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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대한 고마움

잡초, 풀 등

by 반야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다만 지능을 갖고 있다는 말을 주어 들은 적이 있다.

맞다 지능이 있다. 해바라기가 햇볕을 향해 고개를 돌린 모습을 볼 수 있고 창문가에 나무가 사람손이 닿지 않도록 다른 쪽을 가지를 뻗은 모습을 본다.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에서는 사람이 식용으로 기르는 모든 식물은 자신이 번성하도록 사람을 부려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 자신의 몸을 지불한다고 한다.

맞다, 정성껏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온전히 자신의 몸을 내어주지 않는다. 얼마나 영리한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베어낼 수 없게 죄책감을 갖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쪽이 경사진 산이 있다. 작년 누가 제초제를 뿌렸는지 죽어있었다. 걱정이 되었다. 혹여 장마철 토사가 흘러 도로가 집을 덮칠까 봐, 우려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토사가 보이지 않게 풀들이 촘촘히 자랐다. 1년이 지난 지금 아침에 산책하다니 보니 구에서 파견되었는지, 여러 사람이 산 쪽 가장자리를 제초기를 이용해 풀을 제거하고 있다.


용기를 내었다. “산사태가 우려가 있을 수 있으니 풀을 제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풀이 시야를 가린다고 민원이 들어와서요”라며 다행히도 나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친절히 대답해 준다.

이렇듯 풀 한 포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에 키우는 강아지 집 주변에 무성한 풀을 뽑아낼 때 좀 신경이 쓰였다.

전에는 “풀은 없애야 해, 해로운 거야”라며 주변에 난 풀을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원한이 있는지 독한 마음으로 제거했다.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크고 무섭고 나를 해하는 것 같으면 제거하지 못한다. 강아지가 밖을 잘 내다보이게, 벌레가 생기지 않게, 체소, 과일을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 하는데, 거기에 기꺼이 응해주니 말이다. 지금은 이런 마음을 갖고 풀을 제거한다.


불교 공부는 ‘모든 생명을 함부로 살생해서는 안된다’라는 교리에 얽매여 가끔 나를 힘들게 한다.

해결방법은 중도이다.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게 하면 될 듯하다. 내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인 듯싶다. 어떠한 결정에든 자유롭고 싶다. 불교교리가 나의 자유를 얽매인다면 헛되게 공부한 것이다. 만물은 다 나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함부로 쉽게 생명을 죽이는 일은 분명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부분이다.


날씨가 무척 덥다.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덥지만 나무 그늘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아침에 나무 그늘의 산책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기분을 좋게 한다. 나무는 얼마나 더울까? 폭염, 강한 햇볕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견디고 있다. 참 감사하다.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이다. 나의 고통의 해소는 만물이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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