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누룩이 문제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고 이웃나라 일본이다. 지진, 화산도 많고 역사적, 정치적인 입장이 달라 벌어지는 일도 많지만 어쨌든 지리학적으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이웃나라이다. 그런데 요즘 세계적으로 흔치 않은 의료 관련 사건이 자주 발생하여 촉각을 세우게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국제선 여객(454만 3517명) 중 일본향 여객의 비중이 41%에 달하는 186만 7575명으로 집계됐다. 10명 중 4명은 일본을 갔다는 이야기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39.8% 증가한 수치이기도 하다. 또 일본관광청에 따르면 2024년 1월 방일 외국인 수는 268만 8100명 중에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2%인 85만 7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과거보다 많아진 것이 분명하고 직접적인 관심과 영향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고바야시제약 건강보조식품 홍국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일본 고바야시(小林) 제약 '붉은 누룩(紅麹·홍국)' 건강기능식품인 '홍국 콜레스테롤 헬프'이다. NHK에 따르면 2024년 4월 8일 기준 고바야시 제약의 붉은 누룩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하고 사망한 사람은 총 5명, 입원자는 177명으로 집계됐다. 입원 원인은 신장 질환으로 알려졌다.
고바야시 제약의 문제의 붉은 누룩(홍국) 제품, 출처: 고바야시 제약 홈페이지
붉은 누룩이란 찐 쌀 등 곡류에 곰팡이의 일종인 붉은 누룩곰팡이(홍국균)를 번식시켜 만든 것으로 이전부터 식품의 착색료 등으로 사용돼 왔다. 세균이 아니라 버섯과 유사한 곰팡이이다. 예를들어 곡류는 당분이 적어 포도주처럼 직접적으로 술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누룩을 이용하여 전분분해효소(amylase)를 이용하여 당분을 만든다. 막걸리, 정종, 니혼슈 등이 그렇게 만든다. 이처럼 발효과정에서 여러 부산물이 생기고 이걸 적절히 이용하여 각종 제품을 만든다.
문제가 된 제품은 2021년 출시 후 약 110만 개가 판매됐다. 일본에서는 붉은 누룩에 '로바스타틴(Rosuvastatin)'이라는 성분(모나크린 K)이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작용이 있다고 알려졌다. 흔히 고지혈증 약으로 쓰이는 스타틴 성분의 약품(로바스타틴, 심바스타틴, 아토르바스타틴, 로수바스타틴 등)과 함께 섭취하면 복용량이 초과될 수 있어 조심하여야 한다. 식약처에서 2021년 12월 어린이·임산부·수유부와 간 질환·고지혈증 치료제 복용 환자의 ‘홍국·홍국쌀 섭취 자제’를 권고한 바 있다.
사건의 발견
NHK에 따르면 대만 가오슝에 사는 한 70대 여성이 고바야시 제약의 홍국 원료를 사용해 대만업체가 제조한 건강보조제를 수년 동안 섭취하다가 지난해 3월 급성 신부전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홍국 문제가 국제적으로 번지는 모양새이다.
홍국쌀(Red yeast rice), source: wikimedia commons by FotoosVanRobin
이번 사태는 지난 1~2월 의사, 환자 등이 고바야시 제약에 붉은 누룩 건강기능식품 관련 질환을 보고하며 파악됐다. 고바야시 제약은 이후 2월 5일 대응을 개시하고 원인 규명 검증을 시작했다. 지난 3월 16일 일부 붉은 누룩 제품에 본래 '의도하지 않은 성분'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애매하게 발표했다.
원인은 아직 오리무중
시트리닌의 분자구조, source: wikimedia commons by Emeldir (talk), public domain
홍국균은 시트리닌(citrinin)이라는 곰팡이 독소도 만드는데 보통은 미량이라 문제가 없지만 만에 하나 섭취량이 늘면 급성신부전증 등 인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식품회사가 홍국균의 붉은 색소를 쓸 수 없게 규제한다.
이번 붉은 누룩 사태 역시 신장 질환으로 사망하거나 입원한 것으로 시트리닌 때문으로 보이지만 제약사 측은 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일부 제품에서 푸른곰팡이가 만드는 곰팡이독소인 푸베르 산(puberulic acid)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이 성분은 강력한 신장 독성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제조과정에서 우연히 섞인 누룩곰팡이 속과 푸른곰팡이 속 몇몇 종이 만드는 신장독성이 큰 오크라톡신(ochratixin)이 들어가 시트리닌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며 강력한 독성이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주고 있다.
하여간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려면 한 달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사망·입원자들은 대부분 장기간인 2~3년 동안 제품을 복용한 고객이었으며, 사망자들의 원인은 급성 신부전증으로 확인됐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단순히 공정상의 문제로 이번 회차(Lot)의 물건만이 문제가 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보인다.
제품 회수 대소동
고바야시 제약은 첫 신고를 받은 지 약 2개월이 지난 3월 22일이 되어서야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를 공표했고 사외이사들도 이때야 알았다고 한다. 자사 제조 제품 △ 홍국 콜레스테롤 헬프 60정 홍△국 콜레스테롤 헬프 90정 △홍국 콜레스테롤 헬프 45정 △나이시('내장지방'의 줄임말) 헬프+콜레스테롤 △낫토 웃키나제 사라사라 쓰부 골드 등을 자발적으로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완제품 외에 원료형태로 유통된 것이 다수 있어 완벽한 횟수가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다. 고바야시제약이 만든 홍국 원료를 사용한 사케를 만드는 ‘다카라주조’는 9만 6000병 리콜을 발표했고, 화장품 제조사 ‘노에비아’, 190년 전통의 된장·간장 전문점 ‘혼다미소’ 등 업체들도 모두 해당 원료가 들어간 제품을 리콜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비자들의 공포가 확산하자 일본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3월 29일 저녁 도쿄 총리 관저에서 고바야시제약의 홍국 원료 제품 피해 문제를 논의하는 긴급 각료 회의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 장관, 다케미 게이조 후생노동상, 사카모토 데쓰시 농무상 등이 참석하여 열렸다.
당분간 국내외 타사의 홍국 관련 제품의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보인다. 식약처에 따르면 고바야시 제약의 제품은 국내에 직접 수입된 신고는 없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구입이나 직구를 통해 구입한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유용한 누룩 활용 사례
한때 일본의 화장품 회사인 SK-II가 발효된 누룩에서 추출한 피테라 성분으로 제품을 출시하여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1976년 일본의 한 과학자가 사케 양조장에서 나이 든 주조사의 손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주조사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는데 손만은 부드럽고 젊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연구결과 그 비밀이 발효된 누룩에 있다고 생각했다.
교토의 SK-II 매장(2016) , Source: Wikimedia commons by Kyle Taylor
과학자는 주조사가 손을 담그고 있던 발효액을 시작으로 350종이 넘는 효모를 채집하여 연구했다. 5년 후에 SK-II의 핵심 성분인 '피테라' 개발에 성공한다. 이 피테라 성분의 저작권을 사들인 매스팩터는 피테라 원액 90%를 사용하여 만든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1980년 겨울에 출시하였다. 당시 외국을 오가는 여성들의 단골 쇼핑 제품이었다. 이처럼 누룩(효모)는 유익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몸에 좋다고 아무거나 집어 먹으면 안 된다. 복잡한 성분 간의 작용을 일반인이 모두 알기는 힘들다. 건강에는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건강보조 식품은 약품에 비해 함량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서 먹어야 하는데 그러면 굳이 먹을 이유가 없다. 그래도 먹겠다면 적어도 출시된 후 충분한 기간이 지나서 안전에 문제가 없음이 밝혀진 제품을 용법을 지켜 섭취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고바야시제약 '홍국(붉은 누룩)' 문제, 사례 파악 2개월 후 사외 이사에게 보고, NHK World News, 2024.4.4
2. 일본서 사망자 나온 붉은누룩의 비밀, 강석기의 과학카페, 동아사이언스, 202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