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
구김 없이 자란 그의 밝은 미소가 참 따스했다. 그 옆에 있으면 나도 따뜻하고 맑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날이 선 나의 말들을 그는 부드럽게 받아주었고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나를 그는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늘 우리의 미래에 대해 꿈꾸었다. 나는 처음으로 ‘결혼’ 그리고 ‘가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의 여자로, 한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 상당히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는 언제나 진지했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내가 꿈꾸는 미래와 그가 꿈꾸는 미래가 똑같았다. 나는 '드디어 나의 인연을 만났구나' 그리 생각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확신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사람이었고, 나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옷 한 벌을 사더라도 가격을 비교해보고 발품을 팔아서라도 좀 더 저렴한 걸 사려는 내가 그에게는 궁상맞고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내가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며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서로의 집에 인사를 드리고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가던 어느 날 족발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처음으로 그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보지 못했던 꽁꽁 숨겨온 나의 이야기들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버텨왔는지, 어떻게 지금의 멋진 내가 될 수 있었는지. 담담하게 말했지만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했던 건 아니다. 그저 나를 좀 더 이해해주길 조금은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 단지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는 알아야 할 자격이 있었고 나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충격과 놀라움에서 점점 실망과 경멸로 변해가던 그의 눈빛은 결국 나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던 그는
“다음에 네가 누굴 만나든, 이런 이야기... 절대 하지 마.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런 가정에서 네가 뭘 배우고 살았겠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화살처럼 가슴에 박혀 날아들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구나....”
말문이 막혔다. 한없이 작아졌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차라리 그냥 말하지 말지 그랬어... 아무 말도 하지 말지”
그렇게 우리는 끝이 났다.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일상은 잘도 굴러간다. 밥도 먹고 출근도 하고 친구들도 만난다. 뭐 이별쯤 했다고 해서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친구들에게 진짜 이별의 이유를 말할 순 없어서 그냥 그의 어머니가 반대해서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어머니는 나를 탐탁지 않아하셨다. 못생겼다, 나이 많다, 그 어떤 말도 상처가 되지 않았지만 여자가 사업하는 건 직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동네 빵집 알바라도 좋으니 결혼하면 기술을 배우라고 말씀하신 건 좀 자존심이 상했다.
친구들은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성화였지만 결혼도 연애도 다 싫었다. 그냥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게 더 좋았고 열심히 돈 모아서 흔히 말하는 욜로족처럼 일 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할 것 같았다. 어릴 적 상처를 들춰내는 것도 이젠 지겹고 그의 말처럼 다신 누구에게도 나의 얘기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혼자서라도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판도라의 상자 속에 꽁꽁 봉인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내 연애는 의존적이었던 것 같다. 사랑받을 자격에 대해 스스로 의심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상대방의 기분에 눈치를 보고 하루가 들쑥날쑥 해지는 나 자신이 결국은 못마땅했다. 불안했던 연애의 결말은 늘 행복하지 못했고 스스로 힘들어했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고 생각했지만 참담한 결말은 똑같다. 가족, 엄마라는 책임감은 나에게는 너무나 완벽해야 하는 것이라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에게 부모란 완벽하게 책임져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어쩌면 나는 연애와 결혼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와의 이별 때문에 나 자신이 망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잊기 위해, 제대로 된 관계를 위해, 심리상담도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언제나 내 편일 것만 같은 친구들과 며칠 전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어릴 적 학대를 당한 배우자의 고백’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됐다.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처럼 내 민낯이 드러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부분 어떤 반응일지도 익히 잘 알고 있기에 딱히 감정을 싣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가정환경에서 뭘 보고 배웠겠느냐’ ‘똑같이 학대하는 부모가 될 게 뻔하다’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은 무시할 수 없다’ ‘성격도 이상할 것이다’ ‘무조건 헤어져야 한다’라는 말을 직접 들으니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특히
‘지금은 멀쩡해 보여도 언젠가는 폭력을 휘두를 것이다’ 라며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은 너무나 모욕적이어서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이다. 어째서 가해자도 처벌받지 않는데 피해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걸까.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얼마 전 이별한 그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말들이 그가 하는 말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도 친구들도 아무도 원망할 수가 없다.
세상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학대받던 어린 시절을, 불우한 가정환경을 바꿀 순 없다. 우리는 이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사람들의 선입견은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벗어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또다시 벼랑 끝 나락으로 몰아세운다.
친구들을 만나고 온 그날 밤,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꾸역꾸역 마시며 꺼억 꺼억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친구들의 말과 그의 말이 뒤섞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에 대한 그리움도 갑자기 몰려왔고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외로움이 서러웠다.
사람들의 선입견은 너무 큰 상처였고 세상에서 절대 넘을 수 없는 가장 높은 벽이었다.
무섭고 두려웠지만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이 무력감이 싫었다.
나는 부모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려고 열심히 살았다.
내가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얼마나 마셨는지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른 채 술기운에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나는 문자 한 통을 받고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오열하고 말았다.
지난밤 새벽까지 대성통곡을 하던 내 울음소리는 빌라 전체에 울려 퍼졌고 주민들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집주인에게 온갖 민원을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아저씨는 그런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OOO호에 사는 OOO 씨, 얼마나 속상하면 밤새 울었겠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주민분들도 모두 힘들어한답니다. 다 같이 그만 속상해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OOO호에 사는 OOO 씨,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는 일도 몸과 마음이 지치는 거랍니다. 아침 챙겨 먹고 기운 차리고 출근하셔야 해요. 오늘은 꼭 좋은 일이 있길 바랍니다.’
아저씨는 이후에도 나를 위로하는 문자를 계속 보내주고 계셨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이제 슬픔을 멈추기로 했다. 너무 미안해서, 너무 고마워서.
절망적인 순간, 힘들어 무너지려는 순간, 세상은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내어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깟 이별이 뭐라고 더 이상 민폐덩어리가 되어 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선입견이 뭐라고 처음도 아닌데 계속 나락으로 떨어질 순 없었다. 수백 번 다시 생각해도 그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후회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두려워 바꿀 수 없는 나의 과거를 감추고 산다는 것은 비극이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적극적으로 주도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아주 많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고 해서 불행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부모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 수많은 선입견과 상처를 다 극복하지 못했던 것뿐이고 조금 더 성숙해지는 과정일 뿐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더 이상 잠식될 수 없었다.
세상 무뚝뚝하고 까칠하다 여겼던 집주인 아저씨의 따뜻함 덕분에 그날 이후로 나는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은 그만두었다. 나쁜 기억을, 나쁜 인연을 빨리 지워버릴 수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세상 모든 상처는 모두 과거형이다. 하지만 성공은 불확실하지만 모두 미래형이다.
언제까지 과거에 갇혀있을 수는 없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되돌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면 차라리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는 하는 것이 옳다.
다행히 나에게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일(job)이 있고 언제든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성공을 향해 열심히 살다 보면 미래에는 깊고 단단한 사람을 만나 근사한 사랑도 할 수 있겠지.
그런 멋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나도 예쁜 사람이 되어야겠어.
문득 아르헨티나 피츠로이에서 호수 속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표정이 예쁜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했었는데. 조심스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눈물 자욱이 채 지워지지 않은 민낯이 형광등 불빛 아래 훤히 드러났다. 아직도 축축한 눈동자는 유난히 슬프고 외로워 보이는 것 같다. 피츠로이에서 보았던 표정보다 훨씬 더 낯설다. 그때의 모습과 감정들이 오버랩됐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벅찼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지.
그에 대한 원망, 편견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 피곤함, 그리고 축 늘어진 자신감까지 하나하나 얼굴에 담겨있었다. 표정에 구석구석 묻어있었다.
내가 봐도 안 예쁜 미소를, 내가 봐도 안 예쁜 표정을 누가 사랑해줄 수 있을까?
얼굴이 아니라 표정이 예쁜 사람이 되어야겠다.
예쁜 것을 보고 예쁜 말을 하고 예쁜 미소를 지어야겠다. 자신감 넘치는 예쁜 사람이 되어야겠다. 예쁘게 일하고 예쁜 사람을 만나고 예쁜 사랑을 하고 그렇게 예쁘게 성공을 그려봐야겠다.
언제나 성공은 미래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