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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여행길,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by 별빛간호사

나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

어느 날, 내가 돌보던 할아버지 한 분이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자녀들은 걱정이 되어 설득도 해보고,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으로 유혹도 해보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여쭈었다.

"할아버지, 왜 밥을 안 드세요?"

할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밥 먹고 힘내서 오래 살면, 자식들한테 폐를 끼치잖아."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녀들도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훔쳤다. 나는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 병원에는 호스피스 환자분들을 위한 동화책이 많다. 그중에서 "할아버지의 여행길"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꼬마 유령의 안내를 받아 하늘나라로 떠나는 이야기였다. 이 책이라면, 할아버지께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호자분께 허락을 구한 뒤, 할아버지 곁에 앉아 책을 읽어드렸다. 처음에는 떨리고 긴장되었지만,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의 마지막에는 할아버지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나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거야."

자녀분들은 눈물을 흘렸다. 나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메었다. 나는 조용히 할아버지께 다가가 물었다.

"할아버지, 잘 들으셨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셨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다시 불렀다.

"할아버지...?"

그 순간, 할아버지는 코를 드르렁 골았다.

순간 나와 보호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는 책을 듣다가 그만 잠이 드신 것이었다. 우리는 웃음을 참으며 눈물 나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할아버지는 아침밥을 싹싹 비우셨다.

지금은 그 자리에 다른 환자분이 계시지만, 가끔 그 침대를 바라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지금쯤, 그리운 분들을 잘 만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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