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우연 혹은 기적?
첫 아이 밑으로 셋을 유산한 뒤 어느 날, 동네 성당 친구가 전화를 했다. 당시만 해도 성당을 다닐 때였다. 전화한 친구는 성당에서 하는 레지오라는 기도 모임에도 열심인 신자였다. 홍성읍에서 온 이가 하나, 나와 동네 친구 둘, 이렇게 넷이 모여 동그랗게 앉았다. 낙태된 영혼이 너무나 많아 기도 모임을 하게 되었다며 각자 몇 명을 입양하겠느냐는 거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했더니, 영혼을 입양하는 거였다. 무슨 비밀결사 모임 같은 분위기였다. 세 명을 유산했던 나는 얼떨결에 3명을 덜컥 입양했고 아이 하나마다 세례명을 붙여 부르며 기도하게 되었다. 기도는 일 년 동안 매일 하루 세 번씩 하는 거였다.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외울 수 있을 만큼 기도문은 짤막했다. 이십 년이 훨씬 지난 시기라 그 서너 문장 기도문이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매번 식사 후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혼자 조용히 속으로 하면 되니 표시도 없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그날부터 달력에 표시해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매일 삼종기도처럼 꼬박꼬박.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 더 발달한 나로선 별로 어렵지 않은 기도문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기도를 계속하던 어느 날, 엄마가 돌아가시고 삼우제를 치르고 집으로 내려오던 날 나는 아이가 생긴 걸 알았다. 영락없는 태몽이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높다란 난간 양옆으로 흐드러진 복사꽃 비가 내리는 언덕 위를 천천히 꽃비를 맞으며 올라가는 환희로운 꿈이었다. 흩어졌던 형제가 다시 모인 날이었다.
사업하다 부모 재산을 다 들어먹고 자신만 어디론가 튀어버린 큰 오라버니 행방은 알 수 없었지만, 큰올케와 조카 녀석 둘은 오랜만에 초상집에 나타났다. 조카들은 초상 첫날 보였던 살기 어린 눈빛과 반항기를 접고 내 앞에서 재롱을 떨기도 했다. 하루 내내 공들여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에 들어선 녀석들의 등허리를 쓰다듬어 주고 따뜻한 말로 감싸 안았더니 순수한 녀석들이 금방 아이로 풀어진 거였다. 이빨을 드러내 으르렁거리며 곧 물어버릴 듯하던 조카들 표정이 순하게 풀리고 장례식을 잘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그 짧은 화해를 축복으로 맞이했다. 그 기분 속에 내 불모지인 줄 알았던 자궁집에 자리 잡은 게 막내였다. 생명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었다. 낙태된 영혼을 위한 기도 7개월 차였던가.
처음에 나는 이 사실을 남편 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너무 잦은 유산 덕에 미리 수선 피우는 게 오히려 조심스러웠던 까닭이었다. 물론 그간의 유산도 시댁에는 알리지 않았었다. 당시 그보다 1년 전부터 우리 집에 모시고 살고 있던 친정아버지께도 임신 5개월 넘어서야 입 밖에 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주름진 얼굴을 활짝 펴며 기뻐해 주셨다. 시댁에는 그보다 훨씬 늦게 알려드렸고, 비밀결사대 같은 기도 친구들에게도 안정권에 들어선 뒤 말하고 나자 자기 일처럼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일 년의 기도를 마치고 막둥이를 낳을 수 있었다. 42살이었다. 첫애와 다섯 살 터울. 드디어 큰애는 동생을 얻었고 우리는 형제 둘을 얻을 수 있었다. 큰아이만 있을 때도 성가정의 모습에 흐뭇했지만 세 번의 잃음 끝에 얻은 막내를 안고 나니 세상 명도가 달라졌다. 가정이 비로소 환하게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일 년 치 기도가 끝나는 날, 나는 같은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얻고 나니, 동네에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풀무학교 전 비누공장 자리에 살고 있던 정** 선생 부부, 우체국에 근무하던 맹 양 부부, 풀무전공부에 다니던 이** 씨가 나도 모르게 떠올라 세 영혼에 새 이름을 붙여주었다. 각기 결혼한 지 3~7년 차 정도 되는 부부였었다. 일 년을 혼자 작정하고 매일 세 차례씩 기도를 남몰래 올렸다. 그해, 그 세 부부는 시차를 두고 모두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이걸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어쩌다 얻어걸린 우연, 아니면 기적?
나는 아직도 거기에 합당한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우연이겠지, 우연일 거야. 내 기도발이 아무려면 그리 세겠어? 그러다가 살그머니 든 생각, 내가 이토록 죽지 않고 살아온 것도 수많은 우연과 숱한 이들의 기도 덕분 아니었을까 하는. 수건 돌리기 놀이 같다. 모르게 누군가 내 뒤에 살그머니 두고 간 수건이 휘휘 내저은 손에 잡히면 그걸 들고뛰어 다른 이 뒤에 살그머니 놓고 돌아와 앉곤 하는. 모르게 모르게 살그머니 이루어지는 연결은 겨울밤 펑펑 내려 쌓인 눈처럼 아름답고 희어서 설렌다.
우리는 어쩜, 대추나무 연 걸리듯 얽히고설킨 기도발 속에 살아 숨 쉬는 건 아닌지. 스쳐 지나가듯 하지만 어려운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느새 그를 향해 마음을 모으게 되지 않던가. 이건 마치 자동반사적이고, 그건 바람이라는 이름의 기도가 된다. 화살처럼 그에게 마음 조각이 날개 달고 날아간다. 함께 바라는 마음 가닥은 모아지고, 머리칼 하나는 쉽게 끊어지지만 굵게 단 지어 땋아 내린 기도의 실타래는 튼튼히 묶여 있음을 발견하고 흠칫한다.
내 목숨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성당에 가서 기도하진 않지만, 늘 내 마음속엔 회오리쳐 기도가 이어지고 있고, 그 기도는 아프고 눈물 흐르는 이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둥글게 만나고 또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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