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과학 이야기
얼마 전(2024.3.22) 돼지의 간을 인간에게 이식해서 10일 동안 잘 기능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산시성 시안 공군의과대학 시징병원 의료진이 지난 3월 10일 50대 뇌사자에게 의료용 돼지의 간을 성공적으로 이식하여 담즙 분비 등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술에 참여한 두케펑 교수는 " 이번 수술이 이종 이식의 중요한 돌파구이자 이종 간 이식의 임상적 적용을 위한 중요한 진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수술에 사용된 돼지는 청두 소재 유전자기술 회사(클로노건 바이오테크놀로지)에서 제공했으며, 6번의 유전자 변형 단계를 거친 23kg의 유전자 변형 의료용 돼지로 간은 700g 정도였다고 한다. 인간에게 간은 가장 큰 장기로 성인의 경우 1.4~1.7kg 정도이다. 연구진은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돼지 항원 3개를 제거하고 대신 인간 단백질 3개로 대체했다. 수술 중 이식된 간은 혈류가 회복된 직후 담즙을 분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단 이 기사뿐 아니라 가끔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 이식하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023년 8월에는 뉴욕대의대 랭건병원의 연구팀이 뇌사자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해서 32일째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버밍엄 앨라배마대 연구팀은 역시 뇌사자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여 노폐물인 크레아티닌(Creatinine)을 일주일 동안 잘 제거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크레아티닌은 크레아틴 대사의 최종 산물로 근육, 혈액 속에 존재하며 소변으로 배설되는데 혈중 농도는 신장이 제기능을 수행하는데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2022년 1월에는 메릴랜드대학 연구팀이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불행히 2달 뒤 사망).
이러한 이종 이식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먼저 돼지의 유전자 지도가 필요했다. 2012년에 한국 등 9개국, 12개 연구기관이 참가한 ‘돼지 유전체 해독 국제 컨소시엄(Swine genome Sequencing Consortium)’ 의 연구결과가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돼지 유전체 해독을 통한 돼지의 집단통계학과 진화 해석 가능(Analyses of pig genomes provide insight into porcine demography and evolution)’이라는 논문으로 돼지 유전자 지도에 관한 논문이다. 미국 듀록(돼지의 한 종) 암컷 한 마리를 대상으로 6년간 공동 연구해 완성한 것이다.
돼지 유전자 정보에서 인간과 돼지를 포함한 여섯 종의 포유류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9000개의 유전자에 대한 진화 분석을 수행했다. 그 결과 조직과 장기 모양을 결정하는 기능의 유전자들이 유사한 포유류는 인간, 개, 돼지인 것으로 확인됐다. 돼지의 바이오 장기용 모델 동물로서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돼지는 잡식성 동물로 생리적인 측면과 기관의 구조적 측면에서 인간과 매우 유사하다. 결국 이에 따라 인간 질환을 연구하는 모델 동물로 돼지의 유전자를 개량하여 개발하는 연구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번 돼지 유전자 지도 연구에서 인간의 비만, 당뇨,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같은 질병과 동일한 유전변이를 112개 발견했다고 한다.
뭐 이쯤 되면 우리가 돼지인지 돼지가 우리인지 알쏭달쏭하다. 돼지 같다는 게 욕인지 칭찬인지도 헷갈린다. 여기서 우리의 돼지에 대한 관심은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우리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돼지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2013년 세계적 유전학자인 미국 조지아대학의 유진 맥카시(Eugene M. McCarthy, 1954~) 박사가 충격적인 가설을 발표했다. 인간이 수컷 돼지와 암컷 침팬지가 교배해 나온 잡종에서 진화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홈페이지(Macroevolution.net)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맥카시박사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현재 대부분의 진화학자들이 유전학적 증거에 기대어 침팬지가 인간에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적인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해부학적으로 인간은 침팬지와 다르다. 털이 없는 피부, 두꺼운 피하지방, 밝은 색깔의 눈, 튀어나온 코, 두꺼운 속눈썹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피부조직과 그 밖의 장기구조가 유사한 동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돼지라는 것이다.
먼 옛날 어느 시점에 수컷 돼지와 암컷 침팬지 사이에 잡종이 생겨났고,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역교배(backross)'(교잡으로 생긴 잡종을 다시 그 부모 중 어느 한쪽과 교배하는 것) 되면서 침팬지의 피가 섞여 내부는 돼지와 비슷하고 외부는 침팬지의 모습을 닮은 종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아직 학계에서 인정되는 학설은 아니지만, 과학의 역사가 과거의 이론을 부수고 발전해 왔음을 볼 때, 정설로 밝혀질지도 혹시 모른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이미 프랑스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아버지들의 아버지>(1999, 열린 책들)에서 이미 쓰였다는 점이다. 소설가의 기발한 상상력인지 학계의 전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 시도가 비록 뇌사자의 기증으로 이루어졌지만, 의도야 어찌됐든, 아직까지는 사람의 장기를 동물의 장기와 바꾼다는 것이 좀 꺼름직하기도 하다. 2024년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가여운 것들>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에 개의 몸을 결합시킨 동물(?)이 묘사된다. 인간만도 못한 빌런의 모습을 그에 알맞게 바꾼 설정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동물의 장기를 이식한 인간은 얼마만큼 인간일까? 신장은 그렇다 치고, 폐는, 심장은 어떨까? 분명한 것은 뇌를 바꾸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바꾸면 인간이 아닌가. 다시금 인간성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기사이다.
1. Martien A. M. Groenen et. al., Analyses of pig genomes provide insight into porcine demography and evolution, 2012, Nature, Vol. 491, p. 393~398
https://rdcu.be/dCDhx , doi:10.1038/nature1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