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니 고생한다

아는 게 약이 되기도 한다

by 강가

종종, 길을 가다가 긴 나뭇가지(혹, 로프)를 보고 흠칫하곤 한다. 뱀으로 잠시 착각하여 공포심을 느낀 것. 힌두 철학 아드바이타 베단타에서 종종 사용하는 은유다. 흐릿한 빛의 반사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그것은 단지 나뭇가지에 불과하지만, 즉 실재가 아니지만 말이다. 모르니 문제다. 제대로 알면 뱀이 착각 (혹, 환영)에 불과한 것을 이해할 것이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 오야이땀보에서 숙박을 하였다. 숙소 주인이 마추픽추 근처까지 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6 ~ 8시간 정도 달리니, 산타 마리아라는 동네를 거쳐, 산타 테레사라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 후, 택시를 타고 마추픽추 근처 트레킹 장소에 내렸다.


꽤 긴 여정이었다. 택시에 내리고 보니 어두컴컴해졌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까지 2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운전기사가 어두워도 괜찮다고 하여 왔건만, 막상 시도하려고 하니 망설여졌다. 그러나, 크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해 보였다. 도전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어두 컴컴한 트레킹 길을 걷어 나아갔다. 대부분 평평한 철길을 따라가야 했으므로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문제는, 한 다리에 도달했을 때였다. 강렬히 떠 내려오는 강물 위에 위치한 철도 다리다. 철도길 나무판자 사이에 빈 공간이 보였다. 빈 공간에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강물에 휩쓸려 즉사할 판이었다. 무엇보다, 어두워져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왜 하필 그때, 그러한 모험심이 생겼는지 모르겠으나, 감행하기로 하였다. 돌아가기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으리. 다리의 길이는 100미터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발을 내디뎠다. 최대한 정신을 바짝 차렸다. 히말라야에서 어둠 속 철 망사 다리를 순식간에 내려왔던 경우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어둠이 고마웠던 그때와는 다르게, 어둠이 원망스러웠으리. 그래도, 절벽 앞에서 걷기 명상을 하며 공포심을 관찰하는 훈련을 하곤 했다. 비슷하게, 공포심이 생길 때마다 알아차림을 하면서 걸어 나아갔다. 주의하며 그렇게 걷다 보니, 결국 무사히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 길을 걷고 걷고 걸어 드디어 힘겹게 마추픽추 거점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을 하였다.


마추픽추 참으로 신비로운 장소였다. 어찌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러한 장소를 만들었을까. 황금 지팡이가 땅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잉카제국의 수도로 쿠스코를 삼았다는 것도 신비로웠지만, 거대한 자연 속에 이러한 형상의 유물이 남겨져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미국에서 왔던 관광객들이 특히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는 주변 마을에서 오래 머물 생각이었다. 신비로운 장소에서 오래 머물며 지역 에너지를 느껴보고자 했다. 하지만, 거점 마을은 관광객 중심이었다. 장기로 있을 만한 곳은 못 되겠다고 판단하였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선택하는 기차 노선과는 다르게 역시나, 거점 마을에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로 하였다. 그 길을 그대로 역행하면 되었으므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환한 대낮이었다.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였다. 대자연의 주변환경을 마음껏 조망하면서 갈 수 있었다. 강물과 솟아오른 산들의 조화 그리고 정글의 분위기가 더할 나위 없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인디이나 존스>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걸어가던 차, 또다시 그 공포의 철도 다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자연스레 걱정을 했다. ‘또 이 다리를 어떻게 건너야 하나?!’ 그러던 찰나, 참 허탈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철도 다리에는 한쪽 편에 보행자를 위한 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중간중간 빈 공간의 철도 길을 걸어가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되었다. 보행자용 길은 평평하게 잘 깔려 있어 순식간에 철도 다리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


한 밤중 위험을 무릅쓰고 다리를 건넜건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무지에 비롯된 판단이었다. 사전에 더 충분한 정보가 있었더라면, 좀 더 주의해서 보행자 길을 확인했더라면, 그런 모험은 하지 않았을 텐데.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렇게 위험한 도전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을. 제대로 알고 보행로로 걸으니 공포심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살면서 잘 몰라서 곤혹을 느끼는 경우가 꽤 많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이지만 모르므로 공포심에 떨곤 한다. 악마 혹은 짐승의 숫자라는 666이 좋은 예일 것이다. 각인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666의 의미를 제대로 알면 공포심이 줄어든다. 666은 탄소를 의미한다. 탄소는 6개의 전자, 6개의 양성자, 6개의 중성자로 구성된다. 탄소는 삶에 있어 매우 필수적인 기본 요소다. 누구든지 탄소로 구성되지 않은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짐승이라 표현한 것은 물질적 삶에 너무 치중하기보다 균형을 혹은 다른 측면을 고려하라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숫자 4 역시 동양에서는 죽음의 숫자로 대변되곤 한다. 죽음을 의미하는 ‘죽을 사’ 자와 동일한 발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보통 4개의 팔다리 갖고 태어나며 이 팔다리는 무엇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받쳐 주는 역할을 한다. 책상의 다리도 4개인 경우가 많으며 4륜 구동의 자동차는 2륜에 비해 좀 더 안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검정고양이도 비슷하다. 검정고양이는 행운의 상징으로 고려되기도 한다. 상대적이다. 흰색은 반사하는 성질이 어둠은 흡수하는 성질이 강하다. 어둠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공포의 대상으로 치부되어온 것은 아닐까. 빛은 강하면 육체를 태운다. 하지만 어둠이 강하면 마음만을 태운다.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하면 어둠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거북이 역시 비슷하다. 한 인도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한 말이 인상 깊었다. “거북이는 중국에서는 장수의 상징으로 좋게 여기지만 인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는, 문화에 따라서 거북이가 행운의 상징이 되기도 아니면 불운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이는 비단 거북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각인된 관습, 이미지, 인식 등이 생각보다 마음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나면 그러한 영향력이 조금은 줄어들곤 한다. 제대로 모르니까 문제였다.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 공포의 철도 다리를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아는 게 약이 되기도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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