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꺄악
시골집에 살아 본 사람은 알리라. 어디서든 걸핏하면 뭇 생명체와 조우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첫 신혼집은 아주 평범한 부엌, 방방방으로 되어 있는 일자형 황토집이었고 시멘트로 발라진 마당 앞쪽으로 옛날 광이 있고 대문간에서 가까운 곳에 허름한 목욕탕 겸 세탁실이 있었다. 얇은 시멘트블록으로 된 벽체와 아퀴가 딱 맞지 않는 창문 하나와 나무 문짝이 있는 곳, 욕조는 있었지만 겨울에 거기서 씻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게 허름했다. 늦가을 결혼했던 우리가 거기서 씻으려면 바깥 변소 가는 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순간온수기를 사다 달았다. 부엌에 온기도 더할 겸 가끔은 나뭇가지를 태워 가마솥을 데운 물을 한 바게스 떠 들어다 놓고 가스가 화르륵 타며 뜨거운 물이 덥혀지는 동안 재빨리 씻는 게 관건이었다. 그는 아마도 군대시절 씻었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그리고 느릿한 나 역시 거의 10분 안에 씻는 걸 마감하곤 했다. '화닥닥' 씻고 후다닥 방으로 냅다 튀어 들어가서 이불속으로 쏙! 직행이어야 했다. 전쟁 치르듯 씻고 들어가서 헥헥대며 숨을 고르고 방 안에서 머릴 말리곤 했던 시절. 그 겨울이 지나고 봄과 여름을 거치던 어느 날 그가 직장에 가고 없을 때였다.
빨래를 하려고 그 목욕탕을 열었는데 뭐가 기다란 끈 같은 게 보였다. 갈색 살모사 비얌이었다. 대가리를 도도히 들고 혀를 날름거리며 구불텅한 긴 몸체로 누워 있는 모습에 자지러지게 소릴 지르자 스르륵 지나가는 게 아닌가. 온 머리끝이 하늘로 쭈뼛하고 기절하기 일보직전, 나는 나무문을 쾅 닫고 나와 벌벌 떨며 신협에 염치불고 전화를 했다. 남편을 바꿔달라 해서 그한테 급보를 날렸다. "자기야, 뱀이 나타났어, 뱀. 나 너무 무서워. 빨리 와 봐요."
잠시 후 그가 같이 일하는 동료, 옛날 씨름 선수도 했던 덩치 큰 진택 씨랑 나타나서 어딨냐고 물었다. 뱀은 세탁기 밑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문을 닫아뒀으니까 그새 도망은 못 갔을 테고 두 사람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도구를 챙기고 수군대며 의논을 하더니 숨어 들어간 녀석을 갱신히 갱신히 잡는 데 성공했다. 그놈을 유리병이었나 사가지고 온 술(담금주용) 병인지에 대가리부터 쓩 넣어버렸다. 아니, 어쩌려고요...? 두 사람 은밀하고 나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그 병을 들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궁금해 죽을 뻔하다 나중에 그에게 물어봤더니 어디다 잘 묻어두었단다.
뭐 하려구? 했더니
보약이잖여.
아니 진짜 그걸 마시려구 그래요?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쳐 그가 달리 보였다.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숨겨서 어딘가에 잘 파묻어 둔 꿀단지, 아니 꿀단지 같은 술단지는 결국 이사 갈 때 어디 물었는지 몰라 찾지도 못했으니 그놈은 진짜 푹 담가진 채 이무기라도 되어 승천하지 않았으려나? 흐유, 다행이다. 그걸 마셨더라면 나는 뱀 마신 남자와... 살을 맞대고 살 뻔!!!
#비얌 #맛도 좋고 몸에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