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관용(Tolérance)이란
*똘레랑스 :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소수에 대한 다수의, 소수민족에 대한 대민족의, 소수 외국인에 대한 다수 내국인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를 막으려는 이성의 소리.
-나와 남 사이의 관계, 다수와 소수 사이의 관계에서 존중과 포용의 의미
공동체를 청산하면서 내가 만난 책은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였다. 책이었다기보다는 관용이란 무엇인가에 눈뜨게 해 준 길라잡이여서 나를 손잡고 그 길로 들어서게 한, 살아 있는 숨결이었다.
공동체를 나온 뒤 나는 심하게 조각나 있었다. 생채기로 얼룩져 찢어진 채 재생불능처럼 보였고, 어디에서 나의 조각들 이어 붙이며 일그러져도 하나의 다른 형체로라도 살아볼 수 있으려나? 자주 의심했다.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살아가야 할까?
나는 누구 다른 이와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홍세화의 책에서 격하게 '똘레랑스'라는 말에 울컥했고 수없이 밑줄 그으며 읽고 또 읽었다.
수도원이라는 단체, 아니 시스템에서 넓게는 종교단체라는 시스템에서 똘레랑스, 관용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게로 그 말을 가져와, 나는 어디까지 저걸 행동화할 수 있을까도 매일 매 순간 고민이었다. 사소한 일상의 갈등 상황 속에서도 똘레랑스는 유효하게 살아 있었다.
이래야만 하고 저래야만 하는 시스템에 내가 맞지 않는 유형이어서 더 그랬으려나.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에게서 살아 있는 똘레랑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예수도 그를 통해 체험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 무엇을 권하기는 하지만 강요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수도원에서 수련장이 시금치를 삶을 때나 낫질을 할 때도 자기 방식대로 하기를 종용하고 그렇지 않을 때 지켜보다 다시금 지적질하는 과정에서 무섭고 소름 끼치던 나는 천천히 알아갔다. 사람을 살리는 건 어떤 말과 행동인지를.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진리와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소소히 모였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었다. 친구들 나이와 성별은 서로 다르지만(남자 셋에 여자 하나) 어우러져 독특한 재미를 주던 친구들이 모인 날, 남편은 굴을 한 자루 사와 굽고 나는 뭔가 밥과 반찬을 했을 터이다. 모닥불을 피고 먹다가 부엌으로 들어가 기타를 치는데 한 형이 남편의 기타를 가져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치고 놀았다. 남편도 기타 치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한 번 정도만 하고 그에게 말없이 기타를 내주고 다 함께 밤늦게까지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하며 술자리를 이어갔고 하나둘씩 자리에 쓰러져갔다.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그는 기타 치고 횡설수설하다 먼저 쓰러진 형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차례로 방에 들어가 잠자리를 봐주는 게 아닌가. 그들은 모두 내 친구들이었다. 이젠 우리의 친구가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어서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멀지 않은 한용운 생가에 가서 초가 마루턱에 앉아 해맑은 웃음으로 사진을 박기도 했다. 이때의 추억은 내게 뭉클할 정도로 관용을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 내가 만나고 다정하던 친구들을 그가 평범해서 눈에 띄진 않지만 여전히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무슨 여자가 신혼 초부터 남자친구들을 들이냐고 했더라면 나는 그들과 인연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단 한마디의 판단이나 비난 없이 고스란히 친구들을 맞이해 준 그 모습에서 나는 관용을 만났다. 그 덕에 이후로도 지금껏 그들과 드물지만 자연스레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똘레랑스가 발휘되고 발효되는 시간 속에 주변 공기는 따뜻해짐을 발견했다.
흙담집, 변소가 멀어 불편하다는 말을 들으신 시아버님이 어느 날 장에서 요강을 사다 주셨다. 뚜껑이 있는 가벼운 스텐요강이었다. 쑥스러웠지만 아버님이 새 며느리 불편한 걸 눈치채고 사 오신 선물이 너무나 고마웠다. 건넌방에 요강을 놔두었으니 이제부턴 밤에 바깥 변소로 뛰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별밤 구경도 나름 운치 있었지만 이젠 편리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옆문을 열고 들어가 소리 안 나게 살살살 볼일을 보는데 창호지 건너에서 들려오는, "그냥 시원하게 눠~"하는 말, 그 말을 듣자마자 쏴아 하고 갑자기 하수관을 열 순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피어오르면서 자유로워졌다.
사랑을 할 때도 마찬가지. 소극적인 내 자세에 대해 그는 어느 날, "나한테 하는 사랑 표현은 자유롭게 해도 돼!" 그 한마디 말에 내가 금세 어우동 변신은 못했지만 나는 맘껏 그의 속살에 파고들 자유를 얻었다. 문이 그냥 열리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빗장을 열 때 섬세하고 자그마한 배려의 말은 내게 열쇠가 되어주었고, 그 열쇠 덕에 따뜻하고 햇살 가득한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었나 보다. 나는 그의 말을 통해 살아 있는 관용을 배웠고 자다가도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곤 했다. 곯아떨어진 그는 못 느꼈겠지만.
그는 고지식하기만 했던 나에게 당시 살아 있는 똘레랑스의 현현(顯現)이었다. 눈에 콩꺼플이 씌어 있는 한.
#관용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