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지만 화면에 떠 있는 글자는 <신생아 특례대출 규제>였다. 나는 급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신생아 특례대출의 한도는 3억 원 이내였다. 정말 한 순간에 3억 원이 2억 4천으로 변해있었다. 집값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장기전세 보증금이 지금 당장 줄어들리 없지 않은가! 카페에서도 갑자기 실행된 대출 규제로 당첨된 집을 당장 포기한다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양가 부모님이 대출이 정확히 얼마나 나오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자신 있게 말했었다. 신생아 특례대출로 저금리에 3억까지 가능하니 우리가 모은 돈에 가족이 조금만 보태주면 입주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그런데 내 돈도 아니었던 6,000만 원이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가족들에게 2천만 원 정도는 어떻게든 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돈이 8천만 원으로 불어나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미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께 최대한 도움을 받은 터라 더는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2천만 원은 원래 계획대로 어떻게든 마련한다 해도 한순간에 사라진 6천만 원이 문제였다. 이럴 줄도 모르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 4,300만 원짜리 차량을 현금 일시불로 완납했던 일이 후회됐다.
하나의 방법이 있긴 했다. 신생아 특례대출이 아니라 일반 은행의 전세대출을 받는 것이었다. 금리를 최소 4%로 잡아도, 3억이 넘는 대출이면 월 이자가 100만 원을 훌쩍 넘어갔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아무리 마곡 아파트에 살고 싶다 해도, 매매도 아닌 전세에 매달 1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마곡을 포기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그런데 검색을 하던 중 ‘서울시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 제도를 알게 되었다. 부부 합산 소득에 따라 전세대출 이자를 일부 지원해 주는 제도였다. 월 4% 금리에서 서울시에서 2%를 지원해 주면 신생아 특례대출보다도 더 저렴했다. 하지만 안내 문구 맨 위에는 <공공임대 거주 중일 시 해당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결국 마곡 아파트에는 적용되지 않는 제도였다.
선택을 해야 했다. 마곡에 들어가 높은 이자를 감당할 것인지, 아니면 서울시 임차보증금 제도를 이용해 다른 아파트를 알아볼 것인지.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아파트를 찾아볼수록 마곡 아파트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마곡 아파트를 선택하자니 높은 이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은 그놈의 6천만 원이 문제였다. 이것만 아니었다면.. 이것만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마곡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러자 세 번째 길이 생겼다. 어떻게든 6천만 원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었다.
마침 성현이 집안 건너 건너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100억대 부자 할아버지가 계셨다. 전국 각지에 건물이 여러 개 있으시다고 했다. 성현이는 무릎을 꿇어서라도 그분께 돈을 빌려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나도 그분이 10억 도 아닌 100억대 자산가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설득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은행 예금이자보다 훨씬 높게 천만 원 이상 더 얹어 갚을 테니, 당장만이라도 돈을 빌려주실 수 없겠냐는 제안을 준비했다. 양가 부모님에게도 우선 그분께 도움을 청해보겠다고 전했다.
그런데…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호언장담하던 성현이는 정작 그분 앞에 닿기도 전에,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한 채 돌아왔다. 내가 끙끙 앓는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성현이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시댁 어르신들께 상황을 털어놓은 것이다.
“지영이가 정말 애가 닳았구나. 이제 돈 이야기도 꺼낼 줄 알고.”
아버님은 본인이 어떻게든 대출을 받을 테니 이자는 걱정하지 말고 원금만 갚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이 추가로 대출을 받는 건 결국 조삼모사였다. 아버님이 직접 대출을 받지 않아도 내가 은행에서 빌리면 자금은 마련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님이 가진 돈을 빌려주시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높은 금리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결국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내가 이 아파트를 포기하면 누구든 대출을 추가로 받지 않아도 됐다. 부모님이든 시댁이든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추가로 대출을 하는 상황만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의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아버님 어머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집으로 가는 길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아무래도 그냥 마곡 아파트는 포기해야 될 것 같아. 돈을 못 구할 것 같네.....
그 순간 내가 붙잡고 있던 모든 끈이 한순간에 끊어져 버린 듯했다. 모든 것이 그저 나의 욕심이었구나. 이 집에서 버틴 8개월이 순식간에 아무 소용없어졌다. 아무 방법이 없으니 사람이 담담해지기까지 했다.
메시지 속 숫자 1이 사라지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짠순이인 사람이 있다.
"아휴 너네 이모는 지금 에어컨도 없이 살고 있다니까"
이모의 집 한구석엔 개업 사은품으로 제작되었던 휴지, 행주 등이 가득 쌓여있다. 제발 한여름에 에어컨이라도 틀고 살라고 해도, 돈이 아깝다며 에어컨을 사지 않은 그녀다. 일산의 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그녀는 20대부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매일 일을 나갔다. 농협에서 30년간 일한 그녀는 퇴직 후 자원센터라고 불리는 일명 고물상에서 몇 년간 일하다가 곧 청소일을 시작했다. 매일같이 바닥을 쓸고 닦았지만 아줌마들의 텃세에 부딪혀 그만두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쉬는 날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 다니는 엄청난 에너지 보유자이기도 하다. 단 한 번도 일을 쉰 적 없는 짠순이였지만, 정작 내 결혼식 날 계좌로 가장 큰 축의금을 보내준 사람도 바로 이모였다.
강영순 5,000,000원 입금
이후로 나는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면, 내가 어디 있든 즉시 영상을 제작해 ‘납품(?)’하고 있다. 요양원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부를 노래를 빠르게, 느리게도 조절하며 ㅡ
이번에 이모가 보내온 미션은 사진 10장과 10초짜리 인사말 영상을 활용해, 30초 분량의 여선교회 소개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교회 찬양대회에서 이모가 속한 여선교회는 매년 대상을 휩쓸었다. 어떤 해에는 군복 차림으로, 또 어떤 해에는 턱시도를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그 모든 무대의 중심엔 늘 이모의 연출이 있었다. 올해도 대상을 노리며, 이모는 나에게 여선교회 소개 영상을 부탁해 왔다.
"나의 꿈은 연출이었단다 ㅡ 너네 엄마의 꿈은 가수. 할아버지가 노래를 잘했어 매번 노래자랑에서 상도 타오고 그랬는데"
나는 이모의 말에서 나의 창작욕구가 유 씨가 아닌 강 씨 피에서 온 것임을 32년 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내게 온 메시지를 읽자마자 온몸의 피가 다 식는 기분으로 이모에게 연락을 했다고 했다. 이런저런 사정을 제대로 이야기하기도 전에 이모는 소리쳤다.
"얼만데!!!!!!"
"아니 그게..."
"아니.. 이천.. 삼천정도.. 되는 것 같나 봐 글쎄..."
뚝
엄마의 말에 따르면 통화가 정말 뚝. 끊켰다고 했다.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은 100억대 부자가 아니라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이 사는 세상에서 제일 짠순이인 이모였다. 나는 앞으로 이모가 요청하는 모든 형태의 일을 가장 빠르게 처리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입주 후에는 가장 먼저 이모에게 에어컨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엄마는 나머지 돈은 갚을 필요도 없고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이제 걱정하지 말라며 내게 소리를 쳤다.
나는 왜 내 딸의 성에는 강 씨가 들어가지 않는 것일지 아쉬워하면서, 나를 구원해 준 강 씨 여자들을 키워낸 건 사실 김 씨였던 할머니였음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