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짜장면 사라
풀무학교에서 우리 사귄다는 소식이 소수만 아는 보안 상태일 때였다.
거의 매일 밤마다 홍성 주위를 차 타고 나가 배회하던 우리. 홍성으로 나가면 꼭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불편해, 부여니 대천이니 홍성 외곽으로 좀 더 멀리 뛰곤 했다. 어느 날인가 밤늦게 그가 나를 운동장에 데려다주고 헤어지기 미진해 차 안에서 달콤함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단차가 있는 아래 운동장이 당시엔 나무가 가장자리로만 있었으니, 강당에서 내려다보면 뭐라도 눈에 쉽게 띄곤 하는 공터였다. 하필 사회와 역사과목을 담당하는 조 선생님이 강당에서 애들 야자 끝나고 나오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 별명은 '두꺼비'. 행동도 말씀도 다 느리고 눈동자만 천천히 끔뻑거리시니 붙여졌던 별명인가 보다. 학교 건물로 들어서면 왼편에 나무신발장이 있었다. 샘 이름칸에는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들어 있는데 고무신 안창은 구멍이 초란만큼이나 뻥뻥 나 있었다. 고무신은 얼마나 잘 안 닳는가. 그런 고무신이 빵꾸가 날 정도로 신고 다니는 분이 바로 우리의 두꺼비 샘이었다. 생태를 몸으로 실천하는 분이라 퇴임 얼마전까지 자기 차도 없이 학교와 집을 뚜벅이로 오가셨고 입음새도 철마다 거의 개량한복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좋아하시고 짜장면을 좋아하신 샘. 그 느림 속에 아이디어가 풍부해, 풀무학교 풀무질하는 로고 그림도 샘의 머리와 손끝에서 탄생했다. 손으로 하는 많은 재주를 가졌으면서도 컴퓨터는 극구 마다해 결국 당신 몫의 기록을 다른 샘이 해야 하는 불편을 끼치는 등, 일화가 난무하는 샘이시다.
바로 그 샘이 강당에서 내려와 좌회전해 기숙사로 향해 뚜벅걸음을 옮기다 우리 차로 천천히 몸을 틀었다. 앗, 레이다망에 걸렸군. 샘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망부석처럼 서서 우리가 탄 차를 뚫어져라 바라보시는 게 아닌가. 아아... 샘, 가셔요, 제발 가셔요! 나는 차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결코 아랑곳 않는 저 묵직한 자세 그대로 그는 윗몸을 기울여 한참동안 차를 내려다보셨다. 갑자기 내 남친이, '나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아이, 안 돼요! 지금 나가면 어쩌려구요! 잠시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하며 샘과 우리는 대치상태였다. 몇 분이 흘렀을까? 그가 느닷없이, '뭐, 죄지은 것도 아닌데 어때?' 하더니 자연스레 차문을 열고 나갔다. 헉! 나는 숨을 몰아쉬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데 차 앞으로 한 걸음 나간 그가 샘과 이야기 몇 마디 나누더니 들어왔다. "뭐라 그랬어요?" 했더니, 그냥 샘한테 인사하니까, "**씨가 이 밤중에 여기 웬일이냐고 하시기에 친구랑 만나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그냥 그러냐고 인사하고 가셨다고. 자기가 살짝 차 안을 들여다봤는데 어두컴컴해서 누가 누군지 잘 안 보이더라나. 휴, 다행이다. 긴 숨을 내쉬고 그를 보내고 나서 기숙사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교무실에서 웃음소리가 빵 터졌다. 맞선 보는 날 내게 납작 신발을 빌려주었던 동료 국어교사가 서무실로 건너오며, "조유상, 너 어젯밤에 들켰다며?" 물으며 활짝 웃는다. 미스 홍당무, 나는 얼굴이 그만 빨개졌다. 조 샘이 '어젯밤 **씨가 학교 운동장에 와 있기에 물어봤더니 친구 만나러 왔다는데 우리 학교에 있는 친구가 누구지?' 하더란다. 아니,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알고 있고 두꺼비 샘만 모른 거였다. 연세 드신 교감 샘까지 다들 눈치채고 웃으며 누군 누구냐 총각처녀지 하면서 박장대소하는데 역시 우리 두꺼비샘만 캄캄했던 거였다.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끝끝내 짐작도 못하신 샘은 결국 내가, '드디어 때가 되어~'로 시작하는 몇 장 안 찍은 우리 청첩장을 건네고 나서야 '아하, 그럼 그때 **씨가 말한 친구라는 게 조 선생?'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조 샘까지 알게 된 거면 이제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뻑하면 '짜장면 사라'는 말을 들었고 우리 연애는 풀무학교에서 저글링 되었다. '사랑은 짜장면을 싣고'였다. 이제 길이 난 **씨는 걸핏하면 건수 만들어 닳도록 학교를 드나들었고 그이는 기꺼이 짜장면을 샀다. 그 당시 비인가 학교였던 터라 우리 삶은 다들 고만고만했고, 짜장면이라는 이름의 관심을 회자하며 소박하게 웃고 즐기던 때였다. 기숙학교라 우리는 점심을 대개 학교에서 먹었지만 늘 먹는 밥은 아무리 좋아도 가끔 새고 싶잖은가. 교무실에 함께 모여 학교 일상을 나누던 당시 우리는, 그렇게 수시로 모여 떠들고 꺼떡 하면 서로 짜장면 타령이었다.
한참 후, 우리 큰아이 담임을 맡기도 했던 두꺼비 선생님. 은퇴 후 청양에 높다랗게 자리한 언덕에 구두쇠로 모은 돈으로 아담한 한옥집을 짓고 솜씨 살려 정결하고 이쁜 텃밭 정원을 가꾸고 사신다. 우린 어쩌다 한 차례씩 청양 선생님 댁을 방문하기도 하고 짜장면을 사드리기도 한다. 그리운 두꺼비 샘과 짜장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찰떡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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