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 퀸 May 31. 2024

 귀를 물어뜯긴 어머니

수철이 처음부터 죽어 마땅한 인간은 아니었다.

어쩌다 수철은 사형선고까지 받게 된 것일까?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인지 묻는 간수장에게 수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연락을 받은 어머니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형수 아들에게 달려왔다.


"수철아, 이게 웬일이란 말이냐. 착하기만 하던 네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니."

어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떨구었다.

철가면을 쓴 것처럼 시커먼 안색의 수철은 어항 속 붕어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래, 이 에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거라.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리는구나."

아들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해 그녀가 철창 가까이에 귀를 바짝 대자 아들이 속삭였다.  

"어머니, 어머니를 증오합니다." 이 말과 함께 수철은 어머니 귓불을 물어뜯었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태도에 너무나 놀란 어머니는 공포와 아픔으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간수장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   *


"응, 수철이 왔구나."

"네. 어머니. 오늘도 많이 아프세요?"

아버지 없이 혼자 큰 아이란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연실은 수철이에게 꼭 존댓말을 하도록 가르쳤다. 했던 수철이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어머니'라 말했고 열 살이 된 지금도 애답지 않게 어머니를 깍듯하게 대다.

"응, 좀 힘들구나. 미안하다. 엄마가 먹을 걸 준비 못했구나."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머니 드시라고 빵을 가져왔어요."

"아, 빵이 어디서 난 거니?"

"빵집 아주머니가 주셨어요. 어서 드시고 힘내서 일어나세요."

배움도 없고 기술도 없는 연실이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제 몸까지 쇠약해지고 태어날 때부터 짧았던 한쪽 다리는 점점 더 굽어 심하게 절뚝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집안 사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는 걸 안 수철은 어머니를 위해 가끔 동네 어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먹을 것을 얻어오곤 했다.


*    *    *


"아이고 이렇게 매번 빵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실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빵집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네? 무슨 소리 하시는 건지..."

"매주 일요일마다 팔다 남은 빵을 챙겨주셨잖아요. 어차피 팔지도 못하는 빵이라고 하면서. 수철이 편에..."

"네? 전 그런 적 없는데요. 다른 동네 빵집인가 보죠." 빵집 주인은 되레 본인이 무안해하며 급하게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얼굴이 붉어진 연실은 당장 집에 가서 수철이를 호되게 혼내주고 싶었지만 일단 저녁에 죽이라도 먹으려면 쌀을 얻어야 했다. 쌀이 떨어진 지 벌써 이틀째라 이 집 저 집 또 문을 두드려야 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되다 보니 이젠 이웃들은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발은 부르트고 배는 너무 고파 힘이 없는 데다가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서 눈물이 흘리던 연실은 어느덧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와달라고 할까 봐 눈조차 마주치기 꺼리는 이웃들에 대한 서운함과 증오감이 섞여 이젠 화까지 났다. 얻어 신은 탓에 발에 딱 맞지 않는 신발을 질질 끌며 집에 도착했을 때 연실 너무나 버거운 이 삶을 끝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너덜너덜해졌다.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선 연실에게 수철이 빨간 사과를 쑥 내밀었다.

"엄마, 이거 드세요. 선생님이 오늘 제가 대답을 잘했다고 사과를 주셨어요. 전 이미 한 개 먹었고 이건 엄마 거예요."

수철이를 혼내주려던 마음은 수철이의 불그스름한 볼을 보자마자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 이 세상에 내가 의지할 사람은 아들밖에 없구나.'

사실 선생님이 사과를 줄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배고픔과 수치으로 너무 지쳐 절망한 탓에 도덕성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는 그저 손을 뻗어 새빨간 거짓말 같은 사과를 힘없이 받아들였다. "고맙다... 아들아..."


연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 꼬치꼬치 캐묻고 먹을 것과 물건을 돌려주기에 그들의 상황이 말이 아니었. 연실과 아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 이거 저거 따지다가는 굶어 죽을 판이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다가는 얼어 죽을 테니 이제 아들의 거짓을 눈감아줄 뿐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그랬다. 매일 우는 엄마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던 수철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콩닥거리고 엄마에게 혼날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별 말 없는 엄마의 태도에 안도했고, 나중에는 오히려 먹을 것과 물건을 보고 기뻐하는 엄마 모습에 자신이 '어머니'를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   *   *


연실의 무릎은 힘을 잃고 꺾였다. 바닥에 쓰러진 연실의 귀에선 벌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진즉에 마땅히 흘려야 했던 배고픔과 노동의 피를 아들이 온몸으로 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자신을 조금씩 망가뜨리며 어머니가 배부를 수 있도록, 따뜻할 수 있도록 서서히 자신을 짐승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던 진실. 곧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아들의 마지막 절규 속에 연실은 목놓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이 되기 시작한 건 아들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갈기갈기 쥐어뜯었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그녀를 감옥 안의 수감자들이 텅 빈 눈으로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 이 글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도둑과 그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해서 쓴 창착소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