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부터 이야기에 매료(?)된 학생들은 기대감에 걸음걸이도 다르다. 춤 스텝을 밟으며 리듬감 있게 들어온다. 물들어올 때 노 젓자! 반짝이는 눈들을 보며 때를 놓치지 않고 임무를 시작한다.
"얘들아~ 8 품사가 뭐지?"
"명동에 사는 형부가 와서 감과 전을 대접했다~요!"
에너지 레벨 좋다. 복습은 필수지! 학생들 이름을 불러가며 배운 내용을 질문한다. 학생들 대답은 날 지상으로부터 한 손뼘 정도로 살짝 띄운다.
"좋아~ 너희들이 너무 잘해서 오늘은 깡패형아 이야기를 해 줄게."
"예? 깡패요?"
"응, 일단 선생님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깡패형아가 곧 등장하지."
"깡패형아 이야기 빨리 해 주세요~."
흐흐~ 이쯤 되면 학생들 머리 위 모든 안테나는 나에게로 향한다. 이러면 정말 수업할 맛 난다.
"8 품사 중에 명! 명사를 배워보자. 일단 명사는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가 있어요."
설명이 이어지고 학생들은 뭐가 셀 수 있는 명사이고 뭐가 셀 수 없는 명사인지 개념을 잡아가며 실제적인 예를 들어 누가 더 많이 말할 수 있는지 게임을 한다. 애들은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잘했다. 그럼 셀 수 있는 명사가 한 개 있으면 앞에 뭘 붙이지?"
"a나 an이요."
an 은 모음발음 나는 단어 앞에 붙인다고 설명하면 학생들은 고개를 위아래로 격하게 흔든다. 뭐든지 다 재미있는 건지 이야기를 빨리 해달란 제스처인지. 아무려면 어떤가. 뜨거운 반응은 내게 투샷 넣은 핫커피다.
"자, 그럼 여러 개, 즉 복수 뒤엔 뭘 붙이게?"
"s 요!"
"그렇지~ 그런데 어떤 것에는 es가 붙어야 돼. 그럼 과연 어떤 단어들 뒤에 es를 붙인단 말인가?"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눈은 저 오른쪽 천장구석으로 일부러 보내버린다. 물론 계산된 action이지만 어색한 침묵을 못 참는 사람인 것처럼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아, 그건 그렇고 어제 선생님이 집 앞 놀이터를 지나가고 있는데 중학생들 여러 명이 서로 희희낙 거리면서 말을 하는데 그게 거의 다 욕인 거 있지? 너희들 중학생들이 욕하는 거 들어봤어? 글쎄 그 중딩들이 우리 영어책에 나온 걸 그대고 말하고 있더라니까."
뭔 소린지 학생들은 또 이상한 선생님 화법에 놀아나다 벙쩌있다.
"잘 봐~ 내가 중딩들이 한 욕을 그대로 써 볼게."
난 전자칠판에 중딩들 흉내를 내면서 신나게 sh, ch, s, ss, x, o를 순화된 욕 리듬에 맞춰 적어나간다.
"이 sh(쒸) 땡땡아, ch(치)사한 놈, s(스)벌 ss(쓰)벌, 이 x(엑스)야~. 그런데 이런 애들을 보면 o(오) 형님하고 눈치를 봐야 해. 안 그러면 얻어터질 수 있거든. 그래서 깡패형아에게는 특별히~ es를 붙여줘야 하지"
처음에는 선생님이 왜 자기들 앞에서 욕을 발사하고 있는지 적응 못하고 있다가 서서히 아하~! 모드로 변한다. 선생님이 쉽게 외우는 법을 제시했다는 것을 깨달은 학생들은 입이 찢어지기 시작한다.
"얘들아, 그럼 우리 깡패형아 es를 같이 찾아볼까?"
신이 난 아이들은 질세라 서로 바삐 깡패형아들을 소환한다.
"a bus -> buses, a box -> boxes, a watch -> watches, a dish -> dishes, a tomato -> tomatoes..."
자기들이 내뱉은 단어에 스스로 흥분돼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쭉쭉 뻗은 손은 공중에서 빙빙 돈다. 침까지 튀기다 못해 이제 거의 소리 지르는 수준이 된 우리 아이들은 로데오 경기에 참가한 카우보이다.
이제 살짝 여기에 자음 + y와 f나 fe로 끝나는 것을 곁들이고 불규칙을 가미하면 명사의 단, 복수 샐러드 보울은 완성. 다음에 복습할 때 또 다른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거리를 살짝 남겨두고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오늘도 핑크빛 얼굴이 되어 돌아가는 학생들을 보니 mission complete! 내 볼도 핑크로 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