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말을 건다

지나온 길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움 4]

by 캔디의 여백

그리움은 언제나 큰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사소해서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마음을 건드릴 때가 있다. 떠난 사람보다 그 사람이 머물던 자리, 그가 지나가며 남긴 작은 흔적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움은 사람보다 자리로 먼저 온다는 것을.


시골길을 걸으면 그 길만 걷는 것이 아니다.

발이 흙을 밟는 순간, 언젠가 걷던 다른 길이 문득 되살아난다. 어린 날 뛰어다니던 골목, 누군가와 나란히 걷던 저녁길, 혼자 울면서 걸었던 어느 날의 길. 지금 이 길과 그 길은 전혀 다른 곳인데, 발은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몸은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자꾸 다른 곳을 걷는다.


어느 학교 앞을 지나다 멈출 때가 있다.

내가 다니던 학교가 아닌데도 마음이 먼저 그쪽으로 기운다. 교문의 생김새, 운동장의 모습, 쉬는 시간에 울리던 소리. 그 학교는 낯선 곳인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내 안 어딘가에 학교라는 시간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 낯익은 건물에 들어설 때도 그렇다. 로비의 공기, 복도를 걷는 발소리의 울림,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 몸이 먼저 안다. 여기가 어딘지가 아니라, 예전에 내가 있던 곳이 어땠는지를.

계단을 오르다 잠깐 멈춰 선다.

이 계단이 아니라 그 계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계단은 위로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지나간 시절로 다시 내려가는 길이 된다.


어떤 계단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내려가는 통로가 된다.


낯선 사무실에서 긴장하며 일하다 보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았던 때를 떠올린다. 그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때는 조금 더 편했는데. 과거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지금이 버겁기 때문에 그때가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때로, 지금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늘 앉던 자리도 있다.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게 되던 자리. 오후의 빛이 먼저 내려앉던 자리,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던 자리, 잠깐 기대어 있어도 괜찮았던 자리. 사람은 떠났는데 의자만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완전히 비어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시간의 모양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끝나고 천천히 흩어지던 사람들의 뒷모습도 오래 남는다.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그리운 이유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돌아서서 멀어지는 어깨에는 늘 조금의 망설임이 남아 있고, 그 망설임이 오래 마음을 붙든다.


그리움은 떠나는 장면보다, 떠난 뒤 남는 시선에서 자란다.


그리고 목소리.

특별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내 이름 하나를 불러주던 평범한 한마디였다. 그런데 어떤 부름은 오래 남는다. 반갑다는 뜻, 잊지 않았다는 뜻, 지금 여기 있어도 괜찮다는 뜻이 그 짧은 부름 안에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낯선 사람의 말끝에서 오래전 목소리를 듣고, 잠깐 시간을 잘못 산 사람처럼 멈춰 선다.

우리는 모두 가슴 안에 걷던 길들을 품고 산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자리,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 그것들이 쌓여서 한 사람의 내면이 된다. 애틋함이 많을수록 그리움이 깊은 것은 당연하다. 많이 사랑했다는 뜻이고, 많이 살았다는 뜻이니까.

그리움은 결국 장면을 기억하는 마음의 본성이다.


사람을 잊어도 그 사람이 앉던 자리는 기억하고, 목소리를 잊어도 그 목소리가 울리던 공간은 기억한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마음이 나중에 따라온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멈춰 선다. 낯선 계단 앞에서, 익숙한 냄새 앞에서, 비슷한 빛깔의 하늘 아래서.

그 멈춤이 그리움이다. 지나온 시간이 지금 여기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이다.


빈자리는 말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그 앞에서 잠깐 멈추고, 그리고 다시 걷는다.

그리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그림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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