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장벽이 허물던 순간

인샬라

by 강가

“영감과 아이디어는 이동을 통해 발현된다.”어느 여행가


여행을 하면 종종 영감을 받곤 한다. 많은 작가나 예술가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여행의 주목적이 영감은 아니었지만 종종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을 하곤 했다. 그리고 유독 영감이 특별히 잘 발동하는 것 같은 지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장소로, 룩소르가 손에 꼽힌다. 룩소르에 도착한 첫 날 밤 꿈을 꾸었다. 매우 특별한 꿈이었다. 한 외계인처럼 보이는 형태의 한 사람 (?)이 물 속에 잠긴 고대 유적지와 같은 곳에 누워 있었던 꿈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고대 유적지에서, 가이드가 던진 말이 쐐기를 박아버렸다. 뜨끔하게 한 것이다. 마치 신들린 무당이 방문자의 이력을 꿰뚫어 아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룩소르의 이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문득, 룩소르의 어원이 ‘lux’ 빛나는 라틴어에 유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lux는 빛의 조명도를 나타내는 단위로도 사용된다. 영어 ‘찬란한’의 의미인 luxury 또한 라틴어 lux에서 유래 되었을 것이다. 미국 한 명문대의 학교 교훈은 “lux et veritas”. 빛과 진리라는 의미다. 한때 알렉산더의 지배를 받았던 이집트 일대가 라틴어를 도시 지명에 사용했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빛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신성하게 여긴다. 빛의 사촌뻘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불을 모시는 조로아스터교를 비롯, 기독교의 예수는 빛과 소금이라 하였고, 불교의 붓다는 그가 떠나기 전 자신을 등불 삼아서 법을 등불 삼아서 정진하라고 제자들에게 조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시 이름에 빛이 들어간 경우는 흔치 않다. 전설보다 오래 되었다는 인도의 바라나시 정도이다. 바라나시는 한 때 ‘빛의 도시’ 라는 의미의 카시라 불렸다고 한다. 인도 사람들이 특히 빛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인도 최대의 축제 중 하나인 디왈리는 빛의 승리를 축원하며 ‘빛의 축제’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빛도 과하면 살기 팍팍 해진다. 살기 위해선 휴식도 필요하다. 이집트는 명실공히 햇볕의 도시다. 너무 무덥다. 강한 햇볕으로 인해서 사막화가 곳곳에 진행 중이다. 물이 귀한 곳이다.


이제,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룩소르를 떠날 준비가 되었다. 패키지 투어로 둘러 보았으니, 하루 만에 신속하게 주변 주요 관광지를 섭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 룩소르에는 아직도 갈만한 곳이 몇 곳 남아 있었지만, 대표적인 곳은 이미 모두 둘러 봤으므로 과감하게 떠나기로 하였다. 그렇게 아스완으로 향하기 위해 짐을 꾸렸다. 아스완은 룩소르 남쪽방향으로 차로는 보통 4-5시간 정도가 소요 된다. 아스완에서 좀 더 내려가면, 아프리카의 수단이 나온다. 아스완은 이집트의 남쪽 끝 자락에 있는 작은 도시다.


룩소르에서 아스완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방법으로 나뉜다. 하나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 다른 하나는 로컬버스를 타고 가는 것. 저렴한 로컬 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머물던 숙소 직원이 100파운드 (한국 돈으로 4천원 정도)면 아스완으로 가는 로컬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였다. 차로 4-5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한국돈 4천원이라. 한국에선 감히 상상도 못할 금액이다. 물론, 그 질이 다르긴 하다.


고맙게도, 한 지역주민이 안내를 해주어, 로컬버스 타는 곳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다. 이집트는 사기꾼 같은 사람도 많지만, 친절한 사람 또한 많다. 어딜 가나 비슷할 것이다. 나쁜 사람만 있는 곳이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상대적이다. 다만, 그 비율이 더 높게 느껴지는 곳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 지역주민이 아랍어를 못하는 대신 버스비까지 내주고, 아스완으로 가는 로컬버스가 있는 곳까지 길을 안내 해 주었다. 고맙게 느껴졌다.


도착을 하니, 수 많은 작은 봉고차들이 보였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아스완에 간다고 하였다. 그러니, 다짜고짜 300파운드를 부르는 것이었다. 관광객이기 때문에 더 비싸다고 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관광객은 아니라고 어필 하였다. 여행객이니 100파운드에 해 달라고 하였다. 흥정을 하였다. 그런데,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싫으면, 기차를 타고 가라고 하였다. 기차는 적어도 1000파운드는 할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많이 없는 듯 해 보였지만, 너무나도 비싼 금액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직원이 100파운드면 된다고 하였다. 3배나 뻥튀기 해서 부른 것이다. 여행객을 돈 줄로만 보는 심보였다.


배 째라는 심보로, 봉고차를 타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얼 마 후, 아스완으로 떠나는 한 봉고차가 이미 출발을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봉고차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로컬 버스 정류장은, 매우 유연한 방식으로 운영이 된다. 특정한 시간에 딱딱 맞추어 버스가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 승객이 알맞게 차면 출발하는 방식이다. 역시, 이집트는 인도와 비슷한 구석이 없지 않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난다. "인도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독일이 과학과 산업화의 발달로 인해 고정됨이 강한 편이라면, 인도와 이집트는 어쩌면 유연성(혹은 융통성)이 극의 절정에 달하는 국가일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하면, 독일은 계획의 국가이고, 인도와 이집트는 즉흥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아스완에 못 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을 하였다. 다시 흥정을 하러 그 표 판매원과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갔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를 못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얘기 했던 것은 영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갑자기 불끈 한 것 같다. 명백한 거짓말로 이익을 취하려는 그 심보가 못되어 정의감에 불탔는지는 모르지만, 집게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며 떳떳이 말 했다.


“하늘은 모든 것을 안다. 거짓말 하지 마!”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장사꾼 심보를 보곤 말이 막 튀어 나왔나 보다. 사실, 매일 거짓말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언어나 단어는 고정되어 있다. 고정된 단어에 의미를 부여한 것. 그러나, 이 현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말을 하면 할수록 진리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이 말이 통하긴 한 것 같아 보였다. 순간 그가 조금 찔끔 하는 듯 해 보였다. 역시 종교심이 강한 무슬림에게 이런 식의 말이 통하긴 하나 보다. 그러더니, 50파운드를 깎아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 250파운드에 흥정의 종결점을 찍었다. 50파운드이면 이집트에서 로컬 샌드위치 10개를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나름, 성공적인 흥정이라고 생각을 했다.


곧, 봉고차에 사람이 다 차고 출발을 하였다. 앉은 자리 옆에는 중년의 현지인 남자가 있었다. 뒷자리에는 그의 아내와 가족들 같아 보였다.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말을 붙여 봤지만 과묵한 편이었다. 할 말만 딱하고 말이 이어지지가 않았다. 터프한 아랍 상남자였던 것.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아랍어로 친근함을 표하였다. '살라이 말라이쿰?' 하고 말했더니, 그도 살라이 말라이쿰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인샬라 라는 말이 머리 속에 팍 떠올랐다. 인샬라라는 말을 들어는 보았는데, 무슨 뜻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인샬라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인샬라가 무엇이오?'


그는 듣더니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 후 , 집게 손가락을 세우고 손을 몇 바퀴 돌리더니 하늘을 가리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의미가 전해져 온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언어로 해석을 하면,‘하늘의 뜻대로’가 되지 않을까? 인샬라. 종교적으로 해석을 하면, ‘신의 의지에 맡기라’라는 의미 정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이슬람의 문화를 잘 알려주는 의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그의 표현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어찌 이러한 깊은 뜻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언어가 끊어진 자리라 한다.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말로 완벽히 표현을 할 순 없을 것이다. 추후에도, 사전으로 인샬라의 언어적인 의미를 깊이 찾아 보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티켓판매원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리에 앉은 상남자 아랍인 역시,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며 인샬라의 의미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가. 비록, 이슬람과는 다른 이질적인 문화의 출신이지만, 하늘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매개체로,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샬라. 하늘의 뜻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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