꼬박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갤러리를 지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에서 가깝지 않은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갤러리에 출근하듯 했다. 오전 시간은 관람객이나 지인들의 방문이 뜸한 시간이어서 서두를 필요가 없었지만 그 시간 갤러리에서 홀로 차를 마시며 나의 그림을 둘러보는 것이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방문해 주셨고 여러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해주셨다. 초보 작가로서 관람객들의 응원의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용기와 위안을 주는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작품을 철수하는 마지막 날 감회가 밀려왔다.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매진했던 시간들과 음악회의 감동이 다시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각 방이며 거실 벽에 그림을 걸어 집안을 마치 갤러리처럼 꾸며 개인전의 여운을 아직까지 즐기고 있다.


그날부터 마치 커다란 고개 하나를 넘은 듯 마음의 모든 긴장이 풀어지고 어깨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고 밤에 쉽게 잠들기 시작했다. 개인전, 음악회를 앞두고는 잠자리에 누워도 가슴이 두근대고 온갖 상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었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의외로 큰 부담감을 가졌던 것 같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은 듯한 해방감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난 2021년 그림을 시작하고 나서 첫 그룹 전시회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총 8점을 전시했는데 그중 작은 그림 4점이 팔리는 경험을 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림을 팔아 돈을 번 것이다. 그리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림을 그려 얻은 첫 열매인 이 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 것인가를 생각했고 결국 코로나로 형편이 어려워진 가까운 지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를 했다.


이번 개인전을 앞두고 그림 판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부 작가들은 첫 개인전 때 완판을 하는 이도 있다지만 나는 전혀 그런 기대를 할 수 없었고 그럼에도 뜻 밖에 많은 분들이 그림을 사 주셨다. 그림을 판매한 대금과 축하금이 제법 적지 않게 통장에 쌓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 돈의 쓰임새에 대해 아무 생각 하지 않았다. 전시회 준비자금이 수월치 않게 들어갔으므로 당연히 그 준비자금을 충당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후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온 설 연휴를 즐겼다. 설 연휴기간 중 언니들과 함께 모였고 우연히 어려운 일을 당한 지인 한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음 한가운데 안타까움이 밀려왔고 막내가 졸업하는 내년쯤 여유가 생기면 정말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 후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문득 "막내 졸업 후 도울 생각이라면 지금은 왜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림 판매 대금이 머리에 떠올랐다.


내게 그림이란 무엇인가? 삼십여 년간 공직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세 아이들을 양육하고 남편의 사업실패로 힘든 가운데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은퇴 이후에 그림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덤으로 받은 인생의 보너스가 아닌가?  그림으로 금전적인 영화를 누리고자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곧바로 언니를 통해 내 마음을 전달하고 나니 마음속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나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덤으로 주어진 내 인생에 감사하며 그림과 씨름하는 한편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며 하루하루 또 다른 발자국을 남기기 위한 작업을 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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