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나를 살린 글

by 캔디의 여백

세상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들이 많다. 노래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다. 젊은 날 좋아했던 노래들은 오래 지나도 다시 마음을 흔든다. 어떤 그림은 한참 바라보게 하고, 어떤 장면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사람은 그렇게 노래와 그림 속에서 위로를 받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만난다.

그런데 내게 끝까지 남은 것은 글이었다.

노래는 지나가고, 그림은 멀어진다. 그런데 글은 남는다. 한 문장이 며칠을 따라오고, 어떤 구절은 수십 년이 지나도 내 안에서 살아 있다. 책을 덮어도 문장은 같이 걷는다. 그래서 나는 글이 제일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가장 오래 남고, 가장 깊이 들어온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글 잘 쓰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처음에는 많이 움츠러들었다. 내 글이 보잘것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마음을 정했다. 잘 보이려고 쓰지 말자. 화려하게 쓰려 하지 말고, 내가 정말 느낀 것을 정직하게 쓰자고. 한 사람이라도 위로가 되고, 한 사람이라도 잠깐 멈춰 생각하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사실 내가 글을 붙든 이유는 더 오래됐고, 더 깊은 데 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있었다. 말하지 못하고 삼킨 것들이 있었다. 속상함이 쌓이고 쌓이던 어느 날, 나는 글을 썼다. 그랬더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안 쓰면 더 무너질 것 같았다.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고, 삼켜버린 감정이 너무 많았고, 어디에도 두지 못한 마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썼다. 살려고 썼다.

문장은 사람보다 정직했다.
사람은 내 진심을 오해했고, 내 마음을 당연하게 여겼고, 때로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문장 앞에서는 괜찮은 척이 오래가지 않았다. 아프면 아프다고 써야 했고, 지치면 지쳤다고 인정해야 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더는 못 버티겠으면 못 버티겠다고 써야 했다. 처음에는 그게 쓰라렸다. 그런데 나중에는 알았다. 그 정직함이 나를 살렸다는 것을.

어떤 날은 한 문장만 써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떤 날은 글을 쓰다가 울었고, 어떤 날은 다 쓰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알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끝까지 버티던 마음이 문장 앞에서는 더 숨지 못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잘 보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다시 붙드는 시간이라는 것을.

내게 문장은 거의 붕대였다.
문장은 내 숨을 대신 쉬어주었다. 그러니 글은 내 취미가 아니었다. 어쩌면 생존이었다.

나는 글로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게 아니다.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쓰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닳아버린 내 마음을 다시 주워 담으려고 쓰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사람을 너무 믿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문장을 붙들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은 나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문장은 적어도 나를 속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직한 문장 앞에서, 나는 잃지 않으려 했던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픈 사람이다.

아직도 어떤 장면은 생각나고, 어떤 말은 가시처럼 남아 있다. 그래도 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예전의 나는 사람을 붙들다가 나를 놓쳤지만, 지금의 나는 글을 쓰면서 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문장이 나를 살렸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이 글을 통해 나를 다시 데리고 나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서.

글을 쓸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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