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by 유지영


이 집에서 3년 동안 잘 자라던 식물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시들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엔 잎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결국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점점 메말라가는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와중에 호기심이 왕성해진 딸은 집안의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만지는데 재미를 붙였다. 특히 아버님이 선물해 주신 금전수 받침에 틈만 나면 손을 넣었다. 아기 손에 고여있던 흙탕물이 자꾸 묻어 골치가 아팠다. 우리는 잠시 이 거대한 화분을 친정에 옮겨두기로 했다. 금전수 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진 뒤, 잎이 다 떨어져 골칫덩어리가 된 화분을 마저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 아빠가 화분을 빤히 보더니 이건 그냥 테라스에 잠깐 둬보라는 것 아닌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버리지 뭐 하러"

"아니야 그래도 잠시 밖에 놔둬봐"


아빠는 앙상한 줄기만 남은 화분을 테라스로 옮겼다. 거실에서 아기 기저귀를 갈 때마다 화분이 계속 보였다. 차라리 버려야 속이 시원할 텐데ㅡ 마침 장마가 이어지면서 나는 한동안 암막커튼을 친 채 지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해질 무렵, 오랜만에 암막커튼을 걷었더니 뜻밖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서 새싹이 스멀스멀 비집고 올라온 것이다.



"자기야!!! 이거 봐봐!!!!"



우리 집 화분에 물 주기 담당을 맡고 있던 남편을 불렀다.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엇 혹시 좋은 징조…??!!!!”


좀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는 남편에게도 새싹은 신나는 소식이었다. 마침 예비 2차 발표를 앞둔 시기였다. 다 죽은 줄 알고 포기했던 화분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내 마음속에도 희망이 꿈틀거렸다. 한 번 싹이 난 이후 화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졌으니 오랜만에 집 밖을 나가보기로 했다. 무더운 두 달 동안 집 안에서 아이만 돌보니 살이 많이 쪄 만삭 몸무게가 되었다. 돌잔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비싼 스냅사진이 아깝지 않으려면 이제는 살을 빼고 움직여야만 했다. 근처에 있는 민아네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딸과 함께 유아차를 끌고 거리를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집은 어떻게 될 것 같아?“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홈페이지까지 들어가며 내가 알아낸 사실들을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려다 나는 또 한껏 부끄러워졌다



“휴… 근데 안 될 거야, 아마…”

“기적이 이뤄질 수도 있지!”

“그랬으면 좋겠다.”


민아의 말처럼 몇 가지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4명 이상이 계약을 취소하거나, 그 사이 공가가 더 생기거나, 혹은 내가 모르는 공가가 애초에 더 있는 경우였다.



민아와 이야기하다 문득 출산 전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출산하기 두 달 전, 민아는 자연분만으로 단 3시간 만에 아들을 낳았다.


“지영, 도넛방석 안 쓰는데 그거 줄까?”

“아마 못쓸 거야… 제왕 할 확률이 약 70% 될 것 같아…”

“자연분만 할 수도 있지, 왜!”

“휴…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날 밤 먼저 선수 친 딸덕에 자연분만에 정말 성공했던 것 아닌가!

(그날 민아에게 도넛방석을 달라고 할걸 잠시 후회했다)



화분에선 새싹이 트고

민아와의 대화 속에서 느낀 이상한 데자뷔에

설마ㅡ 혹시나ㅡ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비(非) 아파트형 ‘미리내집 신혼·신생아 매입임대주택’ 공고가 새로 올라왔는데, 강서구에는 풀옵션 투룸 + 드레스룸 구조의 넓은 지하 주차장까지 갖춘 매물이 있었다. 놓치기 아쉬워 접수했지만 70대 1이라는 경쟁률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었다.


그런데 며칠 뒤 생각지도 못한 서류 합격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서류는 5배 수로 선발해 30명 안에 든 셈이었다. 방 개수는 살짝 아쉬웠지만 신축이라 컨디션이 좋았고,

무엇보다 보증금이 저렴해 대출이 필요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최종 발표는 1월에 난다고 했다.



서류에 당첨되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친정집에 있던 프린터로 모든 서류를 준비했다. 우체국에서 딸이 두 번이나 대성통곡을 해 겨우겨우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큰 의미가 있어?"

"그건 그래 마곡이 먼저 발표니까, 그래도 선택지가 하나 더 있으면 좋은 거니까!“


나는 11월에 있을 마곡 장기전세 발표에서 우리가 당첨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마곡이 먼저 된다면 투룸 비(非) 아파트형 미리내집 당첨은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예측할 수 없었기에, 나는 다른 공고에도 지원을 이어갔다.





7월 23일에 올라온 장기전세 예비 1차 발표문에서

예비 2차 결과는 9월 중에 안내될 예정이라는 문구를 보고 9월 23일부터 하루하루 손꼽아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 주가 다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에라이’ 나는 다음 주를 기약했다.



한편 딸에게 밀가루 테스트를 하겠다고 살짝 먹인 식빵이 문제가 되었는지, 아기가 이제 집안의 온갖 것을 입으로 가져가기 시작해서인지, 하루에 많아야 2-3번 정도 변을 보던 아기가 계속 묽은 변을 지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다 불안해하며 말했다


"기저귀가 몇 장 안 남은 거 같은데?"

"아냐 저걸로 오늘까진 충분해, 백퍼야 백퍼 문제없어!"


또 그날따라 아이는 잠들 듯하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곤 했다.

하필 남편은 시험 기간이라 온종일 시험 문제를 만들기에 바빴다.


"으아악!!!!! 나 도저히 답답해서!!! 그냥 얘 데리고 나가자, 아무 카페라도 가야 살 것 같아"

"지영아 근데 지금 기저귀가 없는데?"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넉넉하다고 느꼈을 열 장의 기저귀를, 아이의 계속되는 설사 때문에 순식간에 다 써버리고 만 것이다. (다행히 묽은 변을 보는 것 외에는 아이 컨디션은 괜찮았다.)

‘백 퍼센트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해 놨는데! 이미 변을 본 상태라 기저귀가 꼭 필요했다.

지금은 오후 세 시. 배송 예정 시간은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라고 했다.

제발…! 나는 온갖 가방을 다 뒤져 겨우 기저귀 하나를 찾아냈다.


"찾았다!!!!!!"


다행히 빛과 같은 한 장의 기저귀 덕분에, 우리는 카페로 향할 수 있었다.



"근데 얘 지금 안 잘 것 같은데?"

"아니야, 얘 이제 유아차 타면 백퍼야 백퍼! 무조건 자게 되어있어 2분 컷 본다!"


나는 다시 한번 “백퍼야, 백퍼!“를 외치며 유아차의 가림막을 내려 빛을 차단하고, 각도를 180도 눕혀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2분 컷’을 외쳤지만 5분이 지나도 아이는 더 보란 듯이 발을 흔들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카페에 도착했지만, 남편 말처럼 아이의 눈은 말똥말똥했다.

원래 계획은 아이가 자는 사이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시험문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늘만 두 번이나 ‘100%’를 외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내 눈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확신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분은 왜 희망고문처럼 새싹을 틔워 사람 마음을 간질거리게 만들었던 걸까

마곡도 떨어지고, 새로 접수한 집마저 불발된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휴—, 모든 것이 자신 없어라.

9월 26일,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아이의 입에 떡뻥을 물려주던 그때,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렸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미리내집공급부]

안녕하세요, 유지영님. 고객님은 제46차 장기전세주택 예비 2차 입주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배정 단지와 동호는 마곡지구 1NNN동 1NNN호이며, 전자계약은 2025년 10월 20일(월) ~ 10월 22일(수), 방문계약은 2025년 10월 22일(수)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및 등기우편을 통해 발송될 안내문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폰 화면을 들여다본 나는 그 자리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뭐야? 됐어?!! 됐어!??!?!?”

“자기야… 됐어!!!!!!!!!!”



옆에서는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우리는 북적이던 카페 한구석으로 가 셋이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잠시 후 또 다른 문자가 도착했다.

기다리던 기저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우리는 가득 남은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도착한 커다란 박스에서 기저귀 한 움큼을 챙겨 다시 마곡 아파트로 향했다.







때마침, 그렇게 버티던 아기를 차에 태우자 아기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내가 성현이에게 “백퍼야, 백퍼!”라고 외쳤던 일은 조금 늦었지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정말 예비 2차 발표만에 우리가 들어갔고

아이는 잠들었으며

기저귀도 제때 도착해 다시 갈 수 있었다




발표 문자가 온 지 한 시간 만에 달려온 건 우리밖에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당첨 문자를 보여주고 신분증을 맡긴 뒤 집을 볼 수 있었다. 계단식이라 현관 앞 공간도 널찍했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환한 거실이 보였다.





벽 한쪽에는 ‘서빈’이와 ‘서아’의 키를 재어둔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흔적들마저 마냥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집에는 생각지도 못한 중문이 있었다. 이전 세대가 설치하고 두고 간 모양이었다. 아이가 자꾸 신발장 쪽으로 기어가 안 그래도 중문 설치를 고민 중이었는데 엄청난 행운이었다!



생활의 흔적으로 생긴 장판 파임 같은 하자들은

SH에 접수하자 곧바로 모두 수리해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남편과 함께 유아차를 끌고 단지 구석구석을 산책했다. 작은 연못과 놀이터, 바로 집 앞에는 국공립 어린이집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단지 내 어린이집이 두 개나 있었다.


아기가 생기고 난 뒤, 기계식 주차장 앞에서 차가 나오길 기다릴 때마다 혈압이 올랐다.

‘금연구역’ 스티커가 다섯 장이나 붙어 있는 곳 바로 앞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보다 못해,

어느 날 결국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오!!!!!!! 담배 냄새!!!!!!!!!"


엘리베이터에서 1층 버튼을 누를 때마다 ‘이번엔 또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그런데 집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1층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밝게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딸도 함께 방긋 웃으며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담배 연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진짜 된 거야?"

올해 안에 당첨되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던 남편은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마침 단지 앞에는 유명 맛집이 새로 이전해 문을 열고 있었다. 인테리어가 멋들어진 양식 레스토랑이었다. 우리는 민생 지원금이 들어온 기념(?)으로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남편은 면도도 하지 않고 모자를 푹 눌러쓴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미슐랭 못지않은 메뉴 설명을 들으며 호화로운 식사를 즐겼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곧바로 아버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영아 너무너무 축하한다. 정말 원하는 대로 되어서 기쁘구나!"








나는 매번 민아에게 자신이 없다고 말했지만, 어느 날 우연히 일기를 다시 펼쳐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안에 적힌 내 진짜 마음은 내가 늘 말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가장 좋은 때에 최대한 덜 아프게 ⭐️무통천국⭐️을 누리며 순풍 아가를 낳고 싶다.. 주님 도와주세요!!!! ㅠㅠ

2024년 9월 30일


자연분만에 성공하기 약 한 달 전, 나는 민아에게 자신 없다고 말해 놓고 무통천국에 별표까지 쳐가며 간절히 자연분만에 성공하길 바라고 있었다.



주님, 보고 계신다면 가장 좋은 때에 좋은 조건의 제가 바라는 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딸과 함께 셋이 잘 살 수 있는 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올해 안에 이사 갈 수 있기를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끌어주시옵소서...

2025년 7월 2일


주님... 내부 컨디션 좋고 16년도 지어진 위치 좋은 곳으로 당첨되게 해 주세요...ㅠㅠㅠ

2025년 7월 30일



내가 지원한 아파트는 1단지부터 15단지까지 있는 대단지였다. 임대동이 없는 13단지와 신축이라 따로 모집하는 9단지를 제외하면, 나머지 아파트 중 2016년에 지어진 곳은 네 곳뿐이었다. 나는 이왕 가는 거라면 2년이라도 더 최근에 지어진 곳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첨된 곳을 확인해 보니 2016년에 지어진 네 곳 중 한 단지였다. 게다가 입주 가능 날짜는 11월 3일 이후로, 올해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내가 일기에 간절히 써놓은 기도가 모두 이루어진 셈이었다.



임신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블로그에 푸념 섞인 글을 썼었다. 제목은 <10월>이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주님 보고 계시죠 가장 좋은 때에 아기가 찾아오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나는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파트 계약일이 2025년 10월 21일이었다. 딸이 태어난 2024년 10월 21일로부터 정확히 1년 뒤였다.


그동안 셋이서 버텨온 1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눈앞을 스쳐 갔다.



앞에서 나는 100대 1이 3대 1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3대 1이 100%가 될 수 있었던 진짜 방법은 따로 있었다. 그 비밀은 기도였다. 엄마의 기도, 나의 기도,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기도가 모여 33%의 확률을 100%로 바꾸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나는 성현이와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 친정 지하 주차장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짐했다.


반드시 너와 결혼해 살림을 꾸리고 함께 살 집을 구하리라.


나는 매일 두 손을 꼭 잡은 채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좋은 방법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가 거절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도의 답은 언제나 100%였다.

그렇게 우리는 세 번째 집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꿀팁박스

아영이네 행복주택 영상을 보다 보면 매번 이런 말이 나온다.
“접수는 공짜!”

발표일이 서로 다른 청약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곳을 동시에 접수해도 전혀 문제없다.
일단 넣을 수 있는 건 다 넣어보자!

단, 신혼신생아주택 1·2처럼 같은 유형의 청약은 한 번에 하나만 접수할 수 있다. 동시 접수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조건을 잘 확인하고 미련 없이 지원 가능한 모든 청약에 도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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