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간 천사의 탄생

키위 탄생기

by 유지영

2012 대수능 외국어 시간, 모르는 문제가 단 한 개도 없던 성현은 곧 영문학과 학생이 되었다. 부지런한 그는 오후 수업이 끝나면 저녁엔 근처 학원으로 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졸업 후엔 동네 학원에서 정직원 제안을 받아 그대로 영어학원 강사가 되었다.


요령피우기 달인인 나와는 달리 성현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는 5년 내내 2시쯤 출근해 10시에 퇴근하는 주 6일을 보냈다. 학원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아끼고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성현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영어를 잘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가 충분히 더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혼 후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 우리 엄마도 그렇게 믿었고, 아빠도 그렇게 믿었다. 성현이의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매형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믿지 않았던 사람은 성현이 단 한 명뿐이었다.





결혼 후 그는 정오쯤 일어나 아점을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편집이 없는 날엔 나도 출근길을 함께했다. 집에서 10분쯤 두 손을 꼭 잡고 걷다 보면, 허름한 3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1층은 정육점 2층은 입시학원 3층은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수요일 금요일엔 수업 중 찬송가가 들렸다. 그가 2층으로 올라가면 나는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며 우장산에 있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엄마를 만난 뒤엔 함께 우장산을 두 바퀴 돌고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샤워 후 저녁을 먹은 뒤 책을 읽다 보면 밤 10시가 되었다. 그럼 “엄마 또 올게요!”을 외치며 다시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시 그와 손을 꼭 잡고 퇴근길도 함께했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미 완벽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출퇴근이 없는 생활 속에서 매일 책을 읽고, 엄마와 산책을 하거나 러닝머신 위를 뛰었다. 돈이 필요할 때는 브랜드 광고를 받거나 공모전에 나가 1등을 해 한번에 500만 원의 상금을 타왔다


엄마는 결혼식에서 엉엉 울었었는데

시집보낸 딸이 계속 찾아오니

도대체 본인이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 후 2년간

139㎡ 에서의 엄마와도 함께하고

39㎡ 에서의 성현이와 함께하는

신혼 루틴을 이어갔다.




결혼 후 2년은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형광등 아래가 편했고 나는 주황빛 조명 속에서 안정을 찾았다. 내가 집 안에서 온갖 냄새가 난다고 할 때 그는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다. (덕분에 맛없게 된 음식도 군말 없이 잘 먹어주곤 했다) 나는 에어컨 바람에 5분 만에 추위를 느꼈고 그는 파워냉방을 틀어야만 했다. 나는 세상의 온갖 나물을 좋아했지만 그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나는 락을 뺀 모든 음악을 즐겼고 그는 헤비메탈만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사는 일은 즐거웠다.

그가 불을 켜두면 내가 끄면 됐다


성현이는 언니네이발관을 알게 되었고

나는 슬립낫을 알게 되었다.

(우리 딸은 동요가 아니라 People = Shit을 들으며 강하게 자랐다. 그런데 어느 방송에서 아기들은 헤비메탈을 들으면 잠을 잘 잔다나 뭐라나. 그리고 ‘알게 되었다’가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어느 날은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가 서로 취향이 맞지 않는다며 한참을 투닥거렸다


ㅡ 오늘 같은 날은 라라랜드죠

ㅡ 아니죠 오늘 같은 날은 위플래쉬죠!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둘이 빵 터졌는데

알고 보니 두 영화를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를 사랑했고 우리는 아이를 가지기로 했다.







첫 두 달간의 시도 후, 임신테스트기 속 한 줄을 몇 번이나 확인한 나는 바로 병원에 달려갔다.



"에이!!!! 아직 너무 얼마 안 됐잖아요~!

조금 더 시도해 보세요!"



그런데 세 달이 지나고 네 달이 지나도 계속해서 임신테스트기는 여전히 한 줄이었다. 우장산을 아무리 걸어도 러닝머신 위를 뛰어도 임신테스트기 속 두줄을 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빨리 체크한 거 아닐까 미련을 못 버리고 남편 몰래 임신테스트기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기분이 좋아야 영상도 재미나게 나오는데, 기분이 너무나도 안 좋아서 영상을 만들 힘이 안 났다. 가장 중요한 걸 쏙 빼고 영상을 만드려니 내가 봐도 영상이 재미가 없었다. 자연스레 구독자 수도 뚝뚝 떨어졌다. 7만이 넘었던 구독자 수가 5만으로 떨어졌다.



답이 없다 답이....



이렇게 아기도 안 생기고 구독자 수도 떨어질 거면, 미련이 남았던 PD라도 해봐야 덜 억울하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토익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 기업이든 지원을 할 거면 영어점수라도 있어야 하는데, 졸업 후 한참이 지나 토익점수가 사라진 것이다. 머릿속에 배란일이니 임신이니 하는 모든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성현이는 퇴근을 하고 내게 토익 문제를 또 설명해 주었다. 그는 답지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이 문제의 답이 왜 이것인지 계속해서 설명해주곤 했다. 정작 토익시험을 한 번 보면 좋을 사람은 성현이 같았다. 모든 문제를 다 맞힐 사람 같았다.



"근데 있잖아, 자기가 지금 토익을 보면 다 맞는 거 아니야?"

"에이, 내가 그래도 어떻게 이걸 다 맞아"

"지금 내가 물어보는 모든 답에 다 대답을 해주고 있잖아"

"그래도 만점은 못 받지"




도대체 그가 왜 만점을 못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성현이도 지쳤던 걸까?


토익 리스닝 구간을 세 번씩 들으며 머리를 뜯고 있던 나에게 성현이는 어느 날 퇴사를 해야겠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그가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에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고

그를 꼭 안아주었다.





2023년 크리스마스 기념, 양가 가족이 모두 모이기로 했다. 장소는 마곡에 새로 생긴 근사한 한식집이었다.



성현이가 퇴사 이야기를 하자마자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응원해 주었다. 엄마는 퇴사 기념 둘이 여행이나 길게 다녀오라고 했다.



2024년 새해

지금은 너무 추우니까 따뜻한 나라를 가자

그렇게 단순한 생각이었다.



우리는 성현이의 퇴직금을 몽땅 들고

2주간의 호주, 뉴질랜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토익공부를 몇 달간 한 덕분인지

악명 높은(?) 호주 발음에도 우리는 그저 행복했다.

임신 준비를 하며 술을 완전히 끊었었지만, 멜버른 와이너리 투어에선 그동안 못 마셨던 와인을 실컷 마셨다.



어느 마음 한구석에서

기회는 지금 뿐이야... 지금 아니면 안 돼


하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취업은 내 안중에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행 영상을 돌려보니 틈만 나면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주님 제가 이 다리를 건너면 아이가 생기게 해 주세요!

주님 이 캥거루 아기신발 살 테니까 아이가 찾아오게 해 주세요!

주님 제가 키위새도 직접 봤으니 저희에게도 키위(미리 지어놓은 태명)가 찾아오게 해 주세요

주님 저 무지개 타고 아이가 찾아오게 해 주세요!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키위새를 보고 있던 그 시간

키위는 정말 내 뱃속에서 스멀스멀 아기집을 만들고 있었다.



호주의 따뜻한 햇빛과

뉴질랜드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3번의 비행기

제트보트까지 견뎌내며

아기가 진짜 찾아와 준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와인 더 달라고 하지 말 걸



호주, 뉴질랜드 여행기일 뻔했던 영상이

순식간에 키위 탄생기로 변했다.





나는 항상 모든 기도의 끝에 '가장 좋은 때에 아기가 찾아오게 해 주세요'를 덧붙이곤 했었다.


내가 토익을 990점 맞아 회사에 들어갔다면

이후 임신 소식을 마주했을 때 난감했을 것이고

여행 전 아이가 생겼다면

어쩌면 평생 이렇게 먼 곳으로 떠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2주간의 여행을 끝내고

그렇게 바라던 임신테스트기 속 두줄을 보게 되다니



지난 반년 간

고군분투하던 나를 보며

주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임신을 확인한 뒤 나는 토익 공부를 그만두었다.

대신 성현이의 토익 공부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내가 풀다 남은 문제들을 성현이는 몇 번이고 다시 풀더니 곧 토익 시험을 보고 오겠다며 나섰다.



며칠 뒤 점수를 확인한 순간,

성현이의 입은 그대로 벌어지고 말았다.


L/C 495점

R/C 495점



990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내가 말했지!"

우리 둘은 어이가 없어 한참을 깔깔 웃었다.





이후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성현이가 5년간 쌓아온 경력에

10년 동안 다져온 나의 썸네일 뽑기 능력이 더해져

그의 자기소개서가 기깔나게 완성됐다.


그 후 매일같이 취업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업계 중 최고보상을 해준다는 학원에 지원을 했다.



"이건 읽기만 하면 무조건 돼!!!!! 무조건 된다고!!!"


또 한 번 자신 없어하는 성현이에게 나는 당당하게 엄포를 두었지만 52:1이라는 숫자에 당황스러울 때쯤

그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서도 여전히 성실했고

그렇게 월급 앞자리가 차근차근 세 번이 바뀌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딸이라는 사실이 확정된 날,

남편은 병원 앞에서 마치 세 골을 연속으로 넣은 축구선수처럼 세리머니를 했다. 우리는 신이 나 차례대로 양가 어르신과 형님에게 전화를 돌렸다.



“지영이는 어쩜 모든 게 네 원대로 되니?”



아버님의 이 말은 임신기간 내내 유효했다.

임신 5주 차부터 막달까지 진료를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늘 “엄마 100점! 아기 100점!!”을 외쳤다.


탯줄이 두 번 꼬여 있지만 괜찮고, 아이 머리 크기가 10cm를 넘었는데도 문제없다고 했다. 맘카페 속 선생님들은 이럴 때 제왕절개를 권하던데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자연분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차라리 진통의 고통이라도 피하고 싶어 제왕절개를 권유받기를 바랐지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아이는 39주 4일까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유도분만 날짜가 잡혔다. ‘유도분만 후 제왕절개까지 가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는 이야기에 나는 수백 개의 출산후기를 읽으며 공포에 떨었다. 혹시 내 담당 선생님이 자연분만주의자 아닌가 할 정도로 불신이 커지기도 했다.



그런데 유도분만 예정일 새벽 1시, 기도를 마치고 침대에 눕는 순간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었다. 양수가 터지지 않은 상태라 장염 정도의 고통이었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작성했던 유도분만 동의서는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은 채, 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가족분만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무통주사를 맞은 뒤엔 조금 있던 진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아무런 고통도 없으세요? 아픈데 없으세요?”

“… 네…!“

“산모님.. 정말 황금골반이세요…”

“제가요?…”


출산영상이 좀 극적이어야 하는데 둘 다 코를 골고 자다 힘주기에 들어가 갑자기 아기 낳는 장면으로 바뀌어 편집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렇게 2024년 10월 21일 꿈에 그리던 딸이 태어났다. 초음파 사진까진 분명 남편 얼굴과 똑같았는데, 하얀 얼굴에 갈색 머리칼을 가진 내 얼굴을 그대로 닮은 아기가 있었다.




전용면적 39

관리비 명세서에 적혀있는 18.29평에서 딸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꿀팁박스

공공임대의 입주 후 당장 소득이 오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제 심사는 2년 뒤 재계약 시점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행복주택의 경우 소득이 오를 경우 퇴거가 아닌 소득 초과 비율에 따라 임대료와 보증금이 인상된다. 3.3%를 떼는 프리랜서의 경우 매달 단기 수익을 보지 않고, 1년 뒤 종합소득세 신고 후 발급되는 ‘소득금액증명원’ 속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며 2인가구에서 3인 가구가 되었고, 그에 따라 적용되는 소득 기준이 달라졌다. 덕분에 남편의 월급이 세 번이나 앞자리가 바뀌었음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정해진 자산 기준이나 자동차 가액을 초과할 경우 2년 뒤 재계약이 불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산이 갑자기 3억 이상 늘어날 정도라면 임대주택이 필요 없는 상황 아닐까 한다.

고로 이직이나 소득 상승의 타이밍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공고마다 ‘가구원 수와 주택 면적에 따라 소득 NN% 이하부터 우선 공급한다’는 조건이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지점을 파악해 신청하는 것이 현명하다.

*각 공고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어 공사 고객센터에 문의해 정확한 답변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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