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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23. 2022

회암사지로 보는 양주시 이야기

원형구조와 회암사 구들

양주시는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다. 동으로는 포천시, 서쪽으로는 파주시와, 남으로는 서울 강북구와, 북으로는 동두천시와 접하고 있다. 동두천에서 의정부를 잇는 3번 국도가 남북으로 가른다. 국도는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 남으로 쭉 이어진다. 도봉산(740m)과 감악산(674m)이 남북으로 위치하고 양주시청 지역은 분지형태를 이룬다. 


장흥, 일영, 송추, 기산 등 계곡과 저수지가 많아 근교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회암사지 유적은 조선시대 불교유적으로 가장 크다. 최근에 양주시에 경기북부 광역거점기능을 담당할 신도시(옥정지구, 회천지구)가 건설(2025년)되고 있어 최신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고 인구도 늘고 있다. GTX-C 덕정역이 확정되어 삼성동까지 20분 만에 갈 수 있어 서울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양주 환상구조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양주가 산으로 둘러 싸인 곳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것이다. 특히 3번 국도가 지나가는 도락산(439.5m)에 올라가면 동쪽으로 뱅돌고 있는 산을 볼 수 있다.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쉽게 원형의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고지대는 북으로부터 칠봉산(506.1m) – 천보산(336.8m) – 은봉산(379.8m) – 노아산(336.6m) – 노고산(400.9m)으로 연결된다. 가운데로는 추가령 구조곡이 남북방향으로 지나간다. 이 지형을 지질학에서는 의정부 환상구조라고 한다.


땅이 환상구조를 가지는 것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 기반암의 차별 침식의 경우(양구 펀치볼), 둘째 화강암의 관입에 따른 환상구조, 세 번째는 화산 함몰체가 그것이다. 양주 환상구조는 두 번째에 해당한다. 고지대를 형성하는 석류석을 포함한 화강암과 저지대를 구성하는 회색의 흑운모 화강암 사이의 차별적 침식으로 형성된 구조이다. 


양주 지형도, 원형구조가 뚜렷하게 보인다(붉은 별은 회암사지, 노란 별은 독바위), 출처: 네이버 지도


회암사지


양주의 볼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회암사터(사적 128호)이다. 고려 충숙왕 15년(1328) 인도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1174년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를 왕래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창건된 절로 보인다. 고려 우왕 2년(1376)에 지공의 제자 나옹이 중창, 낙성했다고 한다.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했고 자신도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성종 때 세조비 정희왕후가 확장을 했고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한다. 1549년 문정왕후에 의하여 태종의 능침사(陵寢寺 ; 왕릉을 수호하기 위해 설치된 절)가 되었다. 아쉽게도 문정왕후 사후에 사림에 의해 방화되어 폐사지로 변했다고 한다.

회암사의 주산은 동북쪽에 위치한 천보산(506m)이다. 천보산은 쥐라기 서울 화강암이다.


그러나 지금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1997년 시굴조사, 1998년 이후 매년 발굴 조사를 실시해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의 회암사는 회암사지 500m 뒤편에 위치하는데 무학대사 탑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회암사는 발굴조사 결과 장대석으로 축조한 석축으로 이루어진 8개의 단지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2~8단지만 높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당호와 용도가 파악되었다. 중심축선은 일렬로 정 청지(8단지)-설법 전지(7단지)-보광 전지(6단지)-중문지(5단지)-정문지(4단지)-사문지(3단지)-일주문지(2단지)이다. 중심 좌우측에 기타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궁궐과 사찰 건축이 혼합된 특이한 가람 배치를 보여주며 출토된 유물도 자기류, 청기와, 특수기와 등 왕실 관련 유물이 많다는 점과 고의로 파손된 부처의 머리, 한 곳에 모아 파손한 도자기 등 폐사 시점의 역사적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유명한 것으로는 구들이다.


양주 회암사지, 출처: 경기도문화재연구원


우리 건축의 바닥구조가 맨바닥구조, 온돌구조 및 마루 구조로 나뉘는 것처럼 회암사의 바닥도 동일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온돌구조는 확인된 60개 건물 중 38개의 건물에서 온돌 구조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방전체를 난방하는 전면 온돌 방식이나 부분 온돌 방식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부분 온돌 방식은 전면 온돌 방식으로 이전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구이다. 또 이는 입식에서 좌식으로 생활방식이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 온돌구조 건축물 : 서방장, 동방장(8단지), 수좌료, 시자료, 입실료, 영당(7단지), 서승당, 지장료, 보광전, 향화료(6단지), 건물 5-가, 나, 다, 라, 마, 바, 사(5단지), 건물 4-가, 나, 라, 마, 사, 아, 카, 타, 파, 하(4단지), 건물 3-가, 나, 다, 라, 바, 아, 차(3단지), 건물 2-가, 나, 다(2단지)


부분 온돌 방식을 보여주는 회암사지 동방지 나란히 고래 평면도(추정), 출처: 경기도문화재연구원
회암사 배치도, 출처 : 정연상, 2018

독바위


양주 시내는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평평한 중심부에는 산뜻한 아파트 단지가 계속 세워지고 있다. 이곳 중 옥정지구에는 독바위(180m)라는 산봉우리가 있다. 누가 봐도 채석장이다. 한국전쟁 당시 양주 덕정리에 주둔하던 미군 제14공병대가 암석을 캐기 위해 채석했고 1960년대 후반에 채석장 허가를 해줘 현재는 산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형편이다. 이곳에 질 좋은 서울 화강암을 캐어냈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지가 개벽할 때 마귀 할머니가 이곳에서 술을 빚었다고 한다. 옹기 같이 생겨 옹암산(甕岩山)이라고도 했다는데 현재는 전혀 옹기 같지 않다. 화강암의 절리를 관찰하는데 좋은 장소이다. 


양주 독바위


산 정상에는 삼국(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축과 다량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고구려 보루(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 등으로 쌓은 구축물)로 추정된다. 양주시를 관통하는 교통로를 통제하기 좋은 위치라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변에는 LH가 공원을 조성하여 가벼운 나들이나 산책을 할 수 있는 깔끔한 장소가 만들어져 있다.  


하동 칠불사의 구들


전통 온돌 하면 하동의 칠불사 구들방인 아자방(亞字房)이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칠불사는 가락국 수로왕의 7 왕자가 지리산에 입산하여 운상원이라는 거처를 짓고 6년 만인 103년(파사왕 24년) 성불하였기 때문에 칠불암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쌍계사의 말사다. 창건 이후 참선도량으로 이름났다고 한다. 통일신라 이후로 '동국제일 선원'(東國第一禪院)으로 불리면서 고려시대 때 정명, 조선시대 때는 벽송, 부휴, 추월, 서산대사, 초의 등 고승들이 머물다 갔다고 한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토벌 중 전소되었던 것을 복원하였다. 현재 당우는 대웅전, 문수전을 비롯하여 총 8개 동이 있는데 그중 아자방(亞字房)은 선원 용도인데 한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였다고 해서 유명하다. 경상남도 지방문화재 제144호다.


칠불사 아자방, 출처:경남일보


대웅전의 좌측에 있는 아자방(亞字房)은 본디 이름이 벽안당(碧眼堂)이었다. 아자방은 중앙에 십자형 통로가 있고 네 귀퉁이에 높은 좌선방(坐禪房)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동향의 남북 장방형인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한 무익공계 건물이다. 정면 좌측 2칸이 부엌이며, 우측 3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내부가 하나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전체적인 방의 모습이 아(亞)자모양으로 되어 있다. 방의 네 귀퉁이 부분이 바닥보다 45cm가량 높다. 또한 아궁이와 방바닥의 높이 차가 약 1.8m이며 방의 넓이가 8㎡ 정도이다. 


아궁이는 나뭇짐을 지고 아궁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 한다. 겨울 동안거가 시작되는 10월에 일곱 짐의 장작을 세 개의 아궁이(두 개의 보조 아궁이와 한 개의 주 아궁이)에 불을 지펴 놓으면 이듬해 정월 동안거 해제 때까지 49일 동안이나 상하 온돌은 말할 것도 없고 통로나 높은 방이 모두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벽면까지 따뜻했다고 한다.


칠불사 아자방 실내 모습, 출처:경남도민신문


1981년 해체 수리 시 조사된 바에 의하면 부엌 벽 중앙부에 큰 부뚜막 아궁이를 두어 불길이 부채살 방향으로 들어가 남북으로 놓인 줄고래를 통과하여 북쪽 벽 밖 중앙에 있는 굴뚝 쪽으로 유도되었다. 구들골과 굴뚝의 폭은 거의 같이 30cm 내외였고 둑의 높이는 30cm 이상인데 특히 네 귀퉁이 부분은 더 높여 구들장이 높게 얹히도록 하였다. 추측컨데 아궁이의 크기를 키워 많은 땔감을 넣은 후 도자기 가마와 같이 산소의 공급을 최소화하면서 열기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보성 오봉산 구들장


구들돌은 넓고 평평한 돌을 써야 한다.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에는 점판암, 편마암, 슬레이트 등을 이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주로 엽리를 가져서 얇고 평평하게 떠낼 수 있는 암질의 돌이 애용된다. 운모석으로 불린 편마암, 보은, 옥천의 점판암, 결이 있는 화강암이 이용되었는데 최근 보성 득량면의 오봉산 응회암이 구들장으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응회암은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지는 암석이다. 


보성군, 오봉산 구들장, 출처: 보성군 홈페이지


채석장이 있는 곳은 오봉산 8부 능선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쌓인 응회암에 층상절리가 발 발달되어 있다. 오봉산 구들장은 열에 강하여 불길에 터지지 않고 적당한 공극이 있어 따뜻한 공기를 오래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1980년 초까지 약 50여 년간 채석이 이루어졌으며, 전국 생산량의 70%를 담당했다고 한다. 채석장 및 운반로 등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2022년 4월에 국가문화재로 등록됐다. 


한옥을 철거하면 모든 부자재는 재활용된다. 목제는 다른 집에 이용되고 구들돌도 다른 온돌에 들어간다. 따라서 가장 먼저 훼손되는 부자재기도 하다. 화강암이 많은 양주지만 아마도 구들돌은 아마 다른 곳에서 나는 것을 이용했을 것이다. 돌을 보는 선조들의 혜안이 구들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회암사지에 사용된 구들돌의 원산지를 밝히면 당시 건축자재의 생산 및 이동경로를 밝힐 수 있어 보다 자세한 당시의 경제활동 현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경기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

2.     박경, 2006, 남한 지역에 나타나는 환상구조에 관한 지형학적 연구, 한국지형학회지, 제13권 1호.

3.     박혜정, 2014, 회암사 입지의 풍수환경과 해석, 동북아문화연구, 제40집, p.143~158

4.     정연상, 2018, 회암사지 건물지 실내 바닥 구조에 대한 연구,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논문집, 통권61호, p. 182~189

5.     임준구, 김영재, 2022, 회암사지 온돌의 조성시기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제31권 제1호 통권140호, p.19~28

6.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화상암맥이 만들어낸 지상의 환상문양 : 의정부 환상구조, 연구원 홈페이지

7.     한지만, 이상해, 2008, 회암사지의 연혁과 정청∙방장지에 관한 복원적 연구, 건축역사연구, 제17권 제6호, p.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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