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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율 Oct 27. 2022

여행하다 주웠어, 너의 자존감

서른부터 배낭여행



여행하다 주웠어너의 자존감.          

 인생이 변하고 바뀌는 건,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알아채거나 어느 날 ‘불현듯’ 느낄 수는 있다. 그것은 과거의 어떤 선택에 의한 것일 수도, 또는 스스로 변화하려는 아주 작은 의지가 천천히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현실 속에서의 변화는 그렇게 일어난다.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일렁일 만큼의 에피소드가 없다고 해서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방심해서는 안된다. 작은 선택이라도 허투루 해서는 안된다. 


나에게는 남미 여행이 그랬다. 처음부터 어떤 기대를 했거나, 다녀오고 나서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여행 전의 일상으로 빨리 되돌아가야만 했다. 

나의 여행 이야기는 친구들과의 안주거리였을 뿐 동경의 대상도 아니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은 쉽게 갈 수 있다. 단지 남미는 쉽게 가기 어려운 곳이니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녀왔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정도였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책을 내보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는 남미가 극히 드문 여행지였던 데다가 

‘서른 살에 그 정도의 용기와 에피소드라면 충분히 책을 내봐도 될 거야’라는 말에 잠시 혹하기도 했지만 나보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 용기가 나질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생활비도 없는데 집에 박혀서 글만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 여행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나는 청소를 깨끗이 하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티브이 앞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날은 정확히 일요일 오전이었고 나는 늘 보던 TV 동물농장을 틀어놓고 있었다. 습관처럼 티브이 소리에 파묻혀 밥을 먹고 있다가 순간 티브이 속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티브이 속에서는 하얀 강아지가 술에 취한 주인에게 발로 걷어차여 동네가 떠나가라 깽깽거리고 있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비명소리와 구타 소리에 주민들은 애타게 강아지를 구하려 애썼고 어떻게든 주인의 행동을 말려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잦은 구타와 방치로 강아지는 어느 곳 하나 멀쩡해 보이지 않았지만 술에 취한 주인이 비틀거리며 다가오자 꼬리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주인은 가차 없이 내리쳤다. 결국은 제작진이 나서서 강아지를 구출하고 주인을 직접 설득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분노가 갑자기 폭발했다. 

강아지도 자신이 아프다고 소리치면 저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는데!

배고플 까 봐 밥도 챙겨주고 아플까 봐 병원에도 데려가 주고, 더는 다치지 말라고 주인을 만나 설득도 해주는구나!

그런데 온몸에 멍으로 가득한 그 작고 어린 나에게는 누구 하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말 한마디,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다. 세상은 너무나 무심했다. 


결국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거구나. 

나는 저 강아지만큼도 관심받지 못했던 거구나. 


또다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분노 가득 치솟았다. 방송 말미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법안, 동물학대에 대한 법이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그 말에도 괜한 분노가 치밀었다. 방송사에서 나서서 해결도 해주고 동물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어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동학대에도 이만큼 관심이 있을까? 그동안 세상이 단번에 바뀌지는 않았을 텐데. 그동안 사람들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여전히 어딘가에서 어린아이들은 소리 없이 학대받고 방치되어 세상을 원망하며 남몰래 상처받고 있을 텐데. 온라인에서조차 하루에도 수십 번 동물학대에 대한 글을 접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글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다들 감추고 있기 때문일까? 무관심해서 일까?

여전히 사람들은 학대당한 사람들에게 날이 선 선입견을 보내고 잠재적 범죄자로 우리를 몰아간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말할 수 없도록 꽁꽁 숨어버리게 만들고 자신을 포장하도록 만든다. 여전히 우리를 온전한 피해자로 봐주지 않는다. 

나는 구할 수 없지만, 아직도 고통받고 있을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분노가 금방 사라졌다. 이미 여행을 하면서 수없이 분노하고 용서하며 익숙해진 감정들이다. 남미 여행을 통해 나는 세상이 제법 멋있고 살만한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을 하며 충분히 아파했고 그만큼 충분한 용기도 얻었다. 이제는 악에 바친 감정들에도 무뎌졌고 툴툴 털고 힘을 내는 것도 제법 할 줄 안다. 예전 같았으면 어린 시절 생각에 펑펑 울기부터 했을 텐데 이젠 눈물도 곧잘 참아진다. 


다 옛날 일인데 뭘. 

마저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한다. 

티브이에 나온 강아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폭력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여행하기 전의 나는 청소도 잘 안 했다. 나 혼자 있는데 누가 본다고? 

음식도 대충 해 먹거나 시켜먹었다. 혼자 먹는데 대충 먹지 뭐~ 

안일하게 일상을 보냈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단 걸 배웠다. 짐을 싸고 다음 여행지를 고르고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카페를 가고 식당을 가서 메뉴를 고르는 모든 일과의 주인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자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이다. 


귀찮아서 아무거나 먹고 아무 데나 돌아다니면 정말 ‘아무거나’ 같은 하루가 된다. 


하루의 전부는 모두 나의 것이다.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한 여행(나)을 위해 좀 더 멋지고 맛있고 재밌는 일상을 보내고 싶어졌다. 그렇게 혼자만의 일상이 익숙해졌고 책임감이 생겼고 부지런해졌고 소중해졌다. 

그리고 여행 후 혼자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어쩌면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강아지가 행복해졌으면, 더 이상 아파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내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멍자국으로 가득한 어린 나를 괜찮다고 다독였다. 처음으로 울음을 삼키고 이젠 괜찮다고 힘낼 수 있다고 다독였다. 처음으로 나는 사실 멋지고 어쩌면 제법 근사한 사람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기대해 보았다.           

 여행 후 회사생활이 전보다는 수월하다고 느꼈던 것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도 담담하게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아주 무모하고 아찔한 도전임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도 모르게 회복하고 있던 자존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남미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 여행이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했을 일이다.


여행하면서 나는 무수히 많은 자존감을 주어 담은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자존감을 주워 담고 몸에 지니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심지어 매우 더뎠지만 그럼에도 조용히 일상을,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원래의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누구나 그런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마치 원래 그런 사람인 것처럼. 

그러니 어떤 선택도 허투루 해서는 안된다. 어떤 하루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변화는 서서히 찾아온다. 서서히 일상 속에 뿌리내린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단단한 나무처럼 변화해있을지도 모르니 언제나 ‘나는 실은 대단하거나 멋있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고 단단히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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