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여기 좀 비싸지 않아?

젊은 임차인의 슬픔

by 유지영


결혼식을 코 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 한 방송사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주제는 유튜브와 크리에이터, 대학생 시절 함께 대외활동을 했던 현직 기자 지인으로부터 섭외 연락을 받았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셀프 헤어 메이크업을 마치고 1층에서 촬영팀을 기다렸다. 두 번째 집 발표를 앞두고 있던 시기라 언제든 뜰 준비를 하다 보니 집은 너무 어수선했다. 촬영은 기자오빠가 찾아둔 강남의 어느 스타트업 회사 라운지에서 하기로 했다.


⌜지금 상암동에서 출발했어! 금방 갈게⌟

⌜네 오빠 천천히 오세요~⌟


곧이어 방송국 로고가 붙어있는 큰 벤이 도착했다. 벤안에는 나를 반기는 기자 오빠와 촬영기사 두 분, 전용 기사님이 타고 계셨다. 이 날 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방송국 차량 기사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통 이렇게 한 팀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촬영하고 편집실에서 각자 편집을 한다고 했다.



목동에서 강남으로 향하던 길,

최근 결혼한 오빠와 대화하다 자연스레 집값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오빠의 강스트라이크가 날아왔다.


"근데... 여기 근처도 좀 비싸지 않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아 네.... 그렇죠 뭐..!"


오빠의 말이 이어질라는 찰나 '진실을 전합니다'라는 오빠 회사의 슬로건이 생각났다.

나도 진실을 전합니다.


"아 이게 그... 신혼부부 매입.. 저어기 그.. 임대라고 그 전형이 있는데..."

"응?"

"임대예요!!!!!!!"


3초간 정적이 흐르고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있던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상황을 대강 설명했다.


이후에는 자연스레 오빠의 반포 신혼집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니 왜 하필 임대주택 다음 나온 게 반포 신혼집 자가일 일인가. 알고 보니 오빠의 아내분은 초초초초 유명 아이돌의 가족이었고 초초초초초초 유명멤버와 함께 콘서트장에서 찍은 사진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난생처음 보는 회사 라운지에서 편집하는 척을 한참 하다 얼레벌레 인터뷰를 끝냈다. 다정한 팀원 분들은 나를 다시 집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차 안에서 어찌나 삐질삐질 땀을 흘렸는지 화장이 다 무너져 오빠가 피의 보정을 해주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뷰 한 영상은... 하필 내 결혼식 날 방영 되었다. 덕분에(?) 나와 가족들은 모두 본방사수를 할 수 없었다. 대신 엄마에겐 불이 나게 연락이 왔다.


"우리 아들이 지영이를 뉴스에서 본 것 같댜!"

"저거 지영이 아니여?!!! 아무리 봐도 지영인 것이여!!!"





기자 오빠와 함께 대외활동을 했던 스물세 살

나는 쟁쟁했던 모든 사람을 제치고 최우수 활동자로 뽑혀 상금 100만 원을 받았었다. 대외활동이 끝난 지 6년이 지났지만, 오빠가 나를 인터뷰 대상자로 떠올린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한참 열정 넘치던 대학생 시절, 나는 그렇게 대외활동을 10개나 했었다. 모든 곳에서 1등을 차지하며 각종 상금과 상품을 싹쓸이하곤 했다.


20대에는 내 뜻대로 안 되던 일이 좋아했던 선배 오빠에게 너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다섯 번의 데이트 후 차였던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집값과 연봉 이야기를 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애엄마가 되어버렸다. 20대 때는 눈물도 엉엉 흘렸던 것 같은데, 30대가 되고 나니 웬만한 일에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애가 닳을 뿐이다.


모든 것을 확신하며 살았던 것과 달리 나만 이상한 걸까, 내 선택이 잘못된 걸까 하고 주춤하게 되는 순간들이 그렇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날아왔다.




친구 A도 출산을 앞두고 투룸에서 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기 새로 나온 든든 전세주택 공고문을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공유했다. 소득도 보지 않는 조건이었고, 친구 집 근처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온 신축 쓰리룸 주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저 “고맙다”라고 답했다.


그 이후 나는 친구 남편의 인스타로 친구가 쓰리룸 아파트를 매매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시물을 보는데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 시기에 한참 집을 매매하기로 결정하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을 텐데, 도대체 나는 왜 오지랖을 부린 것일까!!!!! 공고문을 공유받은 친구가 어찌나 난감했을지.. 그것보다 내가 임대주택 공고문에 한참 빠져있을 때, 매매를 하기로 한 친구부부의 결정이 너무도 대단해 나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또 우리와 결혼초기 자금이 1억 정도 차이가 났던 지인 B가 있었다. 나는 전세사기가 무서워 안전하게 임대라는 선택을 했고, B는 4억을 추가로 대출받아 분양하는 집을 매매했다. 그리고 지금 그 아파트 가격은 13억이 훌쩍 넘어있었다. 집에 놀러 가게 되었을 때 너무나도 깔끔한 초신상 신축 아파트의 자태에 또 한 번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비로소 그제야 이래서 사람들이 부동산 부동산 하는 거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집값이 올라갈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세 번째 마곡 장기전세 최종 발표를 기다리며 애가 끓는 사이, 한 친구는 혼자 좁은 집에서 애를 쓰며 육아하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다들 2-3억씩은 기본으로 대출받아서 살던데, 보통 신혼부부들 다 그렇지 않아? 첨부터 다 갖춰놓고 살던데… 내 주변엔 다 그래


또 엄마는 단칸방(?) 사는 우리 딸 불쌍해서 어쩌나 하며 매번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아 좁은 집에서 이러고 있는 건 나밖에 없구나,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3룸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며 우울해졌다. 자신감 있고 당당했던 어린 나는 사라지고 쭈글쭈글 주름이 깊어진 나만 남았다.



그런데 이 시기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나에게 "우리 집에 떡볶이 먹으러 올래용?ㅎ" 라며 손을 뻗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리원에서 만나게 된 찰떡이 엄마였다.







아버님의 “지영이는 어떻게 매번 원대로 되냐?”라는 말은 산후조리원까지 따라왔다. 우리는 임신 12주 무렵 마곡의 L 산후조리원을 예약해 놓았었다. 그런데 출산을 앞두고 집 근처에 L 산후조리원 '강서점'이 새로 지어졌다. 가격은 50만 원가량 더 비쌌지만, 새로 지어진 곳이라 훨씬 깔끔했다. 차로 20분을 가야 하는 마곡점과 달리, 강서점은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였다. 그런데 굳이 돈을 더 내며 옮길 필요가 있을까 싶어 결국 처음 예약했던 마곡점을 그대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자마자 조리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난처한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산모님~ 현재 마곡점이 만실이라 어쩌죠? 강서점으로 옮기실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럭키비키! 어쩜 이럴 수가! 내가 원했던 시나리오였다. 우리는 덕분에(?) 같은 가격에 더 깨끗하고 가까운 강서점으로 옮길 수 있었다.



산후조리원에 입실하자마자 정신없는 브리핑들이 이어졌다. 원장님은 유축하는 방법, 실장님은 조리원 일정과 지켜야 할 규칙들을 빠르게 설명했다. 곧이어 크리에이터 랄랄 씨를 닮은 마사지 관리사님이 방문했다. 나는 마곡점에서 산전 마사지를 두 차례 받고 천국을 맛본 이후, 산후 마사지를 5회 추가해 둔 상태였다. 관리사님은 오늘부터 마사지를 시작하자며 곧바로 시간을 잡았다.


그런데 천국 같은 마사지 시간이 끝나자마자 관리사님의 추가 영업 모드가 시작되었다. 이미 산후 마사지 코스를 선택해 둔 상태여서 더 이상의 영업은 없을 줄 알았다. 원래는 60분짜리인 이 코스를 몇 회만 더 결제하면 90분, 아니 120분 풀코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며, “20만 원만 더 내면… 40만 원만 더 내면…” 하고 순식간에 혼을 쏙 빼놓는 영업이 이어졌다. 평소 나는 물건 하나를 사도 수십 번을 고민하는 타입인데 그때는 내 호르몬이 어떻게 된 것인지, 홈쇼핑 마감 1분 전 분위기에 홀린 듯이 추가 결제를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거지?’ 멍하니 엘리베이터에 오르던 순간, 나는 찰떡이 엄마를 처음 만났다.


“여기 영업 좀 심하죠?ㅎㅎ”
“하하… 네 그러네요.....”


이후 방에 들어와 마사지를 잘 받고 왔냐는 남편에 말에 나는 그만 눈물이 났다. 마사지는 좋았지만 그 뒤로 이어진 압박 영업에 차마 거절을 못 하고 결국 120만 원을 추가 결제를 해버렸다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뜯었다.


“네가 정말 마사지가 좋아서 결제한 거라면 난 찬성이야. 하지만 원치 않는 영업 때문에 억지로 결제한 거라면 내가 가서 말할게”


찐따 인프피옆엔 강한 TJ인간이 필요하다. 곧이어 남편이 새로운 영수증을 가지고 왔다.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마사지만 진행하는 것으로 이야기해두었다고 한다. 관리사님과 어떻게 어색한 5회 차의 시간을 보내야 할까 걱정했지만, 관리사님이 먼저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며 마스크팩 두 장을 서비스로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문자가 왔다


"산모님~ 제가 서비스 팍팍 해드릴게여^^❤️"



그런데 어색할 것 같았던 마사지 시간, 뜻밖의 인물 덕분에 관리사님과 나는 한편이 될 수 있었다.



“제가 조리원에서 아기들 얼굴 다 봤는데여~ 진짜!!!! 우리 아기가 제일 예뻐요!!!”


쉰을 앞둔 나이에 첫 아이를 낳은 찰떡이 엄마는 산후조리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산모였다. 아이가 조금 작게 태어나 첫날은 니큐에 머무느라 함께 입소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오늘 아기도 무사히 산후조리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막 아기를 보고 들어온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90분 내내 내 귀를 때려 박는 듯했다는 것이다. 마사지실은 천장이 뚫린 채 파티션 몇 개로만 나눠져 있었다. 찰떡이 엄마를 마사지해 주던 옆 관리사님이 깜짝 놀라며 “모든 아기들이 다 예쁘죠~”라고 답한 후 작은 목소리로 “옆에 산모님들 계세요오!!…”라고 속삭이는 것마저 또렷이 들렸다.


그녀는 본인 친구는 이미 할머니라는 이야기, 본인은 자가도 있고 대출도 거의 없어 만족스럽다는 이야기, 카페는 비싸기만 해서 국밥을 먹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 등을 90분 내내 끊임없이 이어갔다. (인증샷이 이해 안 된다던 그녀는 이후 인스타를 새로 시작했고 누구보다 인증샷을 열심히 찍었다) 관리사님은 난처하게 웃으며 “커피 한 잔이 얼마나 힐링되는데요~” 하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 마사지에서도, 다다음 마사지에서도 나는 하필 계속 그녀 옆에서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어제 시켜 먹은 떡볶이가 너무 맛있어서 또 먹었다는 이야기, 아이를 셋은 더 낳고 싶지만 연년생은 무섭다는 이야기까지 (떡볶이가 어찌나 맛있다고 하시던지, 나는 조용히 같은 가게에서 배달을 시키게 되었는데 배달완료라고 뜬 떡볶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 일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마사지실에 있던 우리 모두는 어느새 관객이 되었다. 나를 마사지하던 관리사님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게만 조용히 속삭였다.


“어머, 모유 수유할 때 떡볶이 먹으면 안 되는데…”
“저 연년생 아둘맘인데…”


그때 나는 관리사님의 핸드폰 바탕화면에 있는 두 아들 사진을 보고 그녀의 강력한 영업력이 바로 저기서 비롯되었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마사지 시간 이외에도 나는 옆 호수였던 그녀를 조리원 곳곳에서 계속 마주치게 되었다. 모유수유실에 콜을 받고 달려가도 그녀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가슴 마사지를 받으러 가도 그녀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파워 E 성향의 찰떡이 엄마는 조리원에 있던 모든 엄마들을 모아 단체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타깃은 나였다.


“키위엄마! 키위엄마 빼고 다 모였어요~ 왜 안 들어와요?“


나는 그때 유축과 모자동실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도넛 방석 위에서 열심히 편집하며 보내고 있었다. 특히 출산 영상은 일곱 번이나 내보내기를 반복하며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꾸 내 방 문을 두드리며 찾아오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키위엄마! 뭐해요? 나와요~”


나는 끝까지 홀로 단톡에 들어가지 않고 조리원 방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조리원 퇴소 후 지옥을 맛본 나는 제 발로(?) 단체 채팅방을 찾아 들어가게 된다. 그 시기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아기를 돌보며, 울던 아기를 안고 편집까지 했다.


40일 동안 두 번밖에 외출하지 못한 나와 달리, 그녀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매일 집 밖으로 나왔다. 시장을 돌고, 한의원을 다녀오고, 산책 중이라는 소식을 올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백일 무렵 되었을 때, 그녀는 일을 벌였다.


“우리 이제 다 같이 모여요!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하루에 세 번씩 울던 나는 살기 위해서, 어느새 찰떡이 엄마네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불과 도보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왁자지껄 그녀의 수다가 듣고 싶었다. 나를 집요하게 찾던 그녀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남편의 출근길 차를 얻어 타고 아기와 언덕 중턱에 있는 빽빽한 빌라 골목에 내렸다. 돌아올 때는 유아차를 끌고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집 앞에 서니, 눈앞에는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만이 보였다.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쓰리룸 아파트에 산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엘리베이터만 없을 뿐 실내는 쾌적하고 깔끔했다. 파워 E인 찰떡이 엄마는 우는 아기를 달래고 있는 나를 대신해 분유도 타주셨다. 내 딸은 그 안에서도 가장 크게 울었다. 조리원에서 홀로 투명 인간처럼 지내던 나에게 모든 엄마들은 다정히 말을 걸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시험기간이 다가왔다. 혼자 하는 육아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결국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금 찰떡이 엄마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사실 그녀의 직설적인 말들이 재미있었다.


"키위 엄마는 딱~! 보면 성질 더러울 거 같아!"


내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었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겨 어느새 그녀 앞에서 깔깔 웃고 있었다. 문득 명절날 아이돌 얼굴 평가를 적나라하게 하던 성현이네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쟤는 눈깔이 왜 저랴? 약을 했냐?” 우리는 그런 큰아버지의 말들이 너무 웃겨 그저 깔깔 웃을 뿐이었다.


찰떡이 엄마는 수시로 나를 유혹했다.


담주에 우리 집에 떡볶이 먹으러 올래용?ㅎㅎ


원더윅스니 잠퇴행이니 힘든 순간마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며 우리는 어느새 한 팀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 다른 엄마가 “다음 주에는 저희 집에 오실래요?”라며 또 한 번 엄마들을 모두 초대했다.


이번에도 남편의 출근길 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트렁크에서 유아차를 내리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이곳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던 것이다.

(물론 이곳도 엘리베이터만 없을 뿐, 실내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두 번째 집에서도 다른 엄마가 아기를 안아주는 동안, 나는 이를 악물고 유아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또 다른 조리원 동기의 집도 빌라였다


나는 매번 조리원 단톡방에서 모두가 쓰리룸 브랜드 아파트를 살고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저희 집은 조금 좁아서...'

'집이 좁아서요...'

'저희 집이 아마 제일 좁을 거예요...'


하는 말들을 붙이곤 했다. 너무 진심이어서 앞에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엄마들이 우리 집을 본다면 너무 좁다고 생각하겠지?

너무 좁아서 깜짝 놀랄 정도겠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두 대였다.

거기다 내가 모든 분들 중 가장 높은 층에 살고 있었다.


나는 매일같이 엘리베이터 내려가기 버튼을 두 군데 다 눌러놓는 사치를 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경비 아저씨에게 들을 수 있었다.


"11층에도 아이가 태어났대요!"

이곳에서 아이를 낳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육아가 너무 힘들어 혼자 울고 있을 때

수화기 너머 나의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가 급하게 산후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외숙모를 데리고 왔다.

아기는 할 말도 없어지게 외숙모와 엄마가 오자마자 눈물을 뚝 그쳤다.


그런데 외숙모가 집을 도착하자마자 얘기하는 것이다.


"하나도 안 좁네!!!! 이게 뭐가 좁아!!!! 거실도 넓네!

나 산후관리사로 일하잖아! 이거보다 더 좁은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많아. 정리만 깔끔하게 지내고 살면 충분히 살 수 있어! 난 너네 엄마가 너무너무 좁다고 해서 진짜 좁은 줄 알았다!"



엄마는 홀로 육아하는 나를 너무나 애절하게 바라본 나머지 단칸방 가스라이팅(?)을 이어간 것이다.




그래서..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 봤다. 아니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나는 애초에 B보다 1억이 부족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 5억을 대출받아야 했고, 29살의 우리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게다가 대기업에 다니는 B와 달리, 직장이 따로 없는 나는 5억 대출 자체가 나오지 않을 상황이었다. B가 매달 높은 이자를 감당하고 있는 동안 나는 월 임대료 9만 원 집에 살며 어느 정도 여유로웠던 부분도 있다. 또 집을 매매한 지인들은 우리보다 3살씩 많았다. 우리가 그들보다 벌어놓은 돈도 적은 게 어느 정도 당연했다.



라고 합리화 해 보지만... 그래도 그래도....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일까? 하고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B와 생각지도 못한 대화를 하게 된다.



"아니 마곡이 너무 조용하고 좋더라고"

"네~"

"우리도 사실 계속 마곡 가고 싶어서 알아봤는데.."

"오.. 네!?"


"너무 비싸더라고.."





생각지도 못한 B의 말에 벙쪄있을 때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문자가 도착했다.





[SH공사 미리내집공급부]
안녕하십니까, 유지영 님께서는 제46차(2024.12.26.)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및 예비입주자 모집공고에 예비입주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예비자 공급은 약 2개월 주기로 공급되며 예비자 유효기간은 1년으로, 2026.06.11.(목)까지입니다.

*단지(면적):마곡지구(임대)(59.79㎡)
*예비순번:50번

기타 자세한 사항은 서울주택도시공사 홈페이지 [제46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 당첨자 및 예비자 발표] 게시글에서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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