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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사는 형부, 8 품사를 부탁해요~!

<제1화> 8 품사: 명동에 사는 형부를 기억해!

by 미니 퀸

<제1화>

- 8 품사를 배우자!


"여러분~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이제 6개월 동안 선생님이랑 함께 문법을 공부하게 될 거예요."

첫날 학생들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관찰모드로 시작한다. 키 크고 좀 무섭게 생긴 선생님이 앞에서 뭐라고 하는지 일단 관찰해야 어느 정도까지 개겨도(?) 되는지 견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현자다. 가끔 눈치 없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본인이 누울 자리인지 아닌지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잘 판단한다.


"오늘은 문법 첫 시간이니 8 품사로 문법의 문을 열겠습니다. 짜잔!"

갑자기 두 팔을 박력 있게 위로 펼치며 목소리를 변조하는 선생님에 허를 찔린 학생들은 웃어야 할지 아님, 조용하고 진지하게 들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듯한 눈치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브레인 풀가동이 안 되는 거지. 그건 경험이 적어서 그런 거니 뭐, 알아서들 포지션 잡으시고...


"흠, 그런데 오늘은 첫 시간이니 주말에 있었던 얘기나 하나 해 줄까요?"

', 이거 뭐지? 선생님이 공부도 안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해 준다고? 아싸~!'

뭐, 이런 생각인지 다들 신나서 이구동성으로 "네~!"를 외친다.


"좋아! 음~ 그러니까 어제 주말이었잖니. 글쎄 어제 명동에 사는 형부가 우리 집에 오지 않았겠니. 어찌나 반갑던지 선생님이 형부에게 감과 전을 대접해 드렸지~. 감도 예쁘게 깎아드리고 전도 맛있게 부쳤지."

엥~ 이게 뭔가 싶은 학생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다음 이야기가 있나 보다 하고 어색하게 기다린다. 크크~ 기다리긴 뭘 기다린담. 이게 끝이구먼. 난 다시 이야기를 반복한다. "명동에 사는 형부가..." 동시에 전자칠판에는 이렇게 쓴다.

명 동 형 부 감 전 대 접


"얘들아, 이게 바로바로~ 8 품사야!"
선생님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아직 갈피를 못 잡은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살핀다. 이때 서로 웅성거리기 전에 재빨리 기선을 제압하려고 바로 던진다. 질문을.

"명은 뭐게?"

"어...며어엉사요?" 눈치 빠른 학생이 답해놓고 내 눈치를 본다.

"CORRECT!!!"

"자, 그럼 동은?"

이제 학생들은 모두 한꺼번에 전기에 감전된 듯이 앞다투어 입을 연다.

"동사요~"

"그럼 형은?"

"형용사요~ " 이쯤 되면 좀 느린 학생들까지도 모두 눈치챈다. 부사, 감탄사. 전치사, 대명사, 접속사까지 제비새끼가 벌레를 넣어 달라고 입을 서로 크게 벌리듯이 합창을 한다.


우리 짹짹이들~ 기특하다! 그래그래~ 입 크게 벌리고 하나라도 더 먹으렴~. 난 한 명 한 명 학생들 이름을 부르며 각각의 품사를 간단히 설명하게 하고 두 개씩 예를 들으라고 시킨다. 내 손은 학생들의 말을 따라 전자칠판을 가득 채운다.


8 품사를 모두 훑으니 집에 갈 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린다. 시간을 딱 맞추는 건 예술의 경지~ 오늘 첫 수업은 비교적 만족스럽다. 10점 만점에 8점!


학생들은 왜 벌써 종이 치는지 이해 못 하는 듯 잠시동안 입 벌린 냉동실의 동태가 돼버린다. 몇 초 후 갑자기 한꺼번에 뜨거운 물이라도 맞은 듯 현실로 돌아온 학생들은 왁자지껄 몰려 나간다. 그런데 이 녀석들 서로 경쟁하듯이 시키지도 않은 복습을 한다. "명동에서 형부가 와서 어~ 뭐더라? 맞다! 감과 전을 대접했다고 했지? 히히"


이제 학생들은 나의 페이스에 말려든 듯하다. 다음 문법 시간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렁거리는 기대감으로 흥분해서 교실문을 열 것이다. 이게 나의 착각이라면? 음, 그렇다면, 문법시간이 재미있다고 느낄 때까지 세뇌시켜야지, 별 수 있나.


난 에너지 풀 충전시키고 너희들을 맞겠다. 매 시간을 기대하시라! 우리 이쁜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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