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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Oct 05. 2022

사학, 고고학 그리고 지질학

모든 것들의 역사는 어떻게 모이는가


판교 항공사진, 출처:네이버 지도

                                                 

하늘 아래 분당, 그중에 핫한 곳이 성남 판교(板橋)다. 이렇게 변할 줄이야. 카카오 캠퍼스를 비롯한 IT 회사가 즐비하고 한편에는 재벌 회장님 댁도 있다. 판교는 사실 국제적 지명이다. 대만 타이위안 국제공항에서 타이베이로 가다 보면 위성 도시인 신북(新北, 신베이) 지역 판교(板橋, 반차오)를 지나게 된다. 일본 판교(이타바시)는 동경에 있는 23개 구 중의 하나이다. 서울로 치면 노원구와 비교할 수 있는 위치이다. 또한 장항선 대천과 서천 사이에 판교역이 있다. 2008년 철도역의 이전으로 구 판교역 주변은 레트로 분위기가 흠씬 풍기는 지역이 돼버렸다. 경부고속도로 좌우로 나눠져 있는 성남 판교는 테크노벨리에서 타운하우스까지 잘 어우러져 신도시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판교란 널빤지를 깔아 놓은 다리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널다리다. 성남의 부촌인 판교는 탄천(숯내, 검내) 위에 놓였던 널다리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한강에 부려진 목재로 숯을 만들던 곳이 강변에 있어 강물이 검게 변했다고 탄천이라 불렸다. 신선 나라의 복숭아(선도, 仙桃)를 훔쳐 먹은 ‘삼천갑자 동방삭’이 숯을 씻어 하얗게 만들려고 한다는 저승사자의 꾀에 속아 넘어 잡혀간 곳이 탄천이란 이야기도 있다. 탄천은 우리가 잘 아는 추가령 지구대가 나란히 흐른다.

판교는 백현동, 삼평동, 판교동, 운중동, 하산운동 일대에 조성된 신도시다. 백현동에는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1858~1926) 생가터가 있다. 관계 기관은 아프지만 역사이니 작은 표지라도 설치할까 고민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아직 설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네가 쌍문동을 떠나 이사 간 곳이 판교다. 여기까지는 판교로 본 역사 이야기다.

동네 한 바퀴 – 판교박물관

동판교는 좀 번잡하고 시끌시끌하지만, 서판교는 단독 주택과 타운하우스 등이 위치해 전원적인 분위기가 난다. 거기에 박물관이 하나 있다. 아담한 판교박물관은 판교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이런 발굴을 구제발굴이라 한다). 여담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적 발굴이 활발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발견된 매장 문화재가 많아서가 아니라 워낙 많은 개발사업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2011년 시행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발사업 중 문화재가 발견되면 즉시 신고하고 공사를 중지하여야 한다. 유명한 사례로 춘천 중도의 레고랜드는 공사 부지에서 선사유적지가 발견되어 개장이 4년간 미뤄졌다. 우리나라 최대의 청동기 유적지인데 아직까지 졸속 발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어쨌든 인터넷에는 요즘 고고학과가 사학과보다 취업할 곳이 많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2003~2008까지 판교 지역을 발굴 조사한 결과, 구석기시대부터 전 시대에 걸쳐 유적과 유물이 6,237점 쏟아져 나왔다. 9기의 백제 횡혈식 석실분과 한강 이남에서는 보기 드문 2기의 고구려 횡혈식 석실분이 조사됐다. 이중 백제고분 7기, 고구려 고분 2기를 이전하여 판교박물관을 건립하였다.


백제 3호 석실분, 고구려 1호 석실분

                                           
실내 지하 1층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돌방무덤 9기를 이전 전시해 놓았다. 백제의 것은 궁륭식(이글루처럼 벽을 점점 안쪽으로 들여 천장을 만드는 방식) 굴식 돌방무덤이고 일부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일부 무덤에는 호분을 벽과 바닥에 칠한 흔적이 보인다. 고구려 것은 모줄임(무덤 천장을 판석으로 각을 주어 쌓아 올린 형식) 천장 구조를 가진 굴식 돌방무덤이다. 한 구석에는 요즘 유행하는 수장형 전시실을 갖춰 놓고 있다. 전체 유물에는 무기와 농기구는 없고 토기와 장신구만 있어 특징적이다. 야외에는 박물관 부지 내에서 발견된 백제 무덤 2기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색의 5대손이자 토정 이지함의 조부인 이장윤(李長潤, 1455~1528)의 묘표가 기증되어 전시되어 있다. 비석을 세운 좌대와 머릿돌은 화강암이고 비석의 몸체는 거친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백제 궁륭식 돌방무덤과 고구려 모줄임 돌방무덤

                                     
일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전시되고 있지만 별다른 설명이 없고 구석기 유적지나 그 외에 흔적은 없다. 판교박물관은 한성백제 시대의 무덤이 잘 보존되어 있는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일본 내 백제 고분을 연구하는 일본 학자도 자주 찾는 곳이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아직도 한성백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2016년 하남 감일동 개발지구에서 52기의 백제 고분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제 판교박물관의 미래가 걱정된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바쁜 일상 중에 과거로의 여행을 할 만한 조용한 공간이다. 주변에 세련된 커피집과 맛집은 덤이다. 여기까지는 고고학 이야기다.

연천 전곡리 유적지


일제 강점기 이후 공주 석장리 유적이 발견된 이래 우리나라의 신석기 유적은 많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선복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 중 가장 흥미로운 곳은 임진강 유역이라고 한다. 그중 대표 격인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그렉 보웬이라는 미공군 하사관에 의해 발견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아슐리안 주먹도끼(일반적으로 전기 구석기 유물로 알려져 있다)가 발견되면서 세계 고고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구석기시대 유물은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는 동안 각종 지질작용으로 심하게 교란되어서 남아 있는 유적이란 게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조각들 정도다. 이 또한 하천 퇴적층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생활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동식물의 유해가 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임진강 유역도 30만 년 이전이라는 한양대 배기동 교수 의견과 10만 년 이하라는 서울대 이선복 교수의 의견이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전곡리 근처로 추가령 지구대가 지나간다.



전곡 은대리 주상절리 절벽, 자세히 보면 여러 층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보인다.

                 
전곡리 선사유적지 근처에는 임진강이 곡류하고 있고 1km 정도 하류에는 차탄천이 흘러든다. 차탄천을 거슬러 올라 은대리 왕림교 밑에 가보면 현무암 주상절리를 만나볼 수 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이 현무암층의 상부에 쌓인 하성 퇴적층에서 발견된다. 이 현무암은 북한의 평강 북쪽 오리산이라는 화구에서 60만 년 전부터 여러 차례 흘러 내려온 것이다. 적어도 6번의 분출이 현장에서 확인되는데 최상부의 시기는 12만 년 내외로 보고되고 있다(김정민, 2014).

또한 지질학에서는 화산이 폭발할 때 대기 중으로 분출된 물질을 테프라(tephra)라고 한다. 이게 쌓이면 테프라층이 되는데 화산으로부터 최대 수천 km 떨어진 곳에도 퇴적될 수 있다. 테프라의 유리 굴절률, 수반 광물의 함량, 화학조성 등을 분석하면 테프라층을 특정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분출, 퇴적 시기를 알아낼 수 있다.

구석기시대 연구에서 집터, 가마터 등이 없기 때문에 석기가 발견되는 층을 문화층이라고 부른다. 문화층은 ‘토양 쐐기 구조’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마치 논바닥이 갈라진 곳(지질학에서는 이를 건열이라고 부른다)으로 들어간 다른 성분의 흙에 의해 나무뿌리 모양의 모습을 갖는다. 임현수 등에 따르면 한반도 구석기 유적의 문화층 위에서 화산쇄설물의 층인 테프라층이 발견되어 구석기 유물의 편년에 이용된다고 한다. 이 테프라층은 약 2만 5천 년 전 일본 큐슈 지방의 화산 폭발에서 기원한 아리아-탄자와(Aira-Tanzawa) 테프라층이다. 즉 유물이 이 층 밑에서 발견되면 그 시기를 2만 5천 년 이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석기시대는 인류 역사의 99%를 차지하는 긴 시간이다. 인류가 문명화되는 과정이 담겨있는 중요한 기간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구석기 유물의 존재와 그 시기를 뻥튀기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에서는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후지무라 신이치 사건)이 있었고 북한은 ‘민족단혈성기원론’을 주장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접근을 허락하면 인류의 발전사를 전 지구적으로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주먹도끼 모양분석 같은 주먹구구식의 방법 말고 말이다. 여기까지가 간단한 지질학 이야기다.

참고서적

1.     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2019, 흐름출판
2.     김명진, 김은정, 정봉구, 2021, 전곡리 구석기 유적 절대연대 측정의 현황 및 제언, 한국구석기학보, 제44호 12권 p. 5-39
3.     김정민, 최정헌, 전수인, 박울재, 남성수, 2014, 전곡 지역 제4기 현무암질 암석의 40Ar-39Ar 연대측정, 암석학회지, 제23권 제4호, p. 385-391
4.     성남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2001,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5.     이선복, 2005, 이선복 교수의 고고학 이야기, 뿌리와 이파리
6.     이선복, 2018, 지질고고학 입문, 사회평론아카데미
7.     임현수, 남연정, 이용일, 김정빈, 이선복, 정철환, 이헌종, 윤호일, 2006, 테프라연대학의 원리와 응용 : 한국에서 발견되는 AT(Aira-Tanzawa) 광역테프라, 지질학회지 제42권 제4호 p.645-656
8.     판교박물관 홈페이지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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