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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 Oct 27. 2022

세상이 나에게 보낸 두 번째 초대장_쿠바

여행은 “감정의 스펙트럼”이다 우리의 인생처럼.

 이제는 제법 안정적인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안도하던 어느 날, 나는 또 한 번 긴 여행을 꿈꾸었다. 

예쁜 것을 보고 듣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여행이 아닐까.

 운 좋게 구매한 왕복 38만 원짜리 뉴욕행 특가 항공권 덕분에 지난 남미 여행 때 가보지 못해서 두고두고 아쉬웠던, 그래서 늘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쿠바 여행을 계획했다. 직항이 없는 쿠바를 뉴욕에 간 김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더욱 기대되는 여행이었다. 이미 몇 번 같이 여행을 다니며 친해진 속 깊은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였다. 우리는 출국일이 달라 뉴욕의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묘하게 날이 선 살벌함과 칙칙함은 남미보다 훨씬 더 긴장되고 무서웠다. 뉴욕의 지하철은 생각보다 지저분하고 복잡했다. 혼자 왔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 같다.

 자유의 여신상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근사했고, 타임스퀘어의 찬란한 야경은 미드 속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멋있는 모습이었다. 기대했던 쉑쉑 버거는 생각보다 평범해서 실망스러웠지만 길거리에서 파는 6달러짜리 할랄푸드는 한국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는 한국보다 저렴해서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가장 힘들었던 고충은 뉴욕에 있는 동안에만! 극심한 변비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과일과 요구르트를 먹고 물도 듬뿍 마셔주었지만 그 녀석은 5일 동안 응답이 없었다.

 뉴욕의 아웃렛은 무조건 쓸어와야 한다고 해서 적정하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신발 하나 티셔츠 몇 장을 산 게 전부였다. 난 쇼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화려한 도시 여행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일까?

 브루클린 다리는 너무나 내 취향이었지만 결국 그곳을 건너보지 못했고 아직도 센트럴파크와 함께 두고두고 아쉬운 장소로 남아있다. 하지만 브루클린 근처에서 먹었던 피자는 인생 피자였으며, 특히 영화배우 뺨치는 종업원의 외모가 잊히지 않는다. 그는 테이블 위에 잠깐 올려놓은 동그란 내 쿠션 케이스를 가리키며 ‘너무 귀엽게 생긴 이것은 혹시 새로 나온 무선 스피커니?’라고 물었다. 세상에 이렇게 순수할 수가! 마음 같아선 당장 그 자리에서 귀여운 스피커를 하나 사서, 아니 똑같이 만들어서 그의 손에 쥐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친구가 창피해할까 봐 꾹 참았다. 피자도 한번 더 먹을 겸 그도 볼 겸 다시 그곳에 가고 싶었지만, 우리에게는 뉴욕보다 더 중요한, 쿠바 여행이 남아있었다.      


 뉴욕에서 쿠바 아바나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이면 도착하는데 운 좋게도 이때는 두 나라 사이가 좋았던 때라 큰 문제없이 입출국이 가능했다. 문제는 쿠바의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이 폐쇄된 쿠바에서는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카드를 구입해야만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미리 숙소를 예매할 수 없었고 아바나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부터 구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인터넷 시스템이 매우 불편했지만, 생각보다 금세 적응이 됐고, 핸드폰을 잘 안 보게 되니 오히려 오롯이 여행에만 집중하게 됐다. 와이파이가 없어도 위치는 GPS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었고, 여행정보는 미리 핸드폰 화면으로 캡처해서 가지고 다녔다. 남미 배낭여행 때처럼 종이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것이 익숙했고 나중에 지도를 기념으로 남길 수도 있으니 나름 의미 있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불편함이 아날로그 여행처럼 특별하게 만들어 주어서 꼭 단점만은 아니었다.

 첫째 날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한 우리는 짐을 풀고 숙소를 나서자마자 서로 길이 엇갈려버렸다. 와이파이도 전화도 안 되는 우리는 그렇게 각자 혼자가 되었다. 평소라면 카톡 한 번이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숙소와 여러 갈래의 길을 찾아봤지만 친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기에 길치에다 허당인 나와는 다르게 여행 베테랑인 친구는 혼자서도 잘 다닐 거라고 믿고 석양이 지고 있을 말레꼰 해변으로 향했다.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니 어쩌면 친구도 이곳에 있을지 몰랐다. 

 아바나의 바다는 칸쿤에서 보던 카리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칸쿤의 카리브가 제주의 청량한 아콰마린을 닮은 푸른색이라면, 아바나의 카리브는 남해처럼 사파이어의 깊은 푸르름이랄까. 

어느새 하늘은 노란색에서 주황색, 그리고 핑크빛으로 쉴 새 없이 칠해지다가 붉게 타올랐다. 그리고는 어느새 먹색의 어둠으로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노을을 봤지만, 아바나의 노을은 잊을 수가 없다. 왜 그토록 배낭여행자들이 아바나를 사랑하는지 알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부터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는데 오늘 아바나의 노을 앞에서 그 해답을 찾은 것만 같다. 나처럼 표현이 서툴고 (표현이 서툴지 않아도) 일기도 겨우 몇 줄 쓰는 사람이 글로써 장황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은 “스펙트럼”이다. “감정의 스펙트럼”


붉게 타오르는 노을은, 수줍게 달아오르다가, 빨갛게 타오르다가, 나중에는 시뻘겋게 이글거렸다,라고 장황하게 붉은색을 표현할 수 있는데, 감정이라는 것은 그저 기뻤다, 너무 기뻐서 울 뻔했다, 미치도록 기뻤다, 기뻐 날뛰었다 정도의 표현밖에 안 되니 늘 부족한 느낌이다.

여행하며(살면서) 느낀 감정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이 복잡하고 박찬데.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려면 앞에 너무나 많은 설명과 형용사를 동원해야 한다. 멋있는 바다와 노을을 보고도 이렇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사람 사이의 감정은 오죽할까.

어쩌면 우리의 관계라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말해 뭐해? 표현을 해도 오해와 편견이 생기는 세상이다. 말해줘도 모르는데, 어쩌면 당신이 내 맘을 몰라주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감정의 스펙트럼”이다 우리의 인생처럼. 

투명해 보였는데 조금만 각도를 바꾸면 다양한 빛으로 뿜어져 나오는, 복잡 미묘한 그대들의 마음처럼. 

그러니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지도, 다 알고 싶어 연연하지도, 다 알아주지 않는다 원망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있는 그대로 나 그대로의 빛깔대로 살다 보면 누군가는 나를 투명하게, 누군가는 나를 불타오르는 불꽃처럼 바라봐주겠지. 

또 누군가는 이 세상 제일 예쁘게 빛나는 핑크빛으로 아껴주지 않을까. 

여전히 어두운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밝은 척 애를 쓰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애써 쿨한 척,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끔씩 호들갑스럽다. 혼자 애쓰고 오버하고 나면 “밝은 사람” 내지는 “실없는 사람” 같은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그게 아닌데! 

왜 스스로 상처를 주고 있을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도 충분히 멋있는 사람인데.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쿠바의 노을은 나의 후회와 연민을 담아 밤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도 지난 여행에서 미처 답을 얻지 못한 깨달음을 주려고 쿠바는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이번 쿠바 여행은 두 번째 초대장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을지, 너무 기대됐다. 함께 온 친구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만 같은,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혼자 있을지도 모를 친구를 향해 뛰었다.


 다음 날 우리는 꼭 붙어다니기로 했다. 나는 아바나의 바다만큼이나 골목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어쩜 구석구석 작은 골목까지 하나같이 다 이쁘던지! 무심하게 걸친 옷도 힙해 보였고 창문 위에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빨래도 예술작품 같아 보였다. 벗겨지고 빛바랜 건물들은 날 것처럼 거칠었지만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잿빛 건물 군데군데 원색으로 덧칠해 놓은 담벼락은 엔틱 했고 쿠바스러웠다. ‘쿠바스럽다’라는 단어 말고는 그 매력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 같다.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로 쨍한 쿠바의 하늘이 어울려 보였고 쿠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올드카’는 도시에 에너지와 색채를 더해주고 있다. 거리를 내딛는 발걸음과 함께 감탄사와 탄성이 쉼 없이 터져 나왔다. 골목이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느라 바쁜 나 때문에 친구는 매번 발걸음을 지체했고 그런 나를 배려해 준 친구를 위해서 나는 언제나 큰 침대를 양보했다.  

   아바나에서의 마지막 밤 친구와 원 없이 사치를 부려보기로 했다. 아바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올드카를 타고 말레꼰의 석양을 보기로 했다. 뻔하지만 쨍한 핑크색 오픈카로 우리는 한껏 분위기를 냈다. 선글라스도 끼고 한 손에는 맥주 그리고 예쁜 원피스는 필수다. 그리고 저녁으로는 랍스터 요리를 먹었다. 쿠바에 있는 동안 매일 먹을 예정이다. 식재료가 부족해서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쿠바에서 그나마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데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싸니까 아예 뽕 뽑을 생각이다. 기분 좋게 식사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끔찍한 부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인터넷 때문에 찾아간 호텔 로비에서 만난 부자에게(귀여운 아들에게 속아) 호의를 베풀었다가 되려 불편한 사이가 된 유부남은 미국에 아내가 있다면서(7살 아들이 말해줘서 알았다) 우리가 묵는 숙소로 굳이 짐을 옮기고는 매일 밥 먹자, 술 먹자 우리를 귀찮게 했다. 심지어 마지막 날 마시려고 사둔 맥주는 그 유부남이 거실을 점령하고 있어 결국 꺼내지도 못했고 그는 밤새 우리 방 문을 두들겨댔다. 꺼지라고 이 자식아!

  긴 악몽을 꾼 듯 겨우 일어난 우리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다음 목적지인 플라야 히론으로 가는 택시를 미리 섭외해두었기 때문이다. 훈훈하고 젊은 기사는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우리를 숙소 앞에서 픽업하겠다고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10분 전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바나에서 머무는 내내 친절했던 숙소 마담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쿠바에서 보기 드문 장난감과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었거 나보다 잘 사는 상류층 같아 보였다. 그녀가 차려주는 마지막 아침은 이미 진작에 먹었고 커피는 벌써 두 잔째지만 택시기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담은 그 기사가 8시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30분 넘게 기다리던 우리는 마담의 권유대로 결국 터미널로 향했고 우리는 짧은 쿠바 여행이 자체 되는 것에 매우 걱정됐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빅히트 대박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그 누가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쿠바는 중남미 국가지만, 다른 남미 국가와는 다르게 시간 약속이 매우 철저한 곳이었고 그래서 우리도 철석같이 약속시간을 지켰다. 남미 사람들 특유의 낙천적이고 다소 게으른 성향을 여기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젠틀하고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경제적 독립과 함께 풍족한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새로 만들어지는 건물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여행자로서 쿠바의 음식이 더 맛있어졌으면 좋겠고 불합리한 화폐제도도 어서 빨리 사라지길 바란다. 

우리는 더 이상 택시기사를 원망하지도 기다리지도 않기로 했다. 

왠지 오늘의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에게 더 큰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쿠바는 세상이 나에게 보낸 두 번째 초대장이다. 나의 쿠바 여행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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