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그리던 서울 대장 아파트, 3억 더 싸게 입성하기 _ SH 장기전세
[Web발신]
[SH공사 미리내집공급부]
안녕하십니까, 유지영 님께서는 제46차(2024.12.26.)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및 예비입주자 모집공고에 예비입주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예비자 공급은 약 2개월 주기로 공급되며 예비자 유효기간은 1년으로, 2026.06.11.(목)까지입니다.
*단지(면적):마곡지구(임대)(59.79㎡)
*예비순번: 50번
기타 자세한 사항은 서울주택도시공사 홈페이지 [제46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 당첨자 및 예비자 발표] 게시글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문자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SH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직원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아쉽게도 고객님....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 집에서 아이가 8개월이 될 때까지 버텨온 시간들이 기약 없는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진 그래도 어떻게든 잘 지냈다. 하지만 50번이라는 숫자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이 집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집 구조와 상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달라진 건 오직 내 마음뿐이었다.
“여보… 만약 누가 이 집에서 12월까지만 버티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해준다면, 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거든? 근데 언제 될지도 모르고, 기다려도 못 들어갈 수도 있대…”
그 뒤 나는 이틀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과 쉽게 놓을 수 없는 희망고문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나와있는 부동산 매물을 미친 듯이 찾기 시작했다. 장기전세 보증금이 4억 8천으로 공공임대 치고 다소 높게 나온 터라 비슷한 시세의 쓰리룸 아파트 매물들이 있긴 있었다. 물론 두 달 뒤 있을 예비 1차 결과를 봐야 했기에 당장 이사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약 없이 이 집에 머무를 수 없지 않은가. 남편과 나는 부동산에 나온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매물 하나를 직접 보러 가기로 했다. 단지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단지를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질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그 매물은 금세 계약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스크롤을 내려도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나은 조건의 집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방이 하나 부족할 뿐 신축에 위치도 좋았다.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실내가 괜찮아 보여 클릭하면 겉은 오래된 구축 아파트라 주차난이 예상되었다. 신축 아파트가 저렴하게 나와 보면 지하철역에서 20분을 걸어야 하거나 후미진 언덕 위에 있었다. 아기를 데리고 다니기엔 늘 아쉬운 요소가 하나씩 있었다.
집을 찾아볼수록 오히려 마곡 아파트에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접근성, 넓은 호수공원, 최근 생긴 트레이더스와 코엑스 등 같은 가격이어도 주변 인프라의 수준이 달랐다. 장기전세 서류 합격 직후 남편과 마곡 단지를 걸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땐 단지 안을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었다.
심지어 그렇게 임장 아닌 임장(?)으로 차를 타고 몇 군데를 다니다 길을 한 번 헤맨 적이 있었는데, 인적 없는 길 끝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아파트 로고를 보며 "저긴 어디야?" 했는데 바로 내가 가고 싶던 마곡 아파트 단지였다. 결국 돌고 돌아 마곡을 원하는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고객센터 직원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당첨된 곳이 마곡지구라는 점이었다.
문득 과거 차수의 기록이 궁금해졌다. 두 달에 한 번씩 발표되는 예비 번호가 한 번에 얼마나 빠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
직원의 말처럼 1년이 지나도 예비가 다 빠지지 않은 단지도 있었다. 하지만 마곡은 달랐다. 워낙 대단지였기에 지난 차수엔 3차(6개월) 안에 모든 예비가 빠졌다. 나는 사건 현장을 추적하는 탐정처럼 전차, 전전차, 전전전차 기록까지 모조리 찾아봤다.
“전 100번이었는데 두 번 만에 들어갔네요~”
오래된 댓글 하나하나가 나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올해 안에 들어갈 수 있겠다...!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출 문제였다. 남편이 이직 후 다시 3.3%을 떼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기에, 신생아 특례대출을 안정적으로 받으려면 최소 3개월 이상 4대 보험을 유지해야 했다. 예비 50번을 받은 것은 6월. 그렇다면 7, 8, 9월 동안 4대 보험을 들고, 그 이후에 대출을 받아 이사를 가면 일정이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발표가 난 직후 블로그에 <S.O.S>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었다. 누군가 제발 내 글을 보고 아무나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랐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 순간에도 내 기도는 적재적소에서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비 17번을 받았던 그때처럼,
호주·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했던 그때처럼,
예비 50번이라는 숫자 역시 결국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나를 이끌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식음을 전폐하며 기운 없이 누워 있다 순식간에 피가 끓고 입맛이 돌았다. 우리는 바로 마곡 LG아트센터 안의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와인까지 곁들이며 축배를 들었다.
그런데 잠깐의 기쁨이라도 누리려는 나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어찌나 다양한지
또 하나의 생각지도 못한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와인을 마시고 기분 좋게 집 가던 길
새롭게 떠오른 뉴스 하나 때문에
나는 다시 완전히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