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서 뛰어내려 가면 뒤에서 발목 다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지. 나는 스물한 살이었는데, 우리 엄마처럼 굴었어, 그는. 그래서 일부러 내리막길을 뛴 적이 있다. 걱정을 듣고 싶었어. 사랑은 왜 전부가 될까. 마주 잡은 손이 따뜻해서 나 핫팩을 쥐고 울어버릴 날이 올 것 같아.
나는 그와 헤어지고 일주일 간 모든 수업에 지각했다. 누구도 지각의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그것은 내가 숨 한 번 헐떡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게 늦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굳이 그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것을 물으면 나는 발목을 다칠까 봐, 라고 대답하려 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 오십 미터쯤 되는 내리막길이 있는데 그 길을 빨리 내려오다가 발목을 다칠까 봐 늦었어.
수업이 끝나면 항상 엘레베이터를 탔다. 교양관 2층에서 한 층 내려가는 걸 못해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러다 다음 수업에 늦었다. 왜 엘레베이터를 타냐고 묻는 사람 역시 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계단을 먼저 내려가며 뒤로 손을 뻗던 사람이 떠올라서,라고 대답하려 했다. 한 손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단을 먼저 뛰어 내려가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뒤로 손을 내밀었는데, 너무 멀어서 못 잡았어.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아서 혹시 모두가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건지 생각했다. 지금은 헤어진 그가 한창 사귈 때 내가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면 발목 다친다고 뒤에서 소리쳐준 걸 아는지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일부러 뛴 적도 있다는 걸 아는지, 뒤에서 조심하라는 목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아 주저앉은 적이 있는 걸 아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