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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Jul 03. 2024

제주 바람 미쳔~~?

제주가 입국 거부한 날.

업무 겸 휴양 겸 제주로 떠나게 된 날.

장마가 시작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장마와 관계없이 일정을 강행하게 되었다. 사실, 비 오는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은 어쩔 수 없었다.


전 날, 제주에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짐을 싸두고 새벽 2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이상하게 여행 전날은 낯섦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일어나서도 부족한 건 없는지 한번 더 체크하고, 집안을 한번 둘러보며, 여행을 나섰다. 웬걸. 새벽 내내 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집을 나서기 전 창밖을 바라보니 비가 잠깐 멎은 듯했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얼른 나섰더니, 하늘의 장난처럼 다시금 비가 퍼붓듯이 쏟아졌다.


우산도 들고, 캐리어도 끌고, 그렇게 택시에 올랐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비 때문에 젖을 걸 생각하니, 퍼붓는 비도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웃겼던 건 택시에 오르자 다시금 비가 그치기 시작하길래 "음? 이건 뭐지?"싶었다.


그렇게 나는 비행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했다. 다행히 조금 여유롭게 도착했다. 하지만, 기류의 불안정으로 비행시간이 늦춰졌다. 하지만, 20분 정도 늦춰진 거라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잘 됐네? 배고팠는데 이틈에 얼른 커피랑 뭐라도 먹어서 배 좀 채워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카페로 향했다.

대만샌드위치와 카페라떼를 시켰다.


그리고, 커피를 먹으며 아직 피로한 몸 상태에서도 여행을 즐기려 좋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비가 와서 그런지 공항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한산했다.

나는 그런대로, 그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비 오는 날 너무 복잡해도 힘들었을 테니까.


그렇게, 오랜만에 비행기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올라탔다. 오랜만의 비행이라 그런지, 모든 게 다 낯설어서 중간중간 바보처럼 허둥지둥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게 그럼에도 좋았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륙 후 늘 그렇듯 창문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끝을 알 수없이 펼쳐진 구름들. 원래라면 파란 하늘이 보여야 하는데, 장마 덕에 파란 하늘이 구름에 가려졌다. 그럼에도 구름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 구름을 구경하다가 피곤했는지 잠시 졸았다 눈을 뜨니 기체가 크게 흔들리며 착륙을 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비행기는 착륙하지 못하고 다시 고도를 높이고 있었다. 순간 "어? 이상하다. 제주는 지금 엄청 화장한 날씬데, 비행기가 왜 착륙을 못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제주의 날은 맑아도 바람이 많이 불어서(기류의 불안정으로) 도무지 착륙할 수 없었던 거였다. 나는 이때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음, 안 그래도 비행시간이 아쉬웠는데 비행기 더 타고 좋지 뭐." 했는데, 그 상태로 1시간을 더 제주 공항 근처를 뱅뱅 돌며, 착륙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주의 바람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마치 우리들의 입국을 제주가 거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덕에 비행기 안의 승객들도 처음에는 차분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지쳐갔다. 불안정한 기류는 비행기를 흔들어 댔고, 비행기 안의 승객은 비행기의 흔들림에 속절없이 흔들렸다.

흔들림이 강해질수록 메스꺼움도 더해져 갔다. 

하지만, 힘든 와중에도 승객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다들 불안에 떨지도 않았다. 다만, 속을 울렁거려할 뿐이었다.


나 역시, 두 번째 착륙시도가 있을 때까지는 컨디션이 괜찮았지만, 세 번째 착륙시도가 있을 때는 비행기가 너무 흔들렸다가 고도가 상승되는 바람에 급격하게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상사를 막기 위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자 메스꺼움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의 강풍으로 착륙하지 못해, 출발지로 다시 돌아갑니다."라는 이야기.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공항으로 다시 가면, 기름을 넣고 다시 제주로 오는 건가? 아니면, 이번 일정은 아예 취소가 되는 건가?'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차분히 자리를 지키며 승무원의 다음 안내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대구에 도착하자 맥이 탁 풀렸다.

떠나려던 여행지에 도착도 하지 못한 채 상공에서만 3시간 이상을 떠 있었으니... 게다가 비행기가 흔들린 탓에 온몸이 뻐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만 힘든 건 아닐 거라 생각했다.

이번 비행에서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모든 승객들이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황하고 화날법한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큰소리를 내거나 특별한 행동 없이 차분히 비행기 안에서 자리를 지키며, 대구에 도착할 때까지 질서를 지키는 모습에 놀랐다.


"와, 내가 탄 비행기의 모든 승객분들은 정말 점잖은 성향의 멋진 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과 관련해서, 표와 관련해서 궁금할 것이 많을 법한데도,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자리를 지키고,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제주에 도착하지 못하고,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모두가 지칠 법 한 상황에서도 여행객들은 쉬이 화를 내거나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나 또한 생각했다.


"오늘 제주에 가지 못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게 됐지만, 이 또한 여행의 일부겠거니. 이런 여행도 있고, 저런 여행도 있는 거지."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것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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