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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식 Apr 13. 2024

노벨상 수상자 힉스, 힉스 입자를 찾아 떠나다.

우리 주변 과학이야기

[표지사진, 201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기자회견, 피터 힉스 교수, 공동수상자 프랑수아 앙글레르 교수(우측), Source: wikimedia commons by Bengt Nyman]


피터 힉스 교수 별세


2024년 4월 9일 외신들은 일제히 에든버러대학의 성명을 인용하여, "힉스 교수가 짧게 질환을 앓고 나서 지난 8일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라고 보도했다. 짧은 질환과 자택에서의 임종, 평화로운 최종상태는 세상의 원리를 알아낸 당대의 석학에게 잘 어울리는 마지막 모습인 듯하다.


피터 웨어 힉스(Peter Ware Higgs, 1929~2024) 교수는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출신의 물리학자로, 1964년 힉스 보손 입자의 존재를 예측하였다. 그의 이론은 2013년 10월 6일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강입자충돌기(LHC ) 가속 실험으로 사실로 입증되었다.  


이 공로로 프랑수아 앙글레르(François Englert, 1932~)와 함께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론을 발표한 후 49년 만에 수상인데, 노벨상이 생존자들에게만 수여되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이루더라도 장수해야 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공동연구자 로버트 브라우트(Robert Brout, 1928~2011)는 사망해서 못 받았다).


CERN의 LHC tunnel sector 3-4, Source: wikimedia commons by Maximilien Brice


힉스 교수는 1964년 힉스 보손(boson·기본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힘의 매개입자인 보손은 글루온, 포톤, Z보손, W보손과 힉스입자로 구성된다.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을 설명하기 위해 정의된 입자다.


표준모형과 힉스입자


이 표준 모형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6개씩의 쿼크·렙톤의 12개 소립자와 4개의 매개입자(전자기력, 약한 핵력, 강한 핵력, 중력)로 구성된다. 이 모든 소립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가 추가로 존재해야 표준 모형이 성립한다. 이것이 힉스 입자다. 힉스 입자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힘들을 설명하는 이론인 ‘표준모형(Standard Model)’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힉스는 1964년 표준모형에서 입자들의 질량이 결정되는(주는) ‘힉스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 '게이지 대칭성'이 깨질 때 나타나는 입자가 힉스 입자이다.


입자 물리학 표준 모형의 기본 입자들, 세로줄은 새대를 의미, Source: wikimedi a commons by Cush, public


'게이지 대칭성'을 쉽게 설명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힘은 사실은 입자를 주고받으며 생긴다는 것이다. 즉 전자기적인 상호작용(전자기력)은 광자라는 입자를 교환하며 발생하는 것이고, 약한 상호작용은 W보손과 Z보손을, 강한 상호작용은 글루온(Gluon)이라고 부르는 입자를 교환하며 힘이 생긴다. 여기서 광자, W보손, Z보손, 글루온이 다 게이지 입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게이지 대칭성이 있으면 전자나 쿼크, W보손, Z보손 등 모든 입자들이 질량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 그림에서 보듯이 광자와 글루온을 제외하면 모든 입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


힉스 메커니즘(Higgs mechanism)은 게이지 이론의 게이지 대칭이 자발적으로 깨져서 게이지 보손이나 페르미온(쿼크와 렙톤)이 질량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때 반드시 나타나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스핀이 0인 입자를 '힉스 입자(Higgs Particle)'라고 부른다. 표준 모형의 전약력 대칭 등 깨진 국소적 대칭을 다룰 때 이용한다. 힉스 장(場)은 스스로와 상호작용하는데, 이에 따라 힉스 장은 진공 기댓값을 갖고, 대칭이 저절로 깨진다. 깨진 게이지 대칭의 게이지 보손과 힉스 장과 상호작용하는 페르미온은 이에 따라 질량을 얻게 된다.


힉스 입자를 찾는 것이 LHC의 첫 번째 목적이었다. 이 입자는 발견이나 측정이 극도로 어려워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리언 레더먼(Leon Max Lederman, 1922~)이 저서(1993)에서 힉스 입자를 '빌어먹을(Goddamn) 입자'로 불렀다가 출판사의 권유로 '신(God)의 입자'로 바꾸면서 이것이 별칭으로 굳어졌다. 무신론자인 피터 힉스는 이 명칭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피터 힉스(2013), Source: wikimedia commons by Hans G


CERN의 아틀라스와 CMS 연구소 물리학자 수천 명이 힉스 입자 존재를 확인하는데 매달렸다. 2012년 7월 4일에는 지름 27㎞의 강입자가속기(LHC) 터널에서 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이 진행됐다. 마침내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되었을 때, 이미 83세 노인이 된 힉스 교수는 "내 평생 이것(증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지 못했다. 가끔은 옳다는 건 참 좋은 일"이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고 영국 언론(BBC, 스카이뉴스)이 전했다.


힉스 교수의 일화


스티븐 호킹 박사의 71세 생일 파티(2013), Source: wikimedia commons by Intel Free Press


내기를 좋아하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동료 과학자 미시간 대학 고든 케인(Gordon Leon Kane, 1937~) 교수와 내기하면서 힉스 입자가 없다는 쪽에 돈을 걸었다가 100달러를 잃었다는 일화도 있다. 호킹 박사는 나중에 힉스 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힉스 교수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힉스 교수는 1929년 잉글랜드 북서부 뉴캐슬에서 태어났고 킹스 칼리지 런던(KCL)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에든버러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주로 에든버러대에서 연구했다.


힉스 교수는 은퇴 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거의 은둔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전화만 사용했으며, 84개 계단을 딛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살았다고 한다.


겸손하고 수줍은 성격이었던 그는 1999년 작위를 거절한 적이 있었고,  2013년에는 작위는 부여되지 않는 명예 훈작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받았다. 이미 스웨덴 국왕에게서 노벨상을 받았는데 영국 여왕이 주는 훈작을 안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그는 힉스 입자에 자신의 이름 '힉스'만 붙은 것도 다른 학자들의 공로가 무시된다는 생각에 불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휘소 박사


고 이휘소 박사(벤자민 리), Source: wikimedia commons by ermilab


앙글레르 교수를 비롯해 힉스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물리학자들도 이 입자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는데, 이 입자에 힉스 교수의 이름이 붙은 것은 한국 출신 미국 물리학자 이휘소(벤자민 리, 1935~1977) 박사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박사가 학계에서 '힉스 입자'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1972년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핵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휘소 박사는 이 입자를 직접 연구했고, 이 입자가 주목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20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 박사(미국명 벤자민 리)는 25살 때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6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3년 뒤부터 1971년부터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기관인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었다.


1972년 이 박사는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핵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면서 피터 힉스 박사의 이름을 따 이 입자를 처음 '힉스'라고 지칭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힉스 입자가 자연계가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입자로, 질량이 양성자의 110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휘소 박사는 안타깝게도 1977년 6월 16일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한창 잘 나갈 때인 겨우 42세였다.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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