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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여기 있어요."

세월과 사랑이 뒤바뀐 순간의 기록.

by 별빛간호사

밤이었다.
조용하던 병동의 공기 속에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한 환자분의 상태가 갑작스럽게 악화되었다.

나는 곧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병원입니다. OOO님 상태가 갑자기 좋지 않아져서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밤이 고비가 될 수 있어요.”

보호자 분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직장과 가정일로 바쁜 와중에도 그분은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병실을 찾아와 엄마의 손을 잡고 시간을 함께 보내던 분이었다.

그날 밤, 보호자는 병실에 남아 환자와 함께 밤을 지내기로 했다.


깊은 밤, 나는 라운딩 중이었다.
병실 문틈 사이로 작고 낮은 대화 소리가 들렸다.

환자분이 몸을 뒤척이자,
보호자는 자신의 침대에서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응, 엄마. 나 여기 있어. 괜찮아.”
“응…”
“나 안 가.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을게…”

마지막 말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나는 조용히 병실 문을 닫고 간호사실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 둘의 모습이 마음을 오래도록 맴돌았다.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이 흐르며 역할이 뒤바뀐 두 사람의 인생 한 장면 같았다.

어릴 적,
그 보호자분이 아프고 힘들 때 엄마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줬겠지.

“아프지, 내 딸? 괜찮아. 엄마가 지켜줄게.”

그리고 이제,
엄마는 아이가 되었고
딸은 엄마를 돌보는 어른이 되었다.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돌봄이 전해지고,
사랑이 나이 들어, 다시 품이 되는 일.

그날 밤,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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