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사진: Alpha(왼쪽), Beta(오른쪽) and Proxima Centauri(붉은 원안의 항성),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katebiker]
지구의 평균기온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후변동폭도 커지고 있다. 지난여름과 겨울의 극단적인 기후 변화는 앞으로 올 현상의 전주곡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고 식량자원은 점점 부족해진다. 생물자원과 지하자원이 더욱 부족해져서 한없는 인간의 욕심을 채울 방법이 없어진다. 이렇게 지구는 앞으로 인류가 살아가기에 부적절한 곳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수렵어로채취생활을 했던 우리 선조들처럼, 한번 털어먹어서 황량해진 지역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우리의 습성인지도 모른다. 이에 먼 길을 떠나기 전, 우리는 지금 이삿짐을 챙기고 지도를 살펴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지역이 더 이상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한다. 일단 가까운 곳이 먼저니 태양계 여기저기를 찔러본다.
수성은 너무 뜨겁고 금성은 온실가스로 지옥하고 다를 바 없다. 화성은 그래도 쓸만하니 일단 비상선택 안으로 챙겨 두자. 영화 <마션>에서 보니 감자도 심을 수 있단다. 나머지 태양계 행성은 가스형 행성이니 좀 어렵지만 그 위성들 중에서 쓸만한 곳이 있나 탐사선을 여기저기 보내본다.
가장 가까운 별, 알파 센타우르스 항성계
아예 모시고 있는 별(항성)을 바꿔 보는 것도 방법이다. 좀 멀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단 가장 가까운 별 중에서 쓸만한 게 있는지 찾아본다. 그리 멀지 않은 곳(4광년)에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는데, 이것이 알파 센타우르스 자리이다. 아래 사진은 태양과 비교한 센타우루스 3 항성의 크기 비교이다. 알파 센터우리 B가 태양과 대충 비슷한 크기라서 호감이 생긴다.
알파 센타우르스 자리는 알파 센타우리 A와 알파 센타우리 B 그리고 프록시마(C)까지 3개의 항성으로 이루어진 다중성계이다. 크기와 밝기가 다 다른데 대체로 센타우리A> 센타우리B> 프록시마 순이다. 적위(적도를 연장하여 나타내는 천구의 좌표)가 남위 60도 50초라 한국에선 보이지 않고 필리핀 정도까지 남쪽으로 내려가야 보이기 시작한다.
카시니-하위헌스호가 토성에서 찍은 알파 센타우리 A, B의 모습(2008.5.17). Source: wikimedia commons by NASA/JPL, public domain
위 사진은 지난 2008년 NASA의 우주선 카시니-하위헌스호가 토성을 지날 때 찍은 알파 센터우리 A와 B의 사진이다. 저 정도로 보이면 상당히 잘 보이는 것인데 실제로 항성의 밝기를 나타내는 겉보기 등급이 A는 -0.01(숫자가 작을수록 밝다)로 지구에서 보이는 전체 항성 중 4번째로 밝다. B는 +1.35이다.
센타우리 B의 실재 궤도와 A의 겉보기 궤도, Source: wikimedia commons by SiriusB
과거에는 이 항성계가 쌍성계라서 행성이 있을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 양 항성 간 중력간섭이 발생할 수 있어서 행성들이 빨려 들어갔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우주에서는 쌍성계가 일반적이고 다른 외계행성들이 쌍성계 이상인 곳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B에는 행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위의 궤도 사진에서 보이듯 B는 A에 비해 궤도가 안정적이어서 운동량이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양보다 질량이 적어 코로나 등 채층활동이 A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조용했다. 기껏 이사했는데 갑작스럽게 태양이 폭발해서 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전문학자들은 시선속도법이라는 방법을 이용해서 센타우리B 앞을 지나가는 행성을 찾기 시작했다.
헤프닝으로 끝난 알파 센타우리 Bb
결국 2012년 10월 16일 알파 센타우리 B에서 드디어 행성(Bb)을 발견했다.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되면서 한동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항성계에서 행성은 발견되는 순서대로 b, c, d 등의 이름을 붙인다. a는 모행성을 의미해서 안 붙인다. Bb는 지구형(암석형) 행성으로 질량이 지구의 1.13배로 지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한다. 문제는 모항성과의 거리가 0.04Au(태양과 수성 사이 거의의 1/10)라서 표면 온도가 1,200도에 달한다는 것이다(영화 <삼체> 기준으로 보면 항상 난세기다). 아무래도 좀 아닌 것 같았다.
Bb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행성라고 알려졌지만, 2016년 프록시마 b의 발견으로 두 번째로 밀렸다. 게다가 2015년 Bb는 잘못된 방법으로 측정된 것으로 , 실재로는 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가 나왔다. 한마디로 해프닝이었다는 것이다. 외계행성 ‘센타우루스자리 α별 Bb’를 처음 발견했던 미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소속 사비에르 두무스크 박사는 “100%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그 행성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센타우리 프록시마 b
2016년 8월, 천문학자들은 센타우리에서 가장 작은 항성인 프록시마에서 행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프록시마를 C로 표시하고 발견된 행성은 Cb로 명명되었다. 질량은 지구의 1.3배, 11.3일에 한번 프록시마를 돈다. 모항성과 Cb와의 거리는 0.05AU인데, 프록시마가 적색왜성으로 온도가 3000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일명 골디락스 존에 있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모 항성과 거리가 가까워 조석 고정이 되어 달처럼 항상 한쪽면이 프록시마만을 보고 있다.
프록시마가 젊은 적색왜성이고 온도가 높지 않다는 점, 따라서 대기층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적어도 밤과 낮의 경계 부분에는 물이 있을 수 있어 미생물이 살지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결론 내리기에는 이르다.
2016년 4월 뉴욕에서 열린 과학 페스티벌에서 러시아 유대계 억만장자 유리 밀너, 물리학자 고 스티븐 호킹 ,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등이 프록시마를 탐사하기 위한 스타샷(Starshot)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간단히 말하면 28g짜리 우주선(일명 Stachip)에 우주 돛(솔라 세일)을 설치하고 여기에 레이저를 쏘아 광속의 15~20% 속도를 얻어 20~30년 내에 프록시마로 가서 탐사한다는 계획이었다. 해결할 기술적인 문제는 산더미인데 지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프로시마에 이런게 있을까?
아무리 영화라도 근본 없이 막 갔다 붙이면 관객을 속일 수 없다. 딱 있을 만한 곳, 가능성이 0.01%라도 있는 곳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하니, 알파 센타우리가 딱이다. 이미 여러 소설과 영화에서 알파 센타우리는 많이 인용되고 있다.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외계인들은 우주 부동산 개발을 위해 지구를 강제 철거한다는 공지를 알파 센타우리에 붙인다. 지구인은 항의하지만 '너희들은 니들 집 앞에 붙였는데, 얼마나 멀다고 거길 안 가보냐'라고 무시당한다. 그래서 지구는 순식간에 철거되어 사라져 버린다.
<아바타> , 제공: 해리슨앤컴퍼니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아바타>(2009)에서 가상의 행성 폴리페모스(Polyphemus)가 나오고 '판도라'는 이 주위를 도는 14개 위성 중 가장 가까운 위성이다. 폴리페모스는 목성형 행성으로 그려지는데, 목성처럼 대적점이 있고 이게 눈처럼 보여 그리스 신화 속 외눈박이 키클롭스 중 폴리페모스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에서 우측 상당에 큰 천체가 폴리페모스이다. 알파 센타우리 A가 모항성의 모델이다.
삼체 포스터, 제공: 넷플릭스
중국 작가 류츠신의 원작을 영화화한 <삼체>(2024)에도 지구로부터 4광년 떨어진 삼체(3 Body) 항성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쳐들어 온다. 심체(three-body problem)는 세 개의 물체 간의 상호작용과 움직임을 다루는 고전역학문제이다. 4광년이라는 거리와 태양이 3개 있는 알파 센타우리스계를 모티브로 삼았다(실재 프로시마는 두 항성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에도 나왔듯이 일반해를 얻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살기 좋은 안정된 항성계로 탈출을 시도한다. 다른 점은 지구인이 센타우리스로 가는 게 아니고 삼체인이 지구로 온다는 이야기다.
SF 거장 필립 K 딕의 소설에서 나쁜 외계인의 고향으로 나오고 이를 영화화한 <임포스터 impostor)>(2001)에도 등장한다. 아이작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도 지구의 마지막 거주자들이 이주하는 곳인 '알파'로 나온다. 넷프릭스 드라마 <로스트 인 스페이스>에도 지구 대체 행성으로 나온다. 이 밖에도 게임이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항성계이다.
학자들 간에는 지질학은 공룡 때문에 망하고 생물학은 진화론 때문에, 천문학은 빅뱅 때문에 망한다는 농담이 있다.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거대 이슈가 있어서 일반인에게 왜곡된 학문의 이미지를 심어 준다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이주 가능한 외계행성은 천문학 내지 우주개발 이슈를 주도하는 빅 이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솔직히 별로 없다. 너무 들떠하지 말고 차분히 진행과정을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