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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 한 모금

시 한 모금

42. 다시 숲

by 조유상

긴 여행 끝에 모처럼 들어선 숲

여전하네요, 시간을 입어 조금 달라졌지만

더불어 숲이었지요



계속되는 비로 길은 미끄러웠죠

돌멩이, 나무뿌리, 길섶 모닥모닥 모인 흙이 고마웠어요

미끄럼 방지턱이었거든요



채 마르지 않은 질크렁 흙길엔 살짝씩

미끄러진 신발 흔적이 남아 있네요

먼저 간 이가 남긴, 비껴가라는 표시로 보였어요



미끄런 흙길도 굵은 자갈밭도 혼자

저벅저벅 마다않고 걷던 나는, 예전엔

방해물로 여기지 않던 거였지요



나이 들어 조심스러워진 발걸음은

표식 하나에도 감사로 두 손 모으며

뚝 떨어진 막대기를 길 한 옆으로 치워둡니다



가만가만 밟고 가니

나직나직 들려오는

소리 있더이다



찌물쿠던 여름날은 드디어 밀려나고

가을은 색과 공기로 이미

생량머리로 찾아드는 이즈음,


문득 그대의 안부를 묻습니다








*생량머리 : 초가을로 접어들어 서늘해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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