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알지만 쉽게 이야기 못하는 소제에 한센병이 있다. <벤허>, <빠삐용> 등 영화와 <당신들의 천국> 등 소설에 등장하여 낯설지 않은 질환이지만 이제는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게 한센병이다. 병에 대한 무지로 수많은 박해와 차별을 받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한센인들은 2022년 현재 전국의 81개소의 정착마을에 모여 살고 있다. 그리고 한센병의 치료하고 관리하기 위해 전남 고흥 소록도에 가장 유명한 정착촌이 있고 병원도 있다.
2024년 7월 21일 환경부는 한센인의 아픔이 서린 전남 고흥군 소록도를 보호 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센인을 차별하고 배제한 역사를 기억, 보존하고 훼손되지 않은 섬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소록도를 국립공원이나 생태경관보전지역 등 보호 지역이나 자연공존지역(OECM),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한다.
한센병은 과거에는 치료할 수 없는 전염병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2주에서 2개월 정도 약만 먹으면 감염성이 거의 사라지고 꾸준히 치료하면 완치되는 병이 됐다. 현재 한센병 환자가 급감함에 따라 이들의 격리·치료를 위해 마련된 소록도 시설도 점점 수용인원이 줄어들고 있어 적절한 보전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의 위치(붉은 선이 오마도 간척사업지), 출처: 네이버 지도
소록도
소록도(小鹿島)는 고흥반도와 지척이다. 소록도 선착장에서 녹동항구까지는 350여 m로 손 뻗으면 닿을 듯 하다. 수영 실력이 조금 있다면 조수가 잔잔할 때, 충분히 건너갈 수 있는 거리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지만 녹동항구와 소록도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마치 휴전선에서 대북방송을 하는 것처럼 녹동은 화려한 조명과 소리를 적막한 소록도로 쏘아대고 있다. 죄책감과 두려움은 옅어졌지만보이지않는선이 바다 위에 드리워져 있다.
소록도 맞은편 녹동항, ⓒ 전영식
녹동항 맞은편 소록도, ⓒ 전영식
국립소록도병원과 박물관
이제는 이 가깝고도 먼 거리가 소록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 들어갈 수 있고 나갈 수 있다. 소록도 중심부 전체는 옛부터 원생들이공원화했고 섬은 원생들과 직원이 살고 관광객이 다녀간다. 서로 만나기는 어렵다.
소록도안으로 일반인의 차량통행이 안되기 때문에 박물관까지 15분 정도 바닷가 나무데크 길을 걸어야 한다. 마주치고 스치는 소수의 관광객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여전히 암울한 기억과 부채의식이 어깨를 누른다. 이 무게는 소록대교 위에 올라서야 사라진다.
소록도 안내도, ⓒ 전영식
소록도 해안에서 본 소록대교, ⓒ 전영식
소록도에는 1916년 조선총독부령 제7호가 공포되면서 한센병 환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한센병 대책은 격리수용하는 방법뿐이 없다시피 했다. 전국의 한센병환우가 적발되고 추방되어 소록도에 수용됐다. 특히 소록도 자혜병원 4대 원장인 스오 마사스에(周防正季)의 악행이 극심했는데, 결국 원생 이춘상에 의해 아침 조회 때 살해 당했다.
1945년 8월 21일, 해방 후 병원의 운영 문제로 다투던 병원원생과 직원들이 물리적으로 충돌하여 84명의 한센인들이 살해당했다. 아무런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문제는 덮였다. 2002년 치료관 본관 앞에 "애환의 추모비"만 건립되어 있을 뿐이다. 광복 후에도 강제 낙태와 단종수술은 계속됐다. 병원 안팎에서 한센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끊이지 않았다. 직접적인 박해는 물론 언론의 오보와 모략을 통한 편견도 끊임없었다. 그 아픔은 육영수 여사, 나훈아, 조용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소록도를 찾으면서 점차 아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시간이 상처를 아물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록도 박물관 가는 길의 안내판들, ⓒ 전영식
소록도에는 한센병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우리나라 한센병의 역사와 치료사를 다루는 상설전시관과 기증작품전 및 특별전실이 있다. 1층에는 한센병환우들이 사용하던 각종 물품이 수장되어 있다. 꼼꼼하게 읽어봐도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공간은 크지 않지만 울림이 큰 박물관이다.
한센병 환우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소개한 자료 중 하나, ⓒ 전영식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 전영식
당신들의 천국(1976)
소록도병원에 원장으로 부임한 조백헌 대령은 병원과 소록도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지만 마음의 문이 꼭꼭 닫힌 한센병환우와 직원들의 마음은 열릴 줄을 모른다. 조원장은 축구를 통해 원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후 그는 원생들과 그 자녀가 한 평의 땅이라도 평생 엉덩이 붙이고 살 수 있도록 오마도 간척사업을 추진한다. 뭉그러진 손과 다리로 원생들은 목숨과 바꿔가며 간척사업을 진행시키지만 바다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의무과장 이상욱이 보는 조백헌의 모습, 제2부는 조백헌의 시점 그리고 마지막 제3부는 신문기자 이정태의 시각으로 쓰여있다.
소록도의 이야기를 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1976)은 한센인들이 받은 차별과 멸시, 내부자들의 외부인에 대한 시각 등을 잘 묘사한 소설이다. 2003년 100쇄를 찍었다. 1966년 조선일보 이규태*(1933~2006) 기자의 오마도 공사현장 취재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고 한다. 작품 중 이정태는 이규태 기자가 모델이었다.
* 이규태: 조선일보 기자, 논설위원, 이규태코너(1983.3.1~2006.2.23) 연재, <한국인의 의식구조>(전 4권)
위 임명장은 소설 속 주인공인 조백헌 대령의 실재 모델인 조창원(1926~2018) 대령의 소록도 국립나병원 임명장이다. 그는 소록도 병원장에서 쫓겨난 후 국립 마산병원장, 근로복지공단 태백장성 병원장을 지냈다. 스스로 '동상'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 평생을 한센병 환자와 진폐환자를 위해 봉사했으며, 본인의 약속대로 돈을 벌기 위해 개업을 하지 않았다.
이청준은 소설에서 조백헌 대령에게 자신이 만든 이미지와 이야기 때문에 혹시나 이를 부담으로 안고 살지도 모를 조창원 원장과는 일부러 만남을 피했다고 한다. 소설 속 조대령의 미래가 실재 조창원 원장의 미래를 덮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모델이나 소설가에게나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리라.
한센병과 우리나라의 발생 현황
한센병은 나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감염성 질환이다. 피부와 말초신경에 주변어 병변을 일으키는 면역학적인 질환이다. 따라서 말단이 뭉그러져 나가는데 본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흉한 외모 때문에 예부터 천시당해 왔고 얼굴 등 신체를 가리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왔다.
아직 정확한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균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면역력이 있지만 극히 일부에서만 발병한다. 답손, 크로파지민, 리팜피신을 처방하면 전염력도 거의 완벽하게 줄고, 꾸준히 치료하면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완치가 가능한 병이다. 대부분의 소록도의 원생들은 후유증에 대해 재활치료를 받는 사람들이다. 감염 위험은 없다.
한센병 관련 사업대상자 및 활동성 신환자 추이, 질병관리청, 2023.3.
위의 그림은 국내 한센병 발생 통계이다. 한센사업대상자는 꾸준히 줄어 2022년 현재 8,109명이고 해마다 신규 발생환자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소수이다. 게다가 그중 40%는 외국인이다. 참고로 2021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신규 신고자는 975명(외국인은 202명)이다(질병관리청).
1916년 세워진 소록도는 현재 재활훈련을 받는 원생들이 돌아가시면 아무도 없게 될 것이다. 한센병은 사라져도 우리 깊은 곳에 숨어있는 차별과 악함의 본성은 남아있을지 모른다. 파생적인 선행에 대한 칭찬은 다른 이야기다. 소록도의 다음 역할은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은 사슴 눈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 조용한 세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일까. 소록도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