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가 어수선해서 보니
또 <나 혼자 산다> 팀이 촬영을 왔다.
우리 옆집에는 유명 연예인 B가 살고 있다.
혼자 사는 그 옆에서... 우리는 셋이 살고 있다.
임신을 확인한 뒤, 이제 1점이 오른 셈이니 방 세 개인 집을 얻는 건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고 자만하고 있었다. 우리는 LH 3기 신도시 사전청약에 당첨된 상태였으므로 2030년 입주 전 5년간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뒤에 나온다) 일반 부동산을 통해 전셋집을 구하면 4년을 살고 또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한다는 점이 걸렸다.
임대도 투룸으로 지원하면 당첨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우리 집은 ⌜거실 + 방 하나 + 드레스룸⌟ 구조이므로 투룸으로 이사하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살다 보면 반드시 쓰리룸을 원하게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이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집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으려면 다음 집은 무조건 쓰리룸이어야 했다. 그래도 우리는 신생아가구로 1순위이니 어떻게든 오래 살 집을 구해보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양가 부모님께도 출산 후에는 반드시 쓰리룸으로 이사하겠다고 호언장담해 두었다.
마침 우리에게 기가 막히게 딱인 새로운 공고가 나타났다 '신혼, 신생아 매입임대'
목록을 보니 양천구에 새로 생긴 신축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쓰리룸과 투룸이 섞여있었다. 나만큼 성격 급한 우리 부모님은 임장을 다녀오신 뒤, 집이 너무 깔끔하고 좋다며 당첨되길 기대하고 계셨다.
그런데 대망의 접수날
34 호수 모집에
100명.. 200명.. 300명이 넘게 지원하더니
결국 마지막에 뜬 지원자 수가 517이었다.
신혼부부 매입임대로 지원할 때만 해도 3:1이었던 경쟁률이 이렇게 높아지다니...
다행히 얼마 후 서류 합격 문자가 도착했다.
나는 바로 자신만만해져
곧 이사 갈 준비를 하자고 남편에게 떵떵거렸다
그런데 아이의 100일이 훌쩍 지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예비 80번"이라는 숫자였다.
나는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했다
예비 80번...
광탈이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아이 두 명 있는 집이 겨우 34 호수 내에 들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둘이 살 땐 너무나 행복하고 완벽했던 이 집이
내 팔뚝만 한 아기 한 명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마침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서 계속 적응해 나가야 했고, 월급이 높아진 만큼 업무도 많아져 이전처럼 주 6일 출근을 해야 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울었고 밖은 추워 나갈 수도 없었다. 어느 날은 너무 답답해서 달력을 보니 집 밖을 안 나간 지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40일 동안 집 밖으로 나온 게 두세 번이었다. (그것도 산후 검진 때문에 잠깐) 나는 깜깜한 집에서 혼자 우는 아이를 안고 한강 작가의 ⌜괜찮아⌟라는 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도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하지만 도무지 괜찮지가 않았다. 하루에 세 번씩 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에게 힐링이던 빨래 시간은 어느 순간 가장 버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루에 세 시간씩 아이를 안고 재워야 하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테라스에서 빨래를 하나하나 너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나는 빨래를 최대한 모아 두었다가, 남편이 쉬는 날 2층 공용 워시타워에서 세탁과 건조를 한 번에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가 나의 치밀한 계획(?)인 것도 모르고, 남편이 내가 오전에 잠든 사이 혼자 2층으로 내려가 빨래를 세탁기에 돌려놓고 출근해 버린 것이 아닌가!
결국 나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내내 아이를 돌보며 세탁과 건조 시간을 계속 신경 써야 했다. 공용 건조기를 쓰는 만큼 다른 사람이 기다리지 않게 제때 내려가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다.
세탁이 끝난 직후에는 그래도 수월했다. 낮잠시간과 맞물려 아이가 깊은 잠에 막 빠진 직후라 우사인볼트와 같은 속도로 2층에 내려가 세탁물들을 30초 만에 건조기에 옮겨 넣고 다시 올라왔다. 다행히 아기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건조가 끝난 뒤였다. 딸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 잠시 모빌을 틀어주고 빨리 다녀올까도 했지만,
깨어 있는 아기를 혼자 둘 수 없어 애기띠를 두르고 함께 2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건조가 끝나니 빨래가 한껏 부풀어 두 바구니나 나오는 것 아닌가. 그중에는 건조기 비용 3,000원이 아깝지 않게 내가 넣어뒀던 이불까지 들어 있었다.
나는 아기를 안은 채 두 바구니를 동시에 들 수 없어 한 바구니씩 옮겨야 했다. 그 사이 내 체력은 바닥났고 마음대로 세탁기를 돌리고 간 남편에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생각지도 못한 답이 왔다.
“지영아… 나... 입을 팬티가 없어서 그랬어.”
결국 우리는 쿠팡에서 팬티 10세트를 추가 구매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사를 가면 반드시 세탁건조기를 제일 먼저 사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사실 신혼·신생아 매입임대 발표를 기다리던 그 시기, 나는 또 하나의 공고를 보고 있었다. 그동안 꾸준히 도전해 왔던 ‘장기전세’ 모집이었다. 강서구엔 서울의 대장 아파트 단지 중 하나인 마곡지구가 있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산책을 하러 다니는 곳은 늘 마곡이었다. 출산 전 마지막 외출도, 아이를 낳고 처음 나선 외출도 서울 식물원이었다. 하지만 예비 신혼부부일 때부터 가점이 모자라 한 번도 서류에 붙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 사이 청약통장 납입 횟수가 늘어나 1점이 올랐고
아이가 태어나 1점이 올랐다.
또 소득은 비슷한데 3인가구가 되어 소득 배점에서도 1점이 또 올랐다.
보증금 4억 8,048만 원
26 가구 모집 / 예비자 58명 모집
보증금이 다른 공공임대에 비해 조금 높게 나왔지만 신생아 전세대출 3억을 풀로 받고 양가 부모님들에게 조금만 돈을 더 빌린다면 어떻게든 도전해 볼 만한 금액이었다. 부동산에 나와있는 해당 아파트의 전세금액은 7-8억, 매매는 20억이었다.
일단 당첨되고 보자
매번 탈락 고배를 마셨지만 그래도 우는 아이를 달래며 또 한 번 신청했다.
충격의 예비 80번 사건 이후
나는 당연히, 마곡은 광탈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월의 어느 날
[Web발신]
[서울주택도시공사 미리내집공급부]
축하드립니다. 유지영 님께서는 제46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모집공고에서 서류심사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아래 서류제출 기간 내 심사서류를 반드시 등기우편으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택배 및 일반우편 금지)
서류제출기한 : 2025년 2월 24일(월요일) ~ 2월 26일(수요일)
※ 2월 26일(수) 우체국 소인분까지만 인정함
제출기한 내 관련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청약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대상자에서 제외되며,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장기전세 서류합격 문자가 왔다.
그 사이 아기는 4개월이 지나 뒤집기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참아보자
최종 결과는 6월에 나온다고 했다.
39㎡에서 넉 달을 키워냈는데, 그만큼 한 번을 더 버텨야 했다.
4개월만........ 4개월만 더 참아보자.
이것마저 되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부동산을 알아보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렇게 2월부터 6월까지
간혹 가다 들려오는 옆집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우는 아이를 붙잡고 버티는 시간들이 다시 이어졌다.
남편은 새 일터에서 밤 10시 반쯤 퇴근해, 11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도착했다. 아기가 거실에서 잠든 뒤부터 그는 퇴근하면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와, 컴퓨터 책상 위의 키보드를 치운 뒤 조심스레 밥을 먹었다. 근처 식당들도 대부분 문을 닫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도 어려웠다. 밥을 다 먹으면 그는 다시 그 자리에서 쌓여 있는 업무를 새벽까지 마무리했다.
나는 하루 종일 육아를 하고 이제 좀 자고 싶은데, 옆에서 키보드 소리가 계속 투닥거리니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안방에 있던 컴퓨터 책상을 거실로 빼고 그 자리에 아기 침대를 놓았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이 침대가 거실에 있을 때는, 아기가 자다 깨어도 한 사람만 가서 쪽쪽이를 물리고 토닥이면 다른 한 사람은 그 시간에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침대가 안방으로 들어오자
새벽에 아기가 깰 때마다 우리 둘 다 함께 뒤척이며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가 생후 6개월이 지나며 분리불안이 심해져 내가 옆에 없으면 계속 울었다.
당근에서 6만 원을 주고 임시방편으로 산 범퍼침대는 같이 자기에 너무 딱딱하고 작아 다리를 펼 수가 없었다. 하필 제일 힘든 시기마다 시험기간이 찾아왔고, 남편은 다시 주 6일 출근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남편도 일어나자마자 악몽을 꾼 듯 너무 힘들어했다. 성현이는 평소에 꿈도 잘 꾸지 않고 머리만 대면 금방 잘 자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무슨 꿈을 꿨냐고 물으니 내가 죽는 꿈을 꿨다고 했다.
성현이는 원체 눈물이 없어 태어나고 운 적도 몇 번 없다고 했다. 나도 그를 만나는 7년 동안 그가 우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꿈속에서 너무 울어서 정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차례대로 악몽을 꾸곤
누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집에 갔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아기와 함께였다. 우리는 셋이 되어 여전히 우장산을 두 바퀴씩 돌았다. 나는 매번 가던 도서관에서 이제 아기 책을 빌려왔다. 친정에 가면 약간의 엄마 잔소리를 듣는 대신 집에서는 어려웠던 양질의 식사를 제때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아기가 언제 깰지 몰라 제대로 감지 못했던 머리도 샴푸만 세 번씩 하며 개운하게 씻어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친정까지 유아차를 끌고 다녔으니 자연스럽게 운동까지 되었다. 엄마가 된 나는 다시 엄마 품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전용면적 39㎡와 139㎡
숫자 하나 차이지만
1이 만드는 쾌적함은 차원이 달랐다.
아기도 친정에 오면 더 자유롭게 다니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 땐 계속해서 엄마 아빠를 떠올렸다.
둘은 반지하에서 시작해, 방 두 개였던 주공아파트에서 나와 동생을 낳고 키웠다. 이후 아빠는 소방공무원 대출을 받아 1999년 갓 지어진 방 세 개 아파트를 9,000만 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방 네 개인 지금의 아파트까지, 지금 우리 집보다 좁은 공간에서 정확히 방 한 칸씩 늘려가며 살아왔다.
내 얼굴을 한 딸을 바라보며
그 시절 엄마아빠의 마음을 떠올렸다.
그사이 아기는 8개월이 되었고
그렇게 기다리던 6월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