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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Jan 04. 2024

2,000원도 먹튀 한다고요?

국화빵 먹으며 나눈 이야기

출근하기 전 배가 고파서 회사 근처 노점상을 방문했다. 그곳은 꽤 오래 본 곳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국화빵을 주문했다.


"국화빵 2,000원어치 주세요." 하고는 손으로 또박또박 써놓은 계좌번호에 2,000원을 송금하고는 사장님께 말했다. "사장님 2,000원 입금했어요." 하며 입금한 화면 내역을 보여드렸다. 그리고, 국화빵이 만들어지길 기다리는 그때, 사장님이 말했다.


"에이, 그런 화면 안 보여 줘도 돼요."


"네?"라고 하자 사장님이 말했다.


"가끔 손님처럼 입금 화면을 알아서 보여주는 분들도 계신데, 그분들이 화면 보여주면서 꼭 확인하셔야죠.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분들과 같은 생각이에요. 입금 확인은 손님이 먼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라고 하자, 사장님은 국화빵을 굽던 기계에서 고개를 살짝 들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일하면서, 손님들이 입금하는지 일일이 확인 못해요. 귀찮기도 하고. 가끔 송금했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면 안 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해요." 사장님의 표정이 어쩐지 씁쓸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꼭 확인받으셔야죠. 정말 큰돈이라서 못 내는 것도 아니고, 작은 돈을 안 내는 건 너무 나쁜 것 같아요."


"그렇죠? 근데, 그냥 신경 안 써요. 그냥 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못한 가보다 하고 말아요." 나는 사장님의 말에서 괜히 내가 속상한 것 같았다. 추운 날 서서 일하시고, 나이도 연로해 보이시는데 비양심적인 분들로 인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장님, 괜히 그런 분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신경 쓰면 오히려 사장님만 병나고 손해인 것 같아요. 사장님 건강이 더 중요하죠."라고.


"그럼요. 이쯤 되면, 그런 거에 신경 안 써요. 그냥 그러려니 하지." 하며, 사장님이 나를 또렷이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다 만들어진 국화빵을 담으며 말하셨다.


"아가씨, 국화빵 바로 먹을 거예요?"


"아니요."라고 하자, 사장님은 일회용 용기에 종이 포일을 깔고 그 위에 국화빵 2,000원어치를 정성스럽게 담으며 말하셨다.


"이렇게 담으면 내일 먹어도 국화빵이 그대로야. 그리고, 더 맛있어요." 라며, 너무 정성스럽게 담아주셨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디를 가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담아주는 곳이 없었는데... 종이에 담아 가면 항상 국화빵끼리 엉겨 붙어서 먹을 때 불편했거든요." 하자,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죠? 이런 게 다 노하우야." 라며, 새삼 밝게 웃으셨다. 나 역시, 사장님의 정성스럽게 포장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했다. 그리고, 처음 본 사장님이었지만 서로 좋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어서, 사장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해주셨는데 그 이야기 역시 조금은 슬픈 이야기였다.


"여기가 노점상이잖아요. 그래서, 정권 때 노점 상인들 자리 다 뺏겨서 데모하고 그랬어요.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조사받고, 손 뼈도 다쳐서 이렇게 튀어나와 있어." 라며, 성치 않은 손가락을 보여주셨다.


"근데, 데모하지 말라 해도 어떡해. 여기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데모 안 하면 누가 우리 밥줄 신경 써줘."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럼요. 잘하셨어요. 내가 요구 안 하면 누가 내 권리를 지켜주겠어요."라며 말했다. 솔직히 나도 어느 정도 사회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보니, 소상공인 및 상인들이 제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본금을 투자해서 일을 하고, 노동력을 투여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 한입 풀칠하기 빠듯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곁에서 지켜볼 일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처음 본 사장님께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내가 아는 아주머니 중 한 분이 오랜 세월 장사를 하셨고, 남은 건 빚뿐인 분이 계셨다. 세상은 잘 나가고, 수월하게 돈 버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추앙하지만, 나는 이런 분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였다면 평생 한 일 이후 빚밖에 남지 않는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으므로. 어쩌면, 내가 나약한 사람이기에 이렇게 굳건히 버티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을 보면 존경심과 함께 내 가족처럼 마음이 아픈지도 모르겠다. 추운 겨울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장님이 전해주는 따뜻한 마음에 감사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세상은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의 삶을 버텨 나가는 모든 어른 분들을 존경한다. 나의 부모님도, 다른 어른 분들도 모두.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 원래 가장 힘든 법이라는 걸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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